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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01. 2022

Ep 8: 사랑의 매

사랑으로 때리는 막대기나 몽둥이, 회초리

초등학교 4학년, 또 한 번의 풍파를 무사히 헤쳐 나갈 즈음 친구들에게 크게 한턱을 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저축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던 나는 조심스레 나의 세뱃돈 등 각종 용돈들을 모아두었던 돈지갑을 열어서 돈을 세어보았다. 


'만 원은 만 원끼리, 오천 원은 오천 원끼리, 천원은 천 원끼리.... 앞, 뒤, 위, 아래 모양은 일정하게.... 만원은 맨뒤, 그 앞은 오천 원, 맨 앞은 천 원....'


돈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정리를 하면서 합계를 내어보니 21만 8천 원이라는 거금이 나의 보물 지갑에 고스란히 모여있었다.


'히히, 전학도 왔고, 친구들과 좀 더 친해지면 좋을 테니, 5만 원 정도만 빼서 오늘 크게 한턱 쏴야겠다.'


새로운 친구 패거리에 으스댈 겸 혼자만의 전략을 짜고는 스스로 흐뭇해했다. 당시만 해도 아이스크림, 과자 가격이 100원 내외였으니, 어린 나이에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주머니에 들고 다닌 겪이다. 혼자만의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으며, 부모님께는 일언반구의 상의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 등교를 한 후, 나의 패거리들에게 비밀스러운 파티에 대하여 의논하기 시작했다.


"야! 오늘 내가 쏠 테니깐 오락실 가자!"

"엄마가 그런데 깡패들 많다고, 위험하다고 가지 말랬는데?"

"야! 괜찮아! 경찰에 신고하면 되지!"

"음.. 난 생각 좀 해보고~"

"난 좋아! 우리 집 근처에 오락실 있는데, 그리로 가자!"

"좋았어!!"


삼삼오오 모여 허술한 계획을 짠 후 수요일 오전 수업 시간이 마치기 무섭게 우리는 오락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너네 스트리트 파이터라고 알아?"

"그거 요가 파이어~ 라댓꾸~ 어류갠~ 아도갠~ 와따따뿌갠~그러는 거 말하는 거지?"

"블랑카라는 괴물 있는데, 그건 몸에서 전기도 나와!"


이동하는 길에 흥분한 우리는 오락에서 나오는 공격 자세를 흉내 내며 한껏 흥을 올리고 있었다.


"자.... 도착했다!"

"불개미 오락실?"


오락실 앞에서 우물쭈물 대며 서로 먼저 들어가기를 머뭇거리기에 바빴다. 


"야! 우리 들어가도 되겠지?"

"선생님한테 걸리면 혼날까?"

"그냥 가지 말까?"

"............"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국 결단이 섰다.


"다 같이 왔으니, 들어가자!"


내가 먼저 들어가자, 뒤따르던 아이들도 하나둘씩 입장하기 시작했다. 오락실은 이제 막 문을 열었는지 기계는 화려한 화면 대신 고요하고 깜깜한 화면뿐이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전원을 켜자 화려한 디지털음과 동시에 시선을 사로잡는 멋진 게임 화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와~~~"

"야! 오늘은 내가 다 살 테니깐 마음껏 놀아보자고!"

"야호~!!"


그렇게 만 원짜리 한 장을 오락실 주인아주머니께 창문 너머로 건네주었다. 아주머니는 미리 준비해두신 거스름돈 9천 원과 함께 100원짜리 동전 10개를 거슬러 주셨다. 


"얘들아, 여기 돈 있으니깐 필요하면 가져가서 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지나는 줄 모르고 연신 돈을 거스르다 보니,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하셨고, 우리밖에 없던 오락실에는 덩치 큰 형들이 오면서 점점 붐비기 시작했다. 알게 모르게 무언의 압박감을 여기저기에서 받고 있던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신 오락실 파티를 이어가기에 바빴다. 그러던 중 사건이 발생한다. 3만 원 이상 돈을 거스르다 보니, 아주머니께서 이제 집에 가라며 돈을 안 바꿔주시는 것이다. 오락할 돈은 있었지만 동전이 없었던 나는 궁여지책으로 오락실 바깥 슈퍼마켓에서 과자를 구매하고, 그 잔돈으로 오락을 계속 이어갔다. 오락을 하고 싶은 욕구가 커지는만큼, 과자도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주인아주머니는 계속 우리들의 행태를 주시하고 계셨다. 참다못하셨는지 조그마한 골방에서 나오시더니 집에 가라며 우리들을 내쫓기 시작하셨다. 힘없는 조그마한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오락실 대문 밖으로 내쫓김을 당한 후 다른 오락실로 이동을 한다. 바깥에 나와서 보니 땅거미가 깔리고, 날도 제법 어둑어둑해졌다. 아이들은 이제 집에 가야 한다며 하나둘씩 떠나갔고,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채 터벅터벅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 앞 경비소를 지나려는 찰나, 어른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경비실 아저씨와 무언가를 열심히 이야기하고 계셨다.


"우리 애가 없어진 거 같아요! 혹시 이런 아이를 보면 꼭 연락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가슴이 터질 듯이 콩닥거리면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깊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부모님께 다가갈 수 없는 상황임을 인지한 나는 건물 사이에 몸을 숨긴 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숨을 죽이며 은폐 엄폐를 하고 있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켜가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 후로도 한참을 얘기하시다가 나오시더니 화가 난 듯 상기된 얼굴로 어디론가 차를 타고 이동을 하신 후에야 조심스레 숨었던 곳에서 빠져나와 007 첩보영화를 찍듯이 낮은 포복으로 경비실을 들키지 않고 무사히 통과한 후 집에 도착하였다. 집에 도착하니 사방이 어두컴컴하고 쥐 죽은듯한 적막만 흐르고 있었다.


'야호! 안 들키고 잘 들어왔다!'


무언가 해냈다는 잘못된 성취감과 동시에 집에서 자고 있었던 것처럼 보여야 했기에 씻지도 않은 채 잠옷으로 환복을 한 후 이불 속에 들어가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콩닥거리는 심장은 멈추지 않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부모님이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신발장에 있던 나의 신발을 확인한 아버지는 나의 방문을 여신 후 불을 켰다.


"너, 어디 갔다 왔어!!!!!!!"

"......."


목소리의 크기나 얼굴 표정으로 보아, 화가 단단히 나신 듯 보였다. 거실로 나오라고 말씀하신 후 회초리를 10개 정도 준비해 오셨다. 나는 속으로 '죽었구나'를 연신 외치며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아버지의 취조가 시작되었고 나는 어떻게든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유치한 거짓말에 속을 아버지가 아니셨고, 결국 오전 수업 종료 후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같이 놀다가 저녁 늦은 시간에 집에 몰래 들어온 것을 모두 이실직고했다. 압박감에 못 이겨 혼날 줄 알면서도 사실을 말하였지만 상황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저는 전학생이라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어요...."

"너 이놈의 새끼가!! 어디서 나쁜 버릇을 배워가지고 거짓말을 해?"

".........."

"너 몇 대 맞을래? 거짓말해서 잘못한 것만큼 말해!"

".........."

"백대요...."

"좋아, 그럼 오늘 크게 잘못했으니까 종아리 백대만 맞자! 종아리 걷어!"


무슨 자신감으로 백대나 맞겠다고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버지에게 조금이나마 반항하는 마음과 함께 거짓말이 나쁘다고 생각해서 '100'이라는 큰 숫자를 불렀나 보다. 그날 아파트 단지에서는 나의 외마디 울음과 비명소리가 약 1시간여 가까이 이어졌다. 처음 종아리 한 대를 맞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크게 인지했다. 나머지 99대는커녕 한대도 더 맞기 힘들었다. 손바닥을 맞던 그 고통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고통으로 인하여 악을 쓰고 발을 동동 굴려가며 거실 바닥을 눈물로 적시는 중이었다. 회초리를 어찌나 세게 휘두르시던지, 종아리 살결은 찢겨나가서 피가 나고 회초리는 부리지기 일쑤였다.


발을 동동 굴려대며 얼마나 맞았을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랑의 매는 나의 정신이 반쯤 탈출하고서야 겨우 마무리될 수 있었다. 울며불며 인생의 가장 혹독했던 고통의 시간을 버텨낸 나는 그 이후로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오락실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게 된다. 




희미해진 어린 시절 기억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한 거짓말이 대 탄로 나면서 거짓말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하게 생기게 된다. 거짓말, 그 자체를 싫어하게 된 것일 수도.... 어머니께서는 그날 내가 50대만 맞았다고 말씀해주셨다. 체벌이 끝난 후 아버지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잠도 잘 못 주무셨다고 한다. 그때는 죽을 정도의 고통을 맛본 상태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픔은 공감할 수 없었다. 


'사랑의 매'


사랑하는데 왜 때려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끔 해준 그 단어.... 자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려는 사랑의 매.... 요즘 시대에 그렇게 때리면 가정 폭력이다, 뭐다 난리가 나겠지만, 저 시대에는 그러한 것들이 용인되었던 시대였다. 폭력은 어떤 수단으로든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얘기하지만, 저 당시에는 그러한 것들이 가능했다. 요즘 아이들은 사랑의 매가 무엇인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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