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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Dec 18. 2018

일상의 메타포

칠레 : 발파라이소

서걱. 서걱. 종이 위를 스치는 연필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그의 숨결처럼 방 안 곳곳을 채운 연필의 서걱거림은 창문을 넘어 바람으로, 바다로, 파도로 변했다. 그리곤 부드러운 미풍이 되어 나의 두 뺨 위에 살포시 앉았다.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 손때 묻은 벽화와 비릿한 바다 내음이 가득한 이곳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사랑했던 도시 ‘발파라이소’다. 네루다가 복잡한 산티아고의 생활에서 벗어나 작품 활동에만 매진하기 위해 선택한 곳답게 도시의 복잡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오늘은 네루다의 집 '라 세바스티아나'에 가기로 했다. 그는 조용히 글쓰기에 적합하면서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리고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집, 외각에 있지만 항상 이웃과 교감할 수 있으며, 모든 것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교통이 좋은 집을 원했다고 한다. 약간의 언덕을 지나 도착한 곳에 위치한 집은 요구사항이 많았던 네루다가 단 번에 마음에 들어할 만했다. 시야가 확 트이는 넓은 창문과, 그 너머로 보이는 태평양의 조화는 없던 영감도 생겨나게 만들었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그의 손때 묻은 수집품들이 나를 반겼다. 한층 한층 오를 때마다 창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시時만 가질 수 있는 메타포를 찾아 헤맸을 그의 고뇌가 전달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고뇌 속에서도 그 누구보다 행복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높지도 낮지도, 너무 외각이지도 않은, 언제나 이웃들의 숨소리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그런 평화로움이 공존하던 곳이었으니까.



창문 너머의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며 멀미를 느꼈다. 마리오가 된 듯했다.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온 세상을 메타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질문을 던졌다. 온 세상이 메타포냐니, 이것은 흡사 세상이 실제인지 가짜인지라고 물어보는 것만큼이나 철학적이고 어려운 질문이었다.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온몸으로 느껴지는 모든 감각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네가 뭘 만들었는지 아니. 마리오?"
"무엇을 만들었죠?"
"메타포"
"하지만 소용없어요. 순전히 우연히 튀어나왔을 뿐인 걸요."
"우연이 아닌 이미지는 없어."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중 -




나는 언제나 우리의 삶이 평범함과 특별함의 경계선 줄다리기를 해야하는 것이라면 특별함을 선택하고 싶었다. 평범한 삶을 시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따분하고 틀에 박힌 일상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그것이 특별함이었다. 세상이 가진 아름다움을 어떻게 바라보며 표현해내느냐는 나의 감각 끝에 달려 있었다. 삶을 구성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다. 새로운 시선 속에서 창조되는 통찰력은 개개인이 느끼는 이질적인 감정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있다. 그래서 때로는 강렬하고, 예상치 못한 의외성에 긴장감이 넘치기도 한다. 네루다가 말한 메타포라는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마리오는, 나는 깨달았다. 이제 얼마든지 세상을 애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바람 속에, 꽃 속에, 태양 속에 그리고 사람 속에 이 세상 곳곳에는 메타포가 널려 있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고, 우린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였다.




반갑던 네루다와의 만남을 마치고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거실과 계단을 지나 커다란 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왔다. 가파른 내리막 아래로 이전과는 다른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개인의 삶을 영위시키는 힘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힘으로부터 시작된다.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바람이 불어왔다. 저 멀리서 네루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자네가 머무는 이곳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게.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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