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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02. 2022

Ep 9: 집요함

매우 고집스럽고 끈질긴 기질

어릴 적 주변에 삼촌이 참 많았다. 철수 삼촌, 영수 삼촌, 승민 삼촌....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닫게 된 것은 삼촌이 아니라 그냥 아버지 친구분들이셨던 것이었다. 아무튼 영수 삼촌은 아들 2명이 있었는데, 둘 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서 나를 곧잘 따르곤 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림도 그려주고, 만들기도 해 주며 함께 잘 어울리곤 했다. 큰아들은 나와 2살 터울이어서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어느 날 나에게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형!"

"응? 왜?"

"....."


불러놓고서는 말하지 않기 일쑤여서 이 녀석이 장난을 치는 줄 알았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심각한 고민이 있어 보였다.


"형한테 말해도 돼. 형이 비밀도 지켜주고 문제도 해결해줄게!"

".........."

"준비되면 말해, 그럼 형은 그림 그리고 있는다?"


한참을 뜸 들이던 녀석은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하늘아? 왜 그래? 형이 뭐 잘못했어? 울지 마.."

".........."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의아한 가운데 하늘이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형.... 사실 어떤 애가 나 괴롭혀...."

"응?"

"덩치도 크고, 힘도 세서 너무 힘들어...."

"몇 학년 몇 반 이름이 누군데?"

"3학년 4반 김만돌....."

"음.... 일단 형이 학교 가면 너네 반 찾아가서 그 녀석이랑 말 좀 해볼게.... 그러니깐 울지 말고 아무 걱정하지 마!"

"형! 나 아는 척하면 안 돼.. 알겠지?"

"걱정 마!"


덩치가 큰 녀석이라는 말에 조금 주저스러웠지만, 울고 있는 동생을 모른 체할 수도 없었던 터라 여러모로 안심을 시킨 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때려줘야 하나?'

'나보다 키도 크고 잘 싸우면 어떡하지?'

'내가 지기라도 하면 이게 무슨 망신이람....'


해결해준다고 말은 꺼냈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했던 초등학교 5학년생은 그렇게 홀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부딪혀 보자!'


주말이 지난 뒤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3학년 4반에 찾아가서 김만돌이라는 아이를 수소문했다.


"야! 김만돌이 누구냐?"

"나다!"


딱 봐도 덩치도 크고 험상궂게 생긴 녀석이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고, 하늘이라는 동생은 애써 나를 모른 체하고 있었다.


"응, 너구나.... 너 오늘 학교 수업 끝나고 나 기다려라!"

"싫다!"

"나 5학년 3반 JJ라고 하는데 안 기다리면 죽는다."

"뭐래?"


으름장을 놓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당돌한 녀석의 태도에 나는 내심 당황했지만 적에게 당황한 기색을 보여줄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고는 하교 시간에 맞춰 잔뜩 긴장한 마음을 다그치며 3학년 4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씨.... 뭐라고 그러지? 나보다 키도 크던데 어떻게 혼내주지?'


고민을 잔뜩 하며 3학년 4반 교실 앞에 당도하였지만 그 녀석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라? 없네? 무시한 건가? 이놈의 새끼를 혼내줘야겠군..'


그렇게 다짐을 한 후 다음날 오전 쉬는 시간 중에 다시 3학년 4반에 찾아가서 만돌이를 불러 세웠다. 고학년임을 인지했는지 존댓말을 썼다.


"너 어제 왜 안 기다리고 그냥 갔냐?"

"뭐가요?"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일찍 끝났는데 그럼 혼자 교실에서 기다려요?"

"어.. 기다려.."

"싫은데요? 메롱~"

"이 자식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던 만돌이는 나를 약 올리듯이 메롱을 연신하고는 자신의 반안으로 피신을 했고, 하늘이의 은근한 시선이 의식되었던 나는 무라도 썰어야 할 판이었다.


"너 오늘도 안 남아있으면 난리 날 줄 알아라!"


크게 호통을 친 뒤 뒤돌아 섰는데, 그 녀석이 친구들과 낄낄대며 웃어댄다. 나는 다시 뒤돌아보고 그 녀석들을 한참 동안 째려보았고, 그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만 웃고 눈치를 보는 듯 보였다. 웃음이 멈춘 것을 확인한 후 나는 5학년 3반으로 돌아왔다. 


'싸가지없는 녀석이 나를 조롱해? 아주 본때를 보여주마...'


같은 반 친구 한 녀석을 섭외해서 방과 후 3학년 4반으로 갔지만, 그 녀석은 또 줄행랑을 치고 아무도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수요일 오전 수업일을 기다리기로 작전을 바꾼다. 수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자마자 3학년 4반 앞으로 뛰어가 보니 아직도 선생님이 말씀을 하고 계셨다. 


'옳지, 오늘은 저 녀석을 잡을 수 있겠구나! 근데 뭘 어쩌지?'


딱히 해결책은 없었지만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터라 일단 종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종례가 끝나자 반 아이들이 우수수 뛰쳐나왔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만돌이를 찾았고, 그 녀석은 후다닥 뛰쳐나가기에 바빴다.


"야!!!!!"


분명 들렸을 건데 못 들은 체하고 냅다 달려가는 그 녀석을 보고 있자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달리기 하면 나를 빼놓을 순 없지.'


만돌이는 나를 회피하려는 듯 친구들도 팽개치고 이리저리 회피 기동을 실시했다. 한참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학교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힘들어 죽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나는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뿐 숨을 숨겨가며 지속적인 추격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녀석은 본인의 집을 알려주기 싫다는 듯이 엉뚱한 방향으로 걷고 또 걷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많이 지쳤던 나도 5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말없이 계속 눈에 뻔히 보이는 미행을 실시했다.


만돌이는 길 잃은 양처럼 갔던 길을 돌아 나오면서 나를 밀치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뛰면서 나의 포위망을 벗어나 보려고 노력했지만 끈질긴 나의 추적에 점점 전의를 상실해갔다. 1시간 이상의 무언의 추격전 끝에 지칠 대로 지친 만돌이는 길가에 털썩 주저앉았고, 나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야! 김만돌!"

"......."

"흑흑흑...."


녀석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길거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면서 경멸하듯이 나를 쳐다봤다.


"흑흑.. 왜 저를 괴롭히세요? 도대체 왜?"

"너 나 알아?"

"몰라요!! 흑흑흑..."

"너 너네 반 하늘이 알아?"

"하늘이요? 흑흑......"

"너 하늘이 괴롭혔다며? 그래서 나도 앞으로 너 매일 괴롭힐 거야."

"저 하늘이 안 괴롭혔어요! 진짜예요!"

"하늘이 말은 틀리던데? 네가 괴롭혀서 힘들다고 하던데?"

"아니에요, 저 진짜 안 괴롭혔어요...."

"그건 모르겠고, 네가 행동하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

"앞으로 하늘이 대할 때 착하게 잘 행동하고, 다시 괴롭혔다는 소리 들리면 또 괴롭힌다?"

".........."

"알겠어?!"

"네........."

"그럼, 가봐!!"


만돌이는 울음을 멈추고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도 일정 거리를 두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공교롭게도 집으로 가는 길이 똑같은 게 아닌가? 녀석은 계속 내가 뒤에서 쫓아오는 게 신경 쓰였는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왜 자꾸 따라오세요? 끝난 거 아니에요? 흑흑"

"어, 끝난 건 아니야!"

"네? 흑흑흑"

"하늘이 한테 물어보고 하늘이가 괜찮다면 끝난 거야."

"알았다니까요!"

"너 이놈의 자식이 형한테 자꾸 소리를 바락바락 지를래?"

"알겠어요.. 이제 제발 좀 가주세요.."

"야! 나도 이쪽이 집 가는 길이야! 너 군인아파트 사냐?"

"네.."

"야! 우리 아빠도 군인이야.. 너 자주 보겠네.. 누구라도 괴롭히다가 눈에 띄면 죽는다?"

"아아아 아악!!!!!! 나 우리 아빠한테 이를 거예요!!!!!!!"

"어 그래! 일러라 일러라 일본 놈!"


그 녀석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듯 울며불며 온 힘을 다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나 역시 따라붙어봤지만 이미 볼일은 다 끝났으니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


'녀석, 어느 동에 사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네?'


그렇게 찜찜하게 일을 마친 후 돌아오는 주말에 하늘이와 만나 별일 없냐고 안부를 물었더니, 더 이상 만돌이가 괴롭히지도 않고 본인을 살살 피해 다닌다는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간 채로 웃으며 동생에게 한마디 했다.


"어때? 형이 최고지?"

"응! 형이 최고야!"



글쓴이는 집요한 구석이 있는데,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어릴 적부터 집요했었던 것을 배울 수 있다. 집요하고 끈질기게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태도는 이 험난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선택사항인 듯하다. 남에게 고집스러운 사람들은 꺼리게 되지만 자기 자신에게 고집스러운 사람은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게 할 수 있다. 독도 적당히 쓰면 약이 되듯이, 스스로에게 적당히 집요 해지는 것은 어떠할까?


나의 고집은 나의 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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