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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Oct 06. 2022

Ep 37: 매서운 결단력

나의 결정, 나의 책임

 비록 행정관의 방해 공작으로 소대원들의 전의가 많이 상실되기는 하였지만, 그 정도의 풍파로 무너질 우리 소대가 아니었다. 단단하고 견고한 소대원들 간의 결속력과 전문성은 만들어내기 힘들었던 만큼, 쉽사리 없어질 리도 없었다. 그 사달을 벌이고 나서도 큰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일이 일어났던 이후에 바로 최우수 소대의 깃발을 다시 우리 소대의 품 안으로 되돌려 놓았다. 저번 사건으로 인해 명분이 생겼으니, 더 이상 우리 소대의 독주를 막을 구실들은 없어 보였다.


 다시 평온한 기운을 되찾고, 부지런히 군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대장님께서 나의 휴가를 승인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장기 지원을 할 생각이 1도 없었던 나는 사단장 표창장을 수여받으면서도 입이 닳도록 대장님께 말씀을 드렸었다.


"대장님! 저는 단기 전역을 할 예정이어서 표창장은 장기 복무를 원하는 인원에게 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 잘한 사람이 받아야지! 장기 지원한다고 아무나 주면 되나?! 그리고 전역하더라도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으면 좋지 않나?"
"저야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장기 지원하는 간부들에게 주시는 편이...."
"됐다! 다 정해진 거다! 더 이상 말하지 마라! 쉿!!!!"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드문드문 장기 할 생각 없냐고 여쭤보실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렇지만 단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을 군대에서만 봉사하며 마무리하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군대식 불합리적인 업무 지시와 평생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단점들은, 그것들을 이미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나에게 장기 지원에 대한 아무런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이 컸던 나의 욕심도 한몫 단단히 했다. 그러한 연유로 확고한 나의 결심을 온천하에 알리기 위해 평소 단기 전역을 할 것이라며 호언장담을 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때가 다가오자 대장님이 스탠스를 바꾸시며 나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2 소대장! 너 장기 지원 안 하면, 전역할 때까지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휴가 안 보낸다!" 
"대장님! 제가 기존부터 쭉 단기 전역할 거라고 말씀드렸을 때는 그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고민 잘해보고, 잘 생각하거라! 대신 장기 지원하면 내가 책임지고 1주일 이상 휴가 보내주마!"
"하아.... 대장님! 저는 장기 지원할 생각이...."
"됐다! 그럼 휴가도 없고! 말할 것도 없다! 나가봐라! 혹시 생각 바뀌면, 마음 편히 방문하고! ㅋㅋㅋ"


 휴가를 못 나가서 미칠 것 같은 심정은 휴가를 나가고 싶어서 안 달나 있는 병사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휴가를 위해 예정에도 없던 장기 지원을 할 생각은 더더구나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1년도 넘게 남은 군 생활을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보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기 그지없었다. 이리저리 고민 상담을 해보았지만, 대부분 장기 지원을 하는 쪽으로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대답만 들려올 뿐, 누구 한 명도 내가 원하는 답변을 건네주지 않았다. 사방에서 취업난도 심하고, 대장님이 적극 지지해주는 상황인 만큼 장기 지원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일관되게 답변을 주자, 가스 라이팅이라도 당한 것처럼 나는 어느새 대장실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똑똑똑, 2 소대장입니다!"
"어이구 우리 2 소대장! 어서 들어와!"
"충성! 대장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그래! 결정은 했고? ㅋㅋㅋ"
"네....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잘 선택했다! ㅋㅋㅋ 행정관한테 가서 장기 지원서 작성하고!"
"예, 알겠습니다!"
"지원서 신청하면서 휴가도 1주일 신청해서 다녀와!"
"예, 감사합니다!"
"이 자슥아! 진작에 말 들었으면 얼마나 편하고 좋냐? ㅋㅋㅋ"


 이것이 옳은 판단인지 그른 판단인지 똥, 오줌을 못 가리고, 휴가와 취업난이라는 미끼로 탐탁지 않은 장기 지원서를 작성한 것에 대해서 여전히 마음속 한 구석이 찜찜했다. 그렇게 불편한 내색을 숨기지 못한 채, 생활하던 어느 날 사단 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장기 지원 대상자들은 사단 본부로 와서 인터뷰에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이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한탄하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이 된 것만 같은 암울한 기분으로 사단 본부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스무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인원들을 바라보며, 제발 나는 떨어지고 이 인원들 중에서 합격자가 나오기만을 간절히 염원하였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처럼 어리석었던 행동을 한 적이 있었던가? 아무튼 사단 참모들과의 1:1 면접을 순서대로 진행하였고, 나 또한 형식적으로 준비된 대답을 해가며 면접을 수월하게 진행하였다. 면접이 잘 진행될수록 나의 속은 타들어갔다.


'사단장 표창을 2회나 수상한 이력과 대장님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에 나의 합격 확률이 너무나도 높아 보인다. 젠장할! 이렇게 직업 군인으로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무탈하게 모든 면접을 마치고, 큰 탁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단한 다과회에 참석하였다. 그곳에서 참모장님(대령)이 우리 모두를 돌아보시며 나에겐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말을 이어가셨다.


"사단장님 예하 간부들을 대표해서 오늘 이렇게 군 장기 복무에 지원해 준 지원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올립니다. 추후 면접 결과는 각 부대를 통해 개별적으로 연락드릴 예정입니다. 그럼 오늘 면접 관련 기타 질문 사항 있는 인원 있습니까?"
"...."
"그럼, 질문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금일의 면접 및 간담회 일정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잠깐! 마지막으로 중요한 말을 못 했는데, 혹시라도 본인이 장기 지원을 하기 싫었는데 지원한 인원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손을 들어주기 바랍니다. 정말 장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장기 복무를 하기 싫은 인원이 합격해서 하고 싶은 사람이 장기 지원에 탈락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입니다."
"...."
"아무도 없는 건가요? 그럼, 이만 오늘 일정을 마치기로...."


 장기 복무를 피해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생각지도 않게 들려왔다. 처음에는 나의 두 귀를 의심했지만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정말로 이대로 모든 것이 결정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후, 엄중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주변에 있던 다른 인원들은 모두 놀란 눈초리로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다.


"거기 이름과 소속이 어떻게 되죠?"
"화학 지원대, 직접 지원 2 소대장 JJ입니다!"
"왜 손을 들었죠?"
"참모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말 장기 복무를 희망하는 인원이 장기 복무에 선출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음.. 좀 놀랍네요? 여태껏 이렇게 손을 든 사람은 없었는데.. 아무튼 본인의 의사를 잘 확인했으니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용기 있는 결단에 감사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면접장을 나서며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을 있는 힘껏 주먹 쥐으며 결심했다.


'나의 결정, 나의 책임, 나의 인생!'




 인생의 중대 기로 위에서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내가 선택해서 나의 길을 걸어 나가게 됐던 인생 첫 번째 결정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주변 지인들의 압도적인 장기 지원 지지 의견으로 인하여 내가 옳은 결정을 한 것일까라는 걱정도 많이 하였지만 이미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없었기 때문에 앞만 바라보며 나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장기 지원 포기'라는 사상 초유의 예기치 못한 소식을 접한 아버지는 다된 밥에 재를 뿌렸다며 끊임없는 잔소리를 해대셨고, 내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반드시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셨다. 너무나도 확고한 아버지의 저주에 잠시 움츠려 들기도 하였지만 나는 더 이상 남이 코치해주는 인생이 아닌, 내가 그려나갈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물론 아버지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녹록지는 않았지만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고, 먼 훗날 내가 후회하지 않았음을 입증하였으니, 다행스럽게도 나의 스토리에 후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 당시의 나의 마음은 아버지의 염려와는 다르게 매우 들뜨고 기쁜 상태였으며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장밋빛 상상을 꿈꾸고 있었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히며 차근차근 나의 미래 청사진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진정한 용기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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