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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xperiencer May 10. 2023

아빠의 실패담 인터뷰

아빠의 딸로 얻은 인생의 인사이트

우리 집은 망했다. 정확히 말하면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빨간딱지만 붙이지 않았을 뿐 하루아침에 아빠 회사 부도가 나면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재산도 정리하고 아빠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땐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그냥 우리 식구 다 같이 모여 살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고 충격이 심한 아빠 건강만 괜찮다면 다 괜찮은 줄 알았다. 그 일이 있고 어느덧 6년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 가족, 아빠는 점점 마음이 망가져 갔던 거 같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사실 안 괜찮은 줄 알고 있었는데 다들 자기 챙기기에 바빠 서로 돌아볼 생각을 안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나는 아빠라면 금방 다시 회복할 줄 알았다. 원래 강한 사람이라 넘어져도 금방 회복했던 사람이라 이렇게 점점 무너져 갈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언젠가 아빠가 술 한잔을 하면서 이제 자기도 나이가 들어 겁이 많아졌다며 한탄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나 힘든지 몰랐다. 이년에 한번 응급실에 실려 가던 일이 일 년에 한 번으로 늘어나고 원래 좋아하던 술을 거의 의존성으로 자주 먹는다고 생각은 했지만, 다시 좋아지겠지, 일시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꽤 오래전부터 예고를 했던 것 같은데 가족 중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인제 와서 고치려 해봐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엔 아빠의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책이나 티브이에서 나오는 많은 슈퍼맨 같은 아빠들은 위기를 겪어도 잘만 벌떡 일어나던데 더욱더 쳐지고 늙기만 하는 아빠를 보면 너무 화가 나서 책 속의 아빠들과 비교하며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는데 우리 아빠도 책 속에 아버지들처럼 근사한 적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대학교 3학년 때, 비즈니스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었었다. 당시 복수 전공을 하면서 타 전공 필수 수업을 듣는 게 굉장히 부담이 많이 됐었다. 복수 전공이 이라는 이유로 주 전공의 교수님들의 미움을 받아서 점수를 제대로 안 주셨고 복수 전공이던 과목에선 타 전공생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해 양쪽에서 시달림을 받고 있던 때인데 디자인 전공인 내가 비즈니스 수업을 듣자니 너무 어려웠다.

점수는 거의 포기하고 수업을 듣는데 1~3학년까지 필수로 듣는 수업이라 그냥 재수강만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출석했다. 다행히 시험 대신에 과제로 중간 평가를 대신한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는데 과제가 ‘실패했던 경험을 가진 사업가 인터뷰’였다. 과제를 받자마자 젤 먼저 떠오른 건 아빠였다. 엄마는 우리가 아빠 흉을 볼 때면 아빠는 18번이나 부도를 맞고도 다시 일어나 성공한 훌륭한 사업가라며 아빠를 치켜세워 주곤 했다. 자세한 스토리는 잘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집안 사정이 나빴다 좋았다 했기 때문에 엄마가 말한 아빠의 오뚜기 성공담이 거짓말 같진 않았다. 어차피 따로 인터뷰 요청할 사람도 없어서 아빠로 정하고 어떻게 인터뷰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당시 아빠 사업은 최고 절정기 시기여서 아빠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엄마도 아빠를 도와 사업을 확장하던 참이라 아빠의 실패담이 와닿지는 않았지만, 대면으로 인터뷰 진행하기엔 서먹했던 시기라 아빠에게 무심하게 인터뷰 종이를 전달했다. 내일까지 해달라는 말과 함께…


설명도 없는 무심한 딸의 말에 아빠는 다음날 오랜만에 일찍 퇴근해서 무심하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질문은 총 6가지 정도 되었는데 특유 아빠의 글씨체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내용보다 일일이 타이핑할 생각에 귀찮기만 했다. 인터뷰 페이퍼도 스캔하고 간단히 피피티로 만들어 발표 준비를 했다. 과제 제출뿐 아니라 100명 앞에서 발표할 생각에 사실 인터뷰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100명이든 200명이든 그다지 떨지 않고 발표하는 편인데 그땐 발표만 하면 방치기 일쑤여서 트라우마가 있었다. 더구나 우리 과도 아닌 낯선 100명 앞에서 발표하자니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학 3년 동안 발표가 있는 수업에선 단 한 번도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없었다. 발표날이 됐고 아니나 다를까 밤새 정성껏 준비한 발표 자료와 스크립트가 무심하게 스크린 화면에 보이는 단어들을 읽는 수준의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한 3페이지 넘겼을까 갑자기 교수님이 발표를 중단시켰고, 나는 또 망했다는 것을 속으로 생각하며 떨리는 심정으로 교수님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님이 아빠의 인터뷰 페이퍼를 그대로 스캔해서 옮긴 첫 번째 페이지로 이동하라고 하셨고, 그 페이퍼를 쭉 보시더니 대신 발표를 시작하셨다. 이 순간이 십 년도 더 지난 아직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어떤 사장님을 인터뷰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훌륭한 경험을 하신 분을 선정했네요. 제가 원했던 내용입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누구나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앞으로 이 사람이 사업가로 성장할 수 있는지 아닌지가 결정됩니다. 성공하기는 쉽지만, 실패를 받아들이고 내 사업의 결점이 뭐였는지 분석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이 인터뷰 과제를 통해 여러분이 성공했던 경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났는지에 집중했으면 했습니다. 이 인터뷰가 정말 모범 답안이네요.


실패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주변의 도움과 직원들의 의기투합, 냉철한 분석을 통해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은 이 사장님의 경험담을 통해 여러분도 훗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길렀으면 합니다. 이런 귀중한 인터뷰 내용을 제공해 줘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22년 인생 처음으로 아빠가 자랑스러웠던 날이다. 아빠를 싫어하거나 미워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엄청나게 존경하거나 우리 아빠가 최고는 아니었는데 이날을 기점으로 아빠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내 인생의 발표에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은 날이기도 해서 그날 집으로 돌아가서 처음으로 아빠한테 진심의 감사 인사를 했다. 아빠는 엄청 쑥스러워 하셨지만…


이날을 계기로 아빠 인생과 아빠의 사업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렸을 땐 그저 내가 사달라거나 해달라는 걸 다 해주는 아빠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면 나는 부족한 거 없이 누구보다 누리며 자랐다는 것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다. 또 내가 그렇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빠의 노력 때문이라는 것을 잠깐 생각했다. 이후엔 또 대학 생활에 급급해 주변을 돌아볼 기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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