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 이대로 괜찮은 걸까??"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기계마냥 움직여지는 몸뚱이에, 낮은 조소가 흘러나왔다.
오늘도, 출근길 지하철에 올라탔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쁘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이어폰을 꽂고 세상과 단절된 듯 음악에 빠져 있는 사람들, 그리고 간신히 눈을 붙인 채 잠에 빠진 사람들.
그 모습 속에 묘한 공허함이 스몄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 탓일까. 늘 같은 시간, 같은 노선,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이 길이 어느새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마치 반복되는 루틴에 갇힌 듯한 느낌,
숨이 막혀왔다.
'직장인'이나 '회사원'과 같은 수식어는 내 인생에는 없을 줄 알았다.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얽매이고 싶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는 달랐다.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왜냐하면 '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삶의 영위'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현실이라는 무게는 언제나 내 앞에 벽처럼 서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많은 사람들이 안정된 삶을 원한다. 통계에 따르면 청년 중 70%이상의 공무원이나 대기업 취업을 선호한다고 한다. 안정적인 직장이 주는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은 길을 걷게 된다. 그것의 대한 의미부여는 차후의 일이다. 사실,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현대 사회에선 엄청난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감사하게도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일반 학교가 아닌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비교적 이른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세상이 정해놓은 길을 벗어나서 나만의 방향으로 향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세계를 여행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며 자유를 만끽했다. 세상에 정해놓은 길을 걸어가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은 없었냐고 묻는다면 100% 없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학창시절부터 20대 중반까지만해도 삶의 만족도는 나름 높았다.
대부분 취업을 준비하던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도 불안이나 두려움보다는 내가 선택한 길과 내 앞에 펼쳐질 미래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치기어린 자신감이었는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번 사는 인생 이왕이면 나답게 사는 삶에 대한 대한 갈망이 컸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불안보다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경험을 하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으로 호기롭게 지내왔지만 세상의 기준에 백기를 들어버린 것이다. 결국 20대 후반 나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내 발로 직장에 들어갔다.
한 동안은 꽤나 달콤한 날들이 이어졌다. 적당히 윤택한 삶, 적당히 안정적인 삶. 그러나 이상하게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딘가 늘 텅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릴적부터 숱하게 ‘왜’라는 질문을 던져왔던 내가 ‘왜’라는 질문을 잃어버린 탓이었을까. 나름의 합리화를 하며 ‘지금의 경험 또한 나에게 필요한 것일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를 했지만 공허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같은 일, 같은 사람들, 같은 루틴, 반복되는 일상에서 점점 지쳐갔다. 아무리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도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월급의 안정감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순간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당연히 이 전보다 훨씬 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기에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걱정 없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아주 잠시였다. 오히려 그런 행복에 취하면 취할수록 나는 더 회사에 목을 맸고 그럴수록 그만둘 수 없었다. 사실 월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적당한 선에서 최선만 다하면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야 퇴사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그러나 결심했다고 해서 바로 퇴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지금의 씀씀이에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져 있었고, 안정적인 월급을 담보 삼아 땡겨 쓴 카드값,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전쟁터로 뛰어들 용기가 사라졌다.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여러 사회의 기준들과 주변의 시선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더 이상 꿈만 쫓아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늘 꿈꾸던 이상을 현실로 옮길 수 있을까?’ ‘과연 지금 나에게는 어떤 선택이 가장 최선의 선택일까?’ 그러나 그런 질문 끝에 찾아온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우리는 왜 늘 같은 길을 걸으려고 하는 걸까? 아마도 익숙함 속의 안전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너무 치열하고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쁘며 이 와중에 나를 찾느니, 삶의 의미니 하는 것들은 하나도 쓸데없는 무용한 것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엇이 옳고 그르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익숙함은 성장을 막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방해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내 삶, 이대로 괜찮을까?'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거기 있었다. 정체된 삶, 빛을 잃어가는 나의 길. 중요한 것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내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찾아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삶은 항상 변화하고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성장해야할 의무가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다.
그쯤이었다. 내 삶에게 조금 더 깊이있는 질문을 던져보자 다짐했던 순간이.
삶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 삶, 이대로 괜찮은 걸까?“하고. 어쩌면 오래전부터 삶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묻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답하기 골치아파 지금껏 외면해 왔을 뿐. 그러나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그 질문은 더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탄탄대로만 펼쳐지지도 않는다. 그러고보면 인생은 참으로 신기하다. 언제나 알맞은 타이밍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질문들을 던져준다. 물론 내가 감히 예상할 수도 없는 것들을.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삶이 주는 예상을 뛰어넘는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뿐이다. 그 길을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삶이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니.
지금부터의 여정은 조금 더 잘 살고 싶었던 한 청년의 묻고 묻는 치열한 물음의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