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May 20. 2022

Ep 7: 괴롭힘

상대편에게 정신적ㆍ육체적인 고통을 주어 학대하는 행위.

인생 그래프가 항상 위아래로 요동을 치듯 행복한 날이 길어지면 슬픈 날도 다가옴을 직시해야 했다. 산골 소년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친구들과 비석 치기, 숨바꼭질, 술래잡기, 닭싸움, 개뼈다귀, 동서남북, 지불놀이 등등등 시골 생활도 그리 나쁜 것 같지만은 않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나를 잡아 세우셨다. 왠지 모를 불긴 한 느낌에 분위기가 많이 다운되었다.


"아들아, 우리 이사를 가게 되었단다."

"어디로요?"

"원주 알지? 아들 태어난 곳.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거란다."

"원주 알죠.... 전 그럼 친구들 새로 사귀어야 되겠네요?"

"이번에 이사 가면 이제는 이사 안 가도록 노력해보마. 알겠지?"

"정말로 이번이 마지막 이사인가요?"

"엄마가 아빠한테 이사 더 이상 안 간다고 말할게."

"알겠어요. 고마워요.... 엄마...."


말은 감사하다고 하였으나 머릿속이 뒤숭숭하고 심기가 매우 불편하였다.


'또.... 친구들 사귀려면 힘들겠지?'


그나마 어릴 적 지인이 있던 원주로 가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앞으로 어떤 험난한 길이 내 앞에 닥쳐올지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답답하고 복잡한 기분은 사라지게 할 수 없었다. 이사 날짜가 확정되었고, 사내 초등학교 3학년 친구들과 오전 수업 중간에 방문하여 작별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또 떠나가는구나....'


감수성이 풍부했던 나는 반을 나서자마자 옥석 같은 눈물을 두 뺨 아래로 소리 없이 흐느끼며 흘려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토닥토닥 안아주시며 친구들과는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을 거라며 끊임없는 위로를 해주셨다. 원주에 도착한 후 이사 관련 정리 및 서류 업무를 마치실 때까지 며칠 동안 어머니를 도와 집 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전학 일이 다가왔다. 어머니는 나를 교무실까지 데리고 가셨고, 담임 선생님께서는 어머니께 너무 걱정 마시라는 말과 함께 돌아가셔도 좋다고 하셨다. 당시 나의 기분은 낯선 학교와 선생님보다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 가고 싶었던 마음이 훨씬 컸지만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속으로만 애간장을 녹이고 있었다. 선생님이 나를 교실로 데리고 들어가셨다.


"자, 주목! 여기는 이번에 새로 전학을 온 JJ라고 한다. 모두들 친하게 지내고 싸우는 일 없도록!"

"네!!"

"JJ야, 친구들에게 자기소개 하렴."


한껏 주눅이 들어있는 나의 모습과는 반대로 반 아이들은 끼리끼리 활기와 여유가 넘쳐 보였고, 나는 그렇게 또다시 한번 낯선 이방자로서 기존에 만들어진 체제에 적응하며 속해야 했다. 서로 잘 어울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저 부럽기만 했다. 책상을 배정받은 후 나는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며 책과 공책, 필기구 등을 꺼내놓았다. 친구가 없던 나는 한동안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한 녀석이 조심스레 접근하며 말을 건다. 내심 반가웠지만 티를 내지 않도록 노력했다.


"야!"

"응?"

"너 100원 있냐?"

"왜?"

"너 저기 여자애 보이지? 쟤가 우리 두목인데 100원 내면 부하시켜줄게."

"..........."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100원을 내라는 거지? 그리고 부하는 무슨 개소리지? 이것들 정체가 뭐야? 알 수 없는 반감과 분노가 나의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듯 올라왔다.


"싫어."


나는 외마디 거부의사와 함께 꺼내놓았던 책을 펼치고 그것들을 읽는 시늉을 하였다. 그 녀석은 의아하다는 반응과 함께 두목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에게 돌아가서 속닥속닥 메시지를 전달하였고, 그 여자 두목은 크게 성을 내며 그 녀석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한 후 나를 죽일 듯이 째려보고 있었다. 그 녀석은 다시금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책상 위에 있던 책과 필통 등을 하나둘씩 손으로 들어가며 땅으로 떨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이없는 상황에 당황한 나는 그 녀석을 살기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야, 나도 이러기 싫은데, 내가 이거 안 하면 나 쟤한테 죽어...."

"야! 너 죽을래?"

"어??"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했고 그 녀석이 원했던 반응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야! 내 물건 주워서 다시 올려놔!"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그 녀석을 쏘아보기 시작했다. 순간 반에 정적이 흐르며 모든 아이들이 나와 그 녀석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전학 온 첫날부터 이런 부담스러운 관심은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게 뭔 일이지? 어쩌면 좋지?'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큰 혼란을 느끼며 기싸움을 펼치고 있던 중, 그 녀석이 꼬리를 내리고 그 여자 두목에게 돌아간다. 그러자 그 여자아이는 그 녀석에게 불호령을 친다.


"장난해? 빨리 가서 책상을 뒤엎든지 하던 거 마저 끝내라고!!!!"

"난 무서워서 못하겠어. 하려면 네가 직접 해."

"이 병신 새끼가!"


조금 떨어진 자리였지만 화난 만큼 목소리도 커서 대화 내용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도 한술 더 뜨듯 소리치며 말했다.


"너 오면 내가 죽여버린다! 그리고 오려면 네가 직접 와!"

"저 주제도 모르는 새끼가 어디다 대고 떠들고 지랄이야! 네가 직접 와 이 새끼야!"

"겁나냐? 겁나면 조용히 입 다물고 거기 있던가 이년아!"

"이년? 어디 이름도 모르는 새끼가 들어와서 지랄이야? 지랄이?"


오는 말이 곱지 않으니 가는 말도 곱지 않았고, 그 여자아이와 나는 일정 거리를 두고 고레 고레 소리치며 말싸움을 주고받았다. 그 여자아이는 쭉 찢어진 날카로운 눈과 사납게 생긴 얼굴로 연신 나를 공격해댔고, 나 역시 이판사판으로 공격적인 자세를 낮출 마음이 없었다. 그렇게 감정이 고조되면서 갑지가 무언가가 날아왔다. 확인해 보니 본인 필통을 나에게 던진 것이다.


"이 년이......"


뚜껑이 열려버린 나는 성큼성큼 그 패거리로 다가갔다. 패거리 전체와라도 싸울 각오로 다가갔는데, 감사하게도 다들 자리를 피해 주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여자아이가 앉아있던 맨 앞자리 책상 앞에 서서 그 아이를 힘껏 내려보았다. 그 순간 책상이 내 몸을 강타하는 듯한 느낌이 들며 뒤로 나자빠졌다. 나는 신속히 몸을 세운 후 책상을 부여잡고 그 여자아이가 앉아 있는 책상을 뒤로 밀어 대기 시작했고, 그 여자아이는 몸이 암초에 걸린 듯 빠져나가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넌 여자만 아니었으면 벌써 몇 대는 맞았어!!!! 내가 누군지 알고 건드리고 지랄이야!!!!"

"너 이 새끼야!!!!!!"


고성이 오가며 힘겨루기를 하는데 아무리 체구가 작다한들 남자인 나를 이길 재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순간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리며 오전에 봤던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이게 무슨 일이니?"


눈이 휘둥그레 커져서 우리를 쳐다보고 계시자 우리는 힘싸움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전학생인 줄 알았던 내가 오자마자 싸움질을 하고 있으니 선생님도 많이 당황하셨을 모양인 터. 우리 둘을 앞으로 끌어내시고는 이내 심문을 하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구경하던 아이들의 증언도 함께 터져 나왔다. 결국 그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로 사과하라고 종용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욕하고 책상으로 민 것은 미안하다고 먼저 말을 꺼냈고, 자존심이 강했던 그 여자아이는 끝내 사과를 안 하다가 선생님의 반복되는 다그침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울음을 그친 후 미안하다고 진심 없는 사과를 하였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생애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싸워본 나는 쿵쾅쿵쾅 뛰는 가슴을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는 항상 여자애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어머니의 말씀을 어긴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그렇게 또 다른 수업이 끝난 후 내 책을 내동댕이쳤던 그 녀석이 다시금 나에게 다가왔다.


"뭐야? 너도 싸우고 싶냐?"


싸울 마음은 1도 없었지만 약해 보이면 당할 것 같아 공격적인 말투와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너 멋있더라... 우리는 매일 그 여자애한테 당하고 있었거든.."

"응?"

"네가 우리 두목 할래?"

"아니, 난 두목 같은 거 싫어.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

"그럼 친구 할래?"

"그래 좋아, 친구 하자. 대신 앞으로는 이런 짓 하지 마!"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그 여자아이의 패거리는 그날을 기점으로 와해되어 나의 친구들이 되었고, 나는 그 패거리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리더가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처음으로 타인과 싸움을 한 이후, 나는 강한 성격과 승부욕, 의리, 상식, 보호, 복수 등의 명목으로 크고 작은 다툼에 휘말리게 된다. 물론 전문 싸움꾼은 아니었을뿐더러 싸움을 즐기지도 않았다. 사실 싸움을 싫어했다. 다만 누군가 나를 짓누르기 위해 해를 가한다면 물러서지 않았을 뿐이다. 싸워서 남는 것, 상처와 아픔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나의 신념을 지키고 건방진 녀석들을 처단하기 위해 나는 그렇게 싸워왔었던 것 같다. 물론 나 자신과의 싸움으로 수많은 시간들을 인내하며 고통을 참아내기도 하였다. 싸움을 피하는 것보다는 그 싸움의 본질을 얼마나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가 우리네 사회의 본질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약육강식,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
작가의 이전글 Ep 6: 과학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