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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Nov 17. 2018

정열을 그대에게

아르헨티나 : 라 보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탱고의 고장 라보카에 도착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으면 바람이 살며시 인사를 건넨다. 달콤한 둘세 데 레체 프라푸치노 한 잔, 그리고 격정적인 탱고 음악.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끈적거리는 땀과 바람의 시원함이 옷과 피부 사이를 파고드는 듯한 느낌이 아찔하게 느껴졌다.

라 보카에서 본 길거리 탱고 공연

라 보카에서 만난 탱고의 첫 느낌은 굉장히 강렬했다. 이곳에서 잘 갖춰진 화려한 공연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작은 항구 도시가 가진 분위기 그 자체만으로 예술적 분위기를 한껏 풍겼다. 어느덧 거리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탱고 음악을 배경음 삼아 세상에서 하나뿐인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거리를 거닐던 관광객들은 누구보다 공연을 즐겁게 즐겨줄 최고의 관객이 되었으며, 반짝이는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그런 관객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했다. 여기저기 박수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우아하게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는 다른 한 손을 그녀의 허리에 살며시 올려놓고, 음악의 선율 맞춰 그녀를 리드했다.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그녀는 그의 호흡을 따라 숨을 내쉬었다. 둘은 마치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듯 춤을 췄다. 아찔함을 넘어선 무언가. 그들의 춤에서는 왜인지 모르게 우울함과 슬픔이 묻어났다. 남녀 간의 애증처럼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빠진 듯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는 삶에 대한 애환이 담겨있었다.




탱고 Tango. 스페인의 플라멩코와 함께 가장 인상적인 예술로 꼽힌다는 명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나가 된 듯한 두 무용수가 주고받는 뜨거운 눈빛과 관능적인 춤사위는 탱고 특유의 매력을 뿜어냈다. 어느덧 음악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무용수들은 피아 졸라의 '리베르탱고' (Libertad- 스페인어 '자유'와 '탱고'를 합친 것)에 맞춰 춤을 췄다. 작은 박자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아주 미세한 움직임까지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그들의 춤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춤은 몸의 언어라고 한다. 화려하고 절도있는 움직임 속에 집약된 삶의 정서는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펐다. 긴장감 넘치는 멜로디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탱고는 라 보카로 넘어온 가난한 이민자들의 고독함과 격정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듯했다. 호흡을 멈추게 만드는 전율. '치명적인 유혹'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탱고. 그게 바로 탱고가 가진 아찔한 매력이었다. 탱고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오락적 즐거움과 함께 풍부한 철학적 표현이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음악이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탱고의 멜로디와 춤사위의 잔상이 남아있던 거리의 무대를 바라봤다. 어디선가 또 다른 탱고가 선율이 들려왔다. 손에 들고 있는 둘세 데 레체 프라푸치노의 달콤함을 집어삼킬 만큼의 경쾌한 인트로였다. 단숨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손이 다시 한번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그들은 어렴풋이 미소를 띤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곧이어 달콤했던 첫 멜로디와는 사뭇 다른 외로움과 고독함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한  반도네온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도 우리는 춤을 추는 거야.
삶의 고독은 언제나 멈추지 않고 반복된다는 걸 알잖아.
마치 우리의 춤처럼.
하지만 괜찮아.
이 음악이 끝나면 자유로워질 테니까.

탱고의 어원 : 바일리 꼰 꼬르떼 baile con corte (멈출 수 없는 춤)

 

라 보카 지역의 건물들은 전부 알록달록해서 사진 찍기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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