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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May 25. 2022

게을러진다는 건

게을러진다는 건 뭘까. 단순히 육체적 활동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사람들이 흔히 쓰는 '영혼이 1도 없다'라는 말은, 마음이 담겨있지 않다는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육체와 영혼의 분리 상태를 뜻하는 건 아닐까.


주어진 것들과 해야 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의무적으로 움직이는 삶이 반복되다 보면 우리의 영혼은 쉽게 잠들어 버린다. 그래서 나에게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다. 나에게 게으름은 '마음과 영혼이 잠들어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육체와 영혼을 별개의 존재로 본다면 요즘의 나는 몹시 게으른 쪽에 속해있다. 정확히는 영혼의 나태함이다. 그 누구보다 바삐 움직이고 있지만 그 속에 영혼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엔가 그날도 똑같이 익숙한 알람 소리에 기계적으로 일어나 눈을 떴다. 그러다 불현듯 '이것이 과연 살아있는 삶인가'에 대한 의문의 올라온 적이 있다. 매너리즘이나 권태라는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저 중요한 무언가를 잠시 잊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살아있다는 것은 뭘까. 그전에 나는 살아있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먼저 해야 했다. 너도나도 정신없이 바쁘게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저마다 다른 삶의 가치관 속에서 우린 무언가를 붙잡고 살아간다. 삶에 대한 애정을 증폭시키는 무언가를 말이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하지만 너무나도 놓치기 쉬운. 이런 것을 보면 삶이라는 건 단순히 무언가를 하는 '행위'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까 살아있는 삶이란, 몸뿐만 아니라 영혼이 함께 깨어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가끔은 꼭 매 순간 부지런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런 삶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혀야 하니까.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을 넘어, 치열하게 고뇌하고 질문해야 하니까. 일종의 격렬한 역동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과 같다. 단 한순간도 멈출 수 없는, 멈춰서는 안되는 심장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런 의구심에도 나의 답은 늘 정해져 있다. 결국 나는 게으른 스스로를 견뎌내지 못하고 다시금 삶을 태울 수 있는 애정의 증폭장치를 찾아낼 거다. 곤히 잠들어있는 영혼을 깨우기 위해 말이다. 어차피 삶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가 선택한 곳으로 향하기 마련일 테니까. 


다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창문을 연다.

잠들어있는 사랑에 한 줌의 위로를 건내며

죽어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할 그 무언가를 위해 달려간다.


게을러진다는 건 뭘까. 

어쩌면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상태는 아닐까.


당신은 어떤지,

위로가 필요한건 아닌지,

깨어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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