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외로운 시니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빠가 은퇴한 지 약 5년이 다 되어간다. 완전한 은퇴는 아니라 일주일에 삼일에서 사일 정도 고정적으로 출근하는 곳이 있지만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출근이다. 어쨌든 주기적으로 출근을 했던 직장인의 삶에서 은퇴한 지 5년이 다 되어가면서 우리 집에도 변화가 생겼다. 처음 가족들 모두 적응하기 힘들었다. 아빠가 집에서 삼시 세 끼를 먹는 것도 하루 종일 거실에 앉아있는 것도 엄마와 하루 종일 투덕거리는 것도 모두 어색했다. 적응하는 데 거의 2년쯤 걸린 것 같다. 아빠와 하루 종일 같이 못 있는다고 선언한 엄마는 거의 바로 일을 시작했고 혼자서 라면만 겨우 끓여 먹던 아빠는 이제 엄마 대신 우리 저녁을 도맡아 챙겨주고 주말마다 나와 장을 본다. 집안에서 물 한 잔도 손수 안 떠먹었던 아빠는 지금은 일을 하는 엄마보다 요리를 잘한다. 그렇게 적응하기까지 정말 많은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상을 버리고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요리를 배운 아빠와 요양 보호사 자격증부터 편의점 알바 지금은 식당 경영까지 본격적으로 다시 일을 시작하며 늦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게 된 엄마 이제는 모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아빠의 여가다. 지금은 그래도 일주일에 삼-사일 정도 출근을 하지만 은퇴 후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아빠는 주말에 회사 안 가고 쉬는 직장인처럼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티브이 앞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한참 사업을 했을 땐 주변에 아빠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는 그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가끔 낚시 다니는데 아빠의 유일한 취미였다. 다른 취미를 즐길 여유로운 시간도 없었지만, 술 때문에 망가진 몸이 다른 취미를 하기엔 체력이 되지 않았고 운동은 몸이 약해진 이후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은퇴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영화 ‘인턴’을 보면 첫 장면에서 은퇴한 주인공 할아버지가 자기 삶의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나온다. 매일 아침 커피숍에 가서 차도 한잔하고 친구들과 점심도 먹고 자신만의 삶을 꾸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하던 일을 중간에 멈추는 것은 적응이 쉽지 않은지 결국 다시 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취직한다. 그렇다면, 보통의 시니어들은 은퇴 후의 어떤 삶을 사는 걸까? 아무렇지 않게 골프를 치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까? 우리 아빠만 적응을 못 하는 걸까? 사회에서 활동하던 그 많던 시니어들은 은퇴 후 어디로 가는 걸까?
최근에 사이드 프로젝트 모임에 참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시니어들의 취미 활동이나 모임 주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었는데 그때 대부분의 사람이 그 문제에 대해 공감했었다. 자기 부모님께 필요한 서비스라고 하면서… 요즘에는 시골에는 있지만 옛날에는 마을에 하나씩 사랑방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도 비공식적으로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모이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에서 매일 모여 다 같이 화투도 치고 밥도 해 먹으며 친목을 다지는 모습을 많이 봤다. 시골도 아니었다. 수도권에 있는 마을이다. 근데 어느 순간 그런 곳이 없어졌다. 왜 없어진 걸까? 그렇다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디서 모이는 걸까?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 한두 분이 공원에 앉아 라디오를 듣거나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모임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런 문제점과 시장 기회를 포착했는지 작년부터 시니어 모임에 대한 ‘시니어 전용 문토’ 같은 앱이 여러 개 출시가 되었다. 서비스를 보면 대부분 취미 클래스를 주선하거나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모임을 주선해 주는 서비스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배달의 민족도 카카오 택시도 사용하지 못하는 시니어들은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자신이 원하는 모임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 설렁 찾는다 한들 위화감 없이 모임을 가서 적응할 수 있을까?
나는 문토를 정말 잘 사용한다. 모르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고 이야기 나누고 쿨하게 헤어지는 게 익숙하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들도 그런 모임이 익숙할까?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때 학급 모임으로 친해진 내 동기 엄마들과 아직도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하고 고민이 있을 때 고민을 나눈다. 정작 나는 그때의 친구들 이름조차 가물가물한데 그 친구들의 소식을 나에게 전달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모임을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임을 통해서 새로운 모임을 하기도 하고 친구들의 소개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도 한다. 그렇지만 단발성으로 새로운 모임을 만들고 헤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이 드신 분들은 특히나 은퇴하신 분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점점 적어지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익숙한 사람을 만나고 익숙한 곳을 간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시니어들도 있을 것이다. 앱을 사용하는 게 능숙하고 문토 같은 단발성 모임을 좋아하는 시니어. 몇이나 될까?
나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온라인보단 오프라인 모임이 익숙하고 단발성 모임보다 장기적인 모임이 익숙한 시니어들을 위한 오프라인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강아지들도 모임을 위해 유치원이나 카페에 가고 아이들은 키즈 카페에 가는데 왜 시니어들을 위한 공간은 없는 걸까? 공원? 이 더운 날 갈 수 있는 곳이 거기밖에 없는 걸까? 그래서 나이가 들면 골프를 배우거나 등산을 시작한다고 한다. 갈 데가 없는 시니어들이 모이는 유일한 곳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골프나 등산은 선뜻 시작하기에 시니어들 입장에서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약해진 무릎 때문에 생각보다 비싼 스크린 골프장 비용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까워서.. 그들이 좀 더 자신의 취미와 일상을 가볍게 또 자주 공유할 수 있는 도시판 사랑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