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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Jun 26. 2019

기분 좋은 에너지

포르투갈 :  포르투

포르투에서 일 년 중 가장 성대하게 열린다는 성 주앙 축제를 마치고 다음날은 정말 기절하듯 잠만 잤다. 숙소 밖에서 단 한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벌써 여행 2주 차야..'는 마음과 '이제 겨우 2주밖에 안됐어?!'라는 두 가지 마음.

사람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체감상으로 어찌 되었든, 이 정도 되었으면 하루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줄 때도 되었다며, 오늘은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기로 했다. 한국에 대한 약간의 그리움은 예능으로 달래며.

하루의 휴식이 끝나고,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오늘의 포르투는 참 맑다. 하루의 시작은 도루강 근처에서 하기로 했다. 이틀 전 사람으로 가득했던 축제가 있었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평화롭고 조용했다.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 여유로움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강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노래를 틀었다. 박효신의. Good bye.

조금씩 타오르는 태양, 햇살을 시기하듯 불어오는 바람. 묘하게 조화롭게 어우러진 적당한 온도로부터 느껴지는 안정감. 그리고 “오늘 점심을 뭐 해 먹을래?”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두 분 사진 안 필요하세요? 제가 찍어드릴게요. 저도 하나만 찍어주시겠어요?”


이제 막 순례길을 마치고 왔다는 그는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하늘 거리는 노란 셔츠를 입고, 기분 좋은 미소를 띈 채로.


“그럼요! 얼마든지, 최선을 다해 찍어드릴게요”


그의 정중한 부탁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정. 말.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어줬다. 약간의 포즈 요구와 함께. 여행 중에 남은 건 사진뿐이라며, 이왕 찍는 거 인생 사진 남겨야 하지 않겠냐며.


내가 생각해도 나는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정말 열심히 찍어준다. 찍히는 걸 좋아하는 만큼 찍어주는 것도 좋아한다. 이상하게 귀찮을 수도 있는 부탁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시간을 카메라로 담는다는 건, 꽤나 매력적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먼저 말을 건넸다.

“혼자 여행하고 계신 거예요?”
“네, 저는 방금 막 산티아고 순례길 걷고 쉴 겸 포르투로 넘어왔어요. 내일 마드리드로 넘어가요.”
“그러시구나. 마드리드 진짜 좋아요!”

그리고는 뜬금없이 옆에서 조용히 있던 동생이 말을 걸었다.

“저흰 남매예요.”
“아 정말요?!”
“오해하실까 봐. 하하”라는 밑도 끝도 없는 말과 함께.


우리 모두 다 같이 웃었다. 동생에겐 나름대로의 유머였으리라.

“남매가 같이 여행한다니 신기하네요. 사진 정말 감사해요! 잘 나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안전하고 행복한 여행 하세요. 저희도 사진 감사해요.”
“네! 좋은 여행 하세요.”

그렇게 우리들은 쿨한 듯 쿨하지 않게 아쉬움을 남기며 헤어졌다.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은 대게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그 에너지에 전염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 안에 숨어있는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모습을 끌어내 준다고나 할까. 그렇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애써 노력해서 밝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들도 더러 있다. 서로의 에너지에 전염되고, 그 에너지가 꽤나 멀리 퍼진다는 걸 느낀 순간부터 그러했다. 새로운 만남 속에 굳이 우울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 감정은 혼자 강변에 앉아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센치하게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느끼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타인과 개인의 철저한 분리. 오히려 여행 중엔 그런 과정들이 더 엄격하게 구분이 되는듯하다. 그래서 그럴까 타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의 모습은 조금 낯설다.

'내가 그랬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울때가 있다.

누구나 다 이중성을 가지고있듯, 어느 하나만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느끼는 감정의 폭이 넓은 만큼, 우리의 내면엔 그만큼의 모습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하다.

노란셔츠의 그를 떠나보내고 나니, 햇살이 제법 뜨거워졌다.


달달한 에그타르트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들뜨는 이 마음을 더 깊이 느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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