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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May 21. 2022

바다 그리고

예전엔 아무런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떠나던 때가 꽤 많았다. 불현듯 그랬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언가에 휩쓸리듯 살아가다 보면 종종 소중한 것들을 잃곤 한다.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주어진 시간은 겨우 이틀.

정말 오랜만에 홀로 제주를 찾았다.

정말 오랜만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직 해가 채 뜨지도 않은 새벽,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유난히 낯설다.


마음이 복잡해 정리가 되지 않을 때면 늘 이곳의 바다를 찾았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염없이 바다를 봤다. 햇살이 일렁이는 바다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 고요와 평화에 나도 함께 동요되곤 했다.


제법 매서운 바닷바람 사이로 파도의 울림이 전해진다.


철썩. 철썩.


모든 마음의 문을 닫고 오로지 청각에만 집중하다 보면 현실로부터 조금은 멀어질  있었다. 찰나의 순간, 3자로써 만끽할  있는 자유를 느껴본다. 마음에 투명함이 아주 잠시 머물렀다 간다. 어쩌면 이런 순간을 만나려고 여행을 하는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삶은  내가 예상했던 방향과 다르게 흘러갔다. 지금의  역시  번도 꿈꿔본  없던 삶의 형태를 띤다. 그렇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벅차고 힘에 부치지만  속에서 예상치 못한 기쁨과 행복을, 우연한 기적을 경험한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삶의 꿈을 발견한다.


삶의 예측 불가능성이 때로는 삶을  애처롭게, 하지만 풍요롭게 만드는  아닐까 생각했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것처럼.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 알 수 없을 만큼이 지났을 무렵에야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를 켜고 어깨를 두어 번 털었다. 온몸에 덕지덕지 묻는 고민들을 툭 하고 떨어낸다.


햇살이 제법 강렬하게 비춰온다.

이곳의 날씨는 사뭇 대조적이다.

차가운 바람, 뜨거운 태양.

그 이질적인 모든 순간들이 좋았다.


소란스러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바다가 보낸 온기를 응원 삼아 적당히 따뜻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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