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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03. 2022

Ep 10: 헤드락

프로 레슬링에서, 상대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죄는 기술.

어릴 적 WWE 프로레슬링은 드래곤볼이라는 만화 다음으로 인기가 높았다. 워리어, 헐크 호건, 언더테이커, 인간이 지니지 못할 것 같은 초인적인 힘을 마구 뽐내며 우리들의 눈과 귀를 매료시켰다. 친한 친구들과 항상 되지도 않는 레슬링 흉내를 내며 어린 시절의 에너지를 마구 소모하며 지냈는데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아씨........ 젠장........"

"왜?"

"JJ야, 5학년 7반에 어떤 껄렁거리는 애가 있는데, 거기 복도 지나갈 때마다 괴롭혀..."

"무슨 말이야?"

"아니, 자기네 땅이라고 통행료 내라고 하고, 막 소리 지르면서 툭툭치고 그래..."

"급식받아오려면 7반 앞은 반드시 지나다녀야 되잖아?"

"그렇지.... 아.... 짜증나....돌아서 다녀야하나?"

"음.... 그래? 내가 해결해줄게...."


가만히나 있으면 중간은 가는데, 괜히 또 정의의 사도께서 광림 하셨다. 항상 이놈의 입이 문제다. 친구가 곤욕을 치르고 있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 같으니 그 녀석을 처단해야만 했다.


'7반 그 녀석이 우리 반 앞을 지나가게 되면 똑같이 앙갚음해줄까?'


나가서 복도 위치를 확인해보니, 3반이었던 우리 반 앞쪽을 그 녀석이 지나갈 일을 1년이 지나도 없어 보였다.


'4반 위치만 됐어도 화장실 오고 갈 때 괴롭힐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녀석을 가만히 관찰을 해보니 지보다 크거나 강해 보이는 녀석들은 괴롭히지 않았고, 작거나 약해 보이는 녀석들만 괴롭히는 치졸한 녀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한 녀석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꼴을 보자니 함부로 덤볐다간 그 녀석 패거리로 인해 크게 낭패를 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비열한 자식이네.... 큰 놈들 지나다닐 땐 굽신굽신하는 꼴이....'


홀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나는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녀석이 혼자 있는 타이밍.... 쉬는 시간마다 복도로 나와서 저 멀리서 소리를 지르며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그 녀석을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솟아오름을 느꼈다. 그 순간 타이밍이 찾아왔다. 조금 잠잠해져서 돌아보니 그 녀석이 혼자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5학년 7반으로 옮기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7반 앞을 안 지나가기 위해 학교 중앙 계단을 통해 한 계단을 내려간 후 돌아서 다니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우리 반 복도에서 7반을 향해 걸어가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괜히 말했나? 꺼낸 말이 있으니 안 지킬 수도 없고.....'


후회 섞인 혼잣말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7반 앞을 지나 8반 앞에 당도하고 있었다.


'어라? 뭐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네?'


뒤돌아보니 그 녀석은 깔깔대며 자기네 반안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한참을 7반 앞에서 서성이다가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자 나는 다시 나를 멀리서 쳐다보고 있던 친구들 곁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음에 안도하는 몸동작으로 친구들에게 의문문의 신호를 보내고 있던 찰나에 내 뒤에서 어떤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야!!!!"

"........"

"그래 너!!! 너 몇 반이야?"

"3반"

"3반이 왜 여길 지나다녀? 여긴 7반하고 8반 얘들만 지나다닐 수 있어! 지나다니고 싶으면 통행료 내!"

"여기가 네 땅이냐?"

"어, 우리 반 앞이니 우리 땅이지!"

"여기가 왜 너네 땅이냐?"

"오늘 너 여기 지나다녔냐?"

"어"

"그럼 돈 내!!!!"


그 녀석은 말도 안 되는 단호한 논리로 나를 매섭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그 녀석에게 다가가서 한마디를 전했다.


"싫은데?"

"그럼 여기 지나다니지 말어! 다치기 싫으면!"

"그것도 싫은데?"

"뭐야 이 새끼가~ 야 그냥 오늘은 꺼져라~ 봐줬다~ 유후~"

"......."


그 녀석의 조롱하는듯한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오늘 이렇게 돌아간다면 그 녀석이 다음번에는 더 기세 등등해질 것이 분명했다.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그 녀석의 목에 헤드락을 걸었다. 나를 약 올릴 모양으로 허리를 숙이고 얼레리 꼴레리 자세를 취하면서 방심하고 있던 녀석은 순식간에 나에게 목이 잡혀버린 것이다.


"어라? 이 새끼가.. 야 이거 안 놔?"


나는 온 힘을 다해 그 녀석 목을 나의 겨드랑이로 눌러대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그 녀석을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야!! 이거 놔!! 정정당당히 싸워!! 놔주면 지금이라도 봐줄게!!"

"퍽 퍽 퍽"


있는 힘을 다해 헤드락을 유지하며 싸우고 있는데 나보다 큰 녀석을 잡고 있자니 힘이 조금씩 빠지는 게 느껴졌다. 결국 하는 수없이 헤드락을 풀어주고 다시 싸울 기세로 주먹을 꽉 쥐고 있는데, 그 녀석이 질질 짜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흑흑흑..."

"덤벼 이 새끼야~"

"넌 죽었어, 잠깐 기다려라!"


외마디 협박과 함께 7반 안으로 들어가서 한동안 나오지 않는 녀석을 기다리고 서있자니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갈까?'

'그냥 가면 도망갔다고 그러겠지? 기다려보자..'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7반 교실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키 큰 녀석이 그 녀석과 함께 복도로 나와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큰 키와 덩치에 압도당해 나는 전의를 상실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 네가 우리 반 애 때렸냐?"

"......."

"어, 충호야, 이 새끼가 다짜고짜 나를 때렸어. 빨리 혼내줘!"


이 비열한 자식이 키 큰 충호 라고 하는 녀석에게 이간질을 하며 나를 박살 낼 작정을 하고 있는 꼴을 보자니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인지한 나는 기가 잔뜩 죽어서 그대로 얼음이 되어 있었다.


"어이? 너 3반이라고 했지? 왜 싸웠어?"

"저기.... 그게.... 저 녀석이 7반 앞에 복도는 지나다니지 말라고, 지나다니려면 통행료 내라고 해서...."

"그래? 무슨 얘기야? 좀 더 자세히 얘기해봐!"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제법 대화가 통하는 녀석을 만난듯한 느낌도 들었고,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 녀석이 을 짓을 했네...."


키 큰 녀석의 입에서 판결이 떨어졌고, 나는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야, 충호야 내가 맞았다니까?"

"네가 잘못했으니까 사과하고 반으로 들어가!"

"왜 나만 갖고 그래... 우와와왕!!"


그 녀석은 울며불며 떼쓰듯이 반안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7반 앞 복도에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 난 7반 문충호야!"

"아.. 아니야, 내가 미안해. 괜히 싸움해서 일을 키워서.."

"너 깡다구 좀 있구나? 내가 너 편 안 들어줬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냐?"

"아무 생각이 없었어.. 저 녀석이 내 친구들도 괴롭혔고.."

"앞으론 이런 일 생기면, 먼저 싸우지 말고, 우리 반에 와서 나한테 먼저 얘기해. 그러면 내가 들어보고 해결해 줄게."

"어, 알겠어! 이해해줘서 고마워!"

"너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구나? 이름이 뭐냐?"

"JJ"

"음 JJ, 우리 친구 하자! 자 악수!"

"응? 어, 그래.. 친구.. 고마워!"


그렇게 그 사건은 그날 이후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 해결되었고, 나는 죽을 고비에서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으로 어리둥절하게 3반으로 복귀를 하였다.




'전화위복'이라고 하였던가? 하마터면 끔찍한 불상사가 일어날뻔한 사건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강한 친구를 얻으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사건이었다.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니면서 정의의 사도인양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던 나의 성격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싸움을 하고 다니거나 폭력을 일삼는다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나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불공정함, 불합리함과 싸우는 중이다. 그냥 가만히 조용히 사는 것이 편안하다는 것은 글쓴이도 잘 인지하고 있지만, 나 다음 사람은 조금이나마 편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성격을 버리지 못한 채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가끔은 나 같은 사람이 내 앞에 있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아직까지 그런 사람을 못 만나봤으니, 앞으로도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는 무기대로 사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안하다. 하지만 이 사회의 공정함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모두 조금씩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작은 결실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며 나아가야만 하는게 옳은 방향이지 않을까?

나 하나쯤이야?
나 한 명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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