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에르노의 ‘사건’을 읽고
지난밤 새벽 두시까지 한참을 감탄과 감동과 감사로 가득한 대화를 주고받다 불현듯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듯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지 느껴졌다. 개인의 삶 속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메타포를 발견하는 일은 어떤 부분에서 아주 짙은 어둠을 직면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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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마무리하기엔 아쉬워, 모두가 떠난 새벽 혼자 남겨진 집에서 붉은 글씨로 ‘사건’이라 적혀진 책을 집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올라왔다. 아마도 누군가의 어둠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바라보는 과정에서 오는 당연함이 아니었을까. 나의 거짓이 부끄럽게 느껴진 걸지도. 그렇게 유일한 무언가가 와 창장 깨져버리는 묘한 감정 속에 책과 함께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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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삶을 정의 내린 적은 없지만 기록하는 이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존재하기 위함’ 이었다. 그 속에서 언제부턴가 ‘얼마나 진실 되게 썼는가?’라는 질문은 나를 괴롭히듯 따라다녔다. 진실과 삶을 어떻게 글 속에 담아낼 것인지에 대해 방황하며, 글쓰기에 대한 허영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녀의 글을 만난 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가 늘 고민하던 글쓰기의 허영조차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자신이 겪은 현실의 ‘사건’을 아주 낱낱이, 어떤 부분에서는 불쾌할 정도로 세세히 묘사하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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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과거의 기록이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이를 악물고 써 내려갔을지 감히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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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동원해 보거나 기억을 통해 떠올리는 일은 글쓰기의 운명이다. 그런데 ‘떠올린다’라는 말은 내가 다른 삶, 지나가버린, 그리고 잃어버렸던 삶을 다시 만났다는 감정이 드는 순간 기록할 때 사용한다. 그 감정은 ‘내가 거기에 다시 있었던 것처럼’이라는 표현으로 아주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번역된다.(아니에르노/사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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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통해 개인의 세계를 열어 보이기를 선택할 때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세계가 아닌 게 된다. ‘우리’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자전적 글쓰기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그녀의 글을 통해 배운다. 그 속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며 개인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가 되는, 보편성의 힘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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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통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려는 태도와 고통뿐만 아니라 쾌락, 절망, 희열 등 삶에서 만나는 그 어떤 것이든 판단이나 재단 없이 그저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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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페이지 밖에 안되는 이 짧은 책을 통해, 이 기록 속에 담긴 그녀의 현실을 통해, 나의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될 수 있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이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결국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행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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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 가능한 한 진실되게, 때로는 그것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부분을 직면시킬지라도, 기록하고, 기록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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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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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뿐이리라. 나의 육체와 감각 그리고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말하자면 내 존재가 완벽히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아니에르노/사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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