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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xperiencer Jun 11. 2023

고찰 활동 02

애견인이 되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최근에 제주도 한달살이를 했다. 제주도에 가면 항상 서쪽 애월이나 남쪽 중문으로 숙소를 잡았는데 처음으로 동남쪽 성산읍에 숙소를 잡았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여행이고 한 달이나 머물 숙소가 필요했기 때문에 조용한 장소를 찾다 보니 실제 로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신산리라는 마을에 숙소를 구했다. 숙소는 생각보다 이쁘고 개별 독채로 구성된 데다가 강아지가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어서 머무는 동안 강아지가 정말 좋아했다. 펜션은 총 11개 동이였는데, 한 가지 신기한 건 그중 50% 이상이 은퇴한 노부부가 강아지를 데리고 한달살이 중이었다. 한 달 동안 제주도 여행하는 내내 강아지와 함께하는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내가 머문 신산리는 지역 특성상 강아지가 집마다 있는 곳이었는데 강아지를 풀어놓고 키우고 있는 집도 많았다.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은 다 이곳에 모여 사는 것처럼 많았고 자유로워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강아지 모두 행복해 보였다. 특히나 나이 드신 분이 강아지와 산책하는 것을 보면 주인을 잘 따르고 행복해 보이는 강아지가 유독 많았다.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들고 자식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여가 시간이 많아진 노부부에게 강아지는 좋은 반려동물이다. 최근에 동생 친구가 세 남매가 모두 결혼하면서 엄마가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며 동생에게 우리 집 강아지를 이틀만 빌려달라고 했다. 이틀만 강아지를 키워보고 키울 만하면 입양을 생각 중이라고 하면서…

이틀 만에 강아지를 키울지 말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우리 강아지는 활발하기로 소문난 비숑 프리제라 산책도 자주 시켜야 하는데 동생 친구 부모님과 합이 맞을까?


우리가 처음 강아지를 키우게 된 날이 생각났다. 지금 키우는 강아지는 두 번째 강아지로 첫 번째 강아지는 12년을 살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첫 번째 강아지는 아빠가 데려온 아이였는데 엄마 바라기로 엄마만 졸졸 쫓아다니며 우리보다 엄마 아빠가 정말 이뻐하며 키웠다. 그리고 지금 키우는 두 번째 강아지는 내가 데려온 아이로 엄마 아빠보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나를 많이 따른다. 당시 첫 번째 강아지도 그렇고 지금 강아지도 그렇고 모두 실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인과 합이 잘 맞는다. 산책을 자주 못 시키는 엄마 아빠의 성향에 맞게 첫 번째 강아지는 몰티즈로 산책보다 집에서 엄마 아빠와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 겁이 없었다. 지금 비숑 프리제는 활동적인 나와 성향이 잘 맞아 거의 매일 산책하러 나간다. 강아지 운이 좋았던 건지 살다 보니 자연스레 합이 맞은 건지 모르겠지만 첫 번째도, 두 번째도 강아지도 성향에 맞게 잘 입양했다.


하지만, 그 첫 번째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 한 마리 더 우리 집을 거쳐 간 강아지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동생이 부모님께 상의도 없이 강아지를 맡아주기로 했다면 데려와서 이틀 동안 돌본 적이 있었는데 그 강아지가 악명 높은 코커스패니얼이었다. 당시 세 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없는 엄마와 사업 때문에 바쁜 아빠가 돌보기엔 지나치게 발랄했다. 심지어 덩치도 커서 초등학생 동생이 돌보기엔 무리가 있었고 중학생 시험 준비에 바쁜 나와 내 동생은 돌볼 정신도 없었다. 거기다 지나치게 활발하고 발랄한 코커스패니얼은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녀서 이틀 동안 엄마가 정말 힘들어했다. 강아지는 정말 귀엽고 이뻤다. 우리가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을 뿐. 그러다 마지막 날 보내기 싫다며 대성통곡하는 막냇동생을 보고 아빠가 굳은 결심을 하고 한 달 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몰티즈를 데려온 것이다. 좋은 선택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자기 성향에 맞지 않은 강아지를 입양해서 감당을 못하고 힘들어하는 경우를 꽤 많이 봤다. 자기 욕심에 대형견을 입양해서 집에 방치한다든지, 사회성이 없는 강아지를 입양해서 매일 애견 카페에 간다든지. 입양하기 전에 자기에게 맞는 성향의 강아지를 알 수 있다면, 강아지를 입양하는 사람도 입양되는 강아지도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요즘은 그래도 나와 맞는 강아지 MBTI 같은 재미로 하는 서비스는 있는데 그런 것과 비슷하게 내가 사는 환경, 내 직업, 내가 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 가족과 같이 사는지 혼자 사는지, 어떤 성격인지 등등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적합한 강아지 종류나 고양이를 추천해 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생각은 대학교 때부터 해서 이미 서비스 기획을 했었는데 10년 전이라 이런 비슷한 서비스라도 있겠거니 했는데, 없었다. 그땐 심지어 유기 동물도 많고 미디어에서 노출하는 유기 동물 입양 권고 때문에 보여주기식으로 입양했다가 다시 파양 하는 사례도 주변에 많아서 더 문제였다. 확실히 지금은 그때보단 유기 동물도 별로 없고 강아지 키우기 훨씬 편해졌지만, 그때는 주변 친구들도 유행처럼 고양이를 입양했다가 알레르기로 파양 하는 것도 옆에서 많이 봤다.


최근에 제주 여행을 강아지와 했을 때도 그렇고 합정동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란 게 대부분의 식당이나 카페 심지어 술집도 이제 애견 동반이라고 표시된 경우가 많았다. 그걸 보면 확실히 시절이 좋아지기도 했지만, 주변에 강아지 데리고 다니는 애견인이 늘어나면서 종종 강아지를 감당하지 못하는 주인을 볼 때도 많다. 그래서 과연 저 주인이 저 강아지를 끝까지 돌볼 수 있을까?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애견인이 점점 더 늘어나고 서비스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이 시점에 애견인으로 준비할 수 있는 서비스나 시스템도 도입되면 좋을 것 같다. 준비된 상태에서 만나야 강아지도 주인도 같이 오래 살 수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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