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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Mar 05. 2023

기록한다는것의 의미

아니에르노의 ‘사건’을 읽고

지난밤 새벽 두시까지 한참을 감탄과 감동과 감사로 가득한 대화를 주고받다 불현듯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듯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지 느껴졌다. 개인의 삶 속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메타포를 발견하는 일은 어떤 부분에서 아주 짙은 어둠을 직면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마무리하기엔 아쉬워, 모두가 떠난 새벽 혼자 남겨진 집에서 붉은 글씨로 ‘사건’이라 적혀진 책을 집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올라왔다. 아마도 누군가의 어둠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바라보는 과정에서 오는 당연함이 아니었을까. 나의 거짓이 부끄럽게 느껴진 걸지도. 그렇게 유일한 무언가가 와 창장 깨져버리는 묘한 감정 속에 책과 함께 잠에 들었다.

기록하는 삶을 정의 내린 적은 없지만 기록하는 이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존재하기 위함’ 이었다. 그 속에서 언제부턴가 ‘얼마나 진실 되게 썼는가?’라는 질문은 나를 괴롭히듯 따라다녔다. 진실과 삶을 어떻게 글 속에 담아낼 것인지에 대해 방황하며, 글쓰기에 대한 허영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녀의 글을 만난 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가 늘 고민하던 글쓰기의 허영조차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자신이 겪은 현실의 ‘사건’을 아주 낱낱이, 어떤 부분에서는 불쾌할 정도로 세세히 묘사하는 방식으로.

그녀의 과거의 기록이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이를 악물고 써 내려갔을지 감히 상상해 본다.

“상상력을 동원해 보거나 기억을 통해 떠올리는 일은 글쓰기의 운명이다. 그런데 ‘떠올린다’라는 말은 내가 다른 삶, 지나가버린, 그리고 잃어버렸던 삶을 다시 만났다는 감정이 드는 순간 기록할 때 사용한다. 그 감정은 ‘내가 거기에 다시 있었던 것처럼’이라는 표현으로 아주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번역된다.(아니에르노/사건 중)”

글을 통해 개인의 세계를 열어 보이기를 선택할 때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세계가 아닌 게 된다. ‘우리’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자전적 글쓰기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그녀의 글을 통해 배운다. 그 속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며 개인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가 되는, 보편성의 힘을 경험한다.

그래서 고통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려는 태도와 고통뿐만 아니라 쾌락, 절망, 희열 등 삶에서 만나는 그 어떤 것이든 판단이나 재단 없이 그저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80페이지 밖에 안되는 이 짧은 책을 통해, 이 기록 속에 담긴 그녀의 현실을 통해, 나의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될 수 있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이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결국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행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 가능한 한 진실되게, 때로는 그것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부분을 직면시킬지라도, 기록하고, 기록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 것.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

.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뿐이리라. 나의 육체와 감각 그리고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말하자면 내 존재가 완벽히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아니에르노/사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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