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아무런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떠나던 때가 꽤 많았다. 불현듯 그랬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언가에 휩쓸리듯 살아가다 보면 종종 소중한 것들을 잃곤 한다.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주어진 시간은 겨우 이틀.
정말 오랜만에 홀로 제주를 찾았다.
정말 오랜만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직 해가 채 뜨지도 않은 새벽,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유난히 낯설다.
마음이 복잡해 정리가 되지 않을 때면 늘 이곳의 바다를 찾았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염없이 바다를 봤다. 햇살이 일렁이는 바다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 고요와 평화에 나도 함께 동요되곤 했다.
제법 매서운 바닷바람 사이로 파도의 울림이 전해진다.
철썩. 철썩.
모든 마음의 문을 닫고 오로지 청각에만 집중하다 보면 현실로부터 조금은 멀어질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 제3자로써 만끽할 수 있는 자유를 느껴본다. 마음에 투명함이 아주 잠시 머물렀다 간다. 어쩌면 이런 순간을 만나려고 여행을 하는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삶은 늘 내가 예상했던 방향과 다르게 흘러갔다. 지금의 삶 역시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던 삶의 형태를 띤다. 그렇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벅차고 힘에 부치지만 그 속에서 예상치 못한 기쁨과 행복을, 우연한 기적을 경험한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삶의 꿈을 발견한다.
삶의 예측 불가능성이 때로는 삶을 더 애처롭게, 하지만 풍요롭게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것처럼.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 알 수 없을 만큼이 지났을 무렵에야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를 켜고 어깨를 두어 번 털었다. 온몸에 덕지덕지 묻는 고민들을 툭 하고 떨어낸다.
햇살이 제법 강렬하게 비춰온다.
이곳의 날씨는 사뭇 대조적이다.
차가운 바람, 뜨거운 태양.
그 이질적인 모든 순간들이 좋았다.
소란스러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바다가 보낸 온기를 응원 삼아 적당히 따뜻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