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Jun 06. 2022

Ep 11: 자전거

두 다리로 페달을 밟아 바퀴를 돌림으로써 움직이게 하는 탈것.

어느 날엔가 12단 기어 자전거가 출시되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 나돌기 시작했다. 앞에는 톱니가 2개, 뒤에는 6개가 있어서 12단 기어라는 것이다. 기어를 올리면 언덕도 힘들이지 않고 손쉽게 올라갈 수 있다고 하니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12단 삼천리 자전거 한대만 있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영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12단 자전거라는 게 나왔는데, 기어가 있어서 언덕도 그냥 올라가고 엄청 좋대요~"

"그래, 좋겠구나.."

"자전거 타는 친구들도 많아서 같이 어울리면서 타면 참 좋은 텐데...."

"그렇겠구나.."


초등학생의 서투른 영업기술은 어른들의 감흥을 얻어내기에는 부족했던 탓이었을까? 반응이 영 탐탁지 않다. 스스로 안타까움을 삼킨 채 어떻게 하면 자전거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해보았지만 마땅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자포자기한다. 아침밥을 다 먹고 나니 아버지께서 출근을 하시기 위해 신발장으로 향하셨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시무룩하게 인사를 건네는데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환하게 웃으시며 출근하신다.


'나는 기분이 별로인데, 아버지는 왜 저렇게 웃으시는 걸까?'


하루 종일 자전거 생각만 하느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혹여라도 길가에서 12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부러움에 절로 입이 벌어져서 다물 줄을 몰라했다.


'아.... 부럽다.... 어떻게 벌써 12단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거지?'


공부도 손에 안 잡히고, 아이들과 뛰어노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자전거 생각뿐...

학원을 갔다가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는데 집전화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어머니는 속닥 속닥 하시더니 내 눈치를 보시며 황급히 끊으신다. 


"아들아, 아버지가 10분 후에 아파트 앞에 내려오라고 하신다. 알았지?"

"왜요?"

"뭐 사 오시는데 무거우신가 봐, 내려가서 도와드리렴."

"아.... 알겠어요...."


10분 후 아파트 앞으로 나가서 아버지를 기다리는데, 저녁노을이 지는 저 멀리 어떤 어른이 서투른 듯 갈지자로 자전거를 타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자전거도 진짜 못 타네.... 12단 자전거는 아니겠지....'


속으로 생각하며, 아버지 승용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서있는데, 그 자전거가 가까이 올수록 뭔가 낯익은 형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12단 신형 삼천리 자전거를 아버지께서 직접 몰고 오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했다.


"아들! 12단 자전거 오다가 주웠네?"

"진짜요? 우와~자동차는 어쩌시고요?"

"자동차는 버리고 자전거 냅다 주워왔지~"

"에이~ 거짓말~"


한참을 뒤적거리며 구경을 하고 있는데 비닐도 그대로 있고, 상태가 너무 좋아서 긴가민가한 상태로 아버지와 자전거를 싱글벙글하며 연신 번갈아 보기 바빴다.


"아빠! 이거 완전 새거 같아요! 완전 땡잡았어요!"

"흐흐흐흐, 이걸 누가 버리겠니?"

"네?"

"아빠가 사 왔다! 아들이 그렇게 노래를 불러대는데 안 사주고 베기나?"

"와 아아아 아~~ 아빠 최고!"

"앞으로 아빠 구두 열심히 닦아야 한다? 안전하게 타고? 알겠지?"

"예!!!!!!"

"어서 타보렴!"


나는 넘치는 아드레날린을 주체하지 못하고, 12단 삼천리 자전거를 시승해보기 위해 이리저리 확인해 보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타보는 큰 사이즈의 자전거여서 탑승이 쉽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간단히 타는 방법을 설명해 주시곤 나에게 한번 타보라고 말씀하셨다.


"자.... 여기 페달이 있는데, 왼쪽 페달을 아래 방향으로 내린 후, 왼발을 거기에다 올리렴. 그런 다음에 오른발로 바닥을 밀고 나가면서 자전거가 앞으로 굴러갈 때 오른발을 안장 너머로 옮겨서 계속 타면 된단다. 그리고....."


아버지의 설명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흥분한 마음으로 나는 자전거를 탑승하는 데 성공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랄까? 경쾌하게 페달을 밟으며 기어도 변경하면서 자전거를 타던 나는 순간 크게 커브를 틀고는 아버지께 돌아가면서 황급히 질문을 했다.


"아빠! 이거 어떻게 내려요? 못 내리겠어요!"

"하하하! 자전거를 탔던 방법을 반대로 하면 된단다!"


처음으로 타는 큰 자전거여서 어색했지만 가까스로 주변에 큰 턱을 발견하고는 그 근처로 가서 가까스로 발을 을 대고 멈출 수 있었다. 많은 연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버지는 흐뭇하신 듯 천천히 뒤에서 걸어오시며 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그렇게 자전거 인수인계식이 성공리에 마무리되고 며칠 후 나는 이 즐거움을 어머니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엄마! 자전거 타러 갈래요? 내가 뒤에 태워드릴게요!"

"엄마는 무서워서 타기 싫은데?"

"엄마! 내가 안전하게 태워드릴게요!"

"그래? 그럼 타러 가볼까?"


12단 기어가 있으니 어머니가 아무리 나보다 무거워도 태워드릴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하지만 실전은 만만치 않았다. 초등학생 5학년생이 어른을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방법대로 어머니를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하려고 하니, 무게를 못 이기고 자전거가 자꾸 갸우뚱했다. 가까스로 큰 턱에 한쪽 발을 디딘 후 페달을 밟아가며 무게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빨리 달리고 싶었지만 12단으로 페달을 밟다 보니 아무리 빨리 페달을 돌려도 속도가 빨라지지 않았다. 아파트 정문을 지나서 도로에 진입하니 도로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 때문에 겁나서 더욱 위축되었지만 뽐내기를 멈출 순 없었다. 


"엄마 걱정 마세요! 내가 안전히 다시 집으로 모셔다 드릴게요!"

"아들아, 엄마 엉덩이가 아프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그만 탈래!"

"예!"


아슬아슬 곡예 운전을 하고 있던 나는 속력을 높이기 위해 기어를 고단에서 저단으로 변경하였다. 


"드드드득드드드득"


성공적으로 기어 변경이 이뤄졌고, 속도만 높이면 되었지만 성인인 어머니를 뒤에 태우고 운전을 하다 보니 무게 때문에 페달을 제대로 밟을 수가 없었다. 아차 싶었던 나는 다시 고단으로 기어를 변경해보려 노력했지만 페달을 돌릴 수가 없어서 기어가 변경되지 않았다. 결국 휘청휘청 대다가 도로 갓길에 세워져 있던 유리가게 트럭 후미등을 들이박고는 그대로 도로 위로 고꾸라지고 만다. 


"쾅! 우당탕탕!"


양발을 한쪽 방향으로 앉아계셨던 어머니는 머리부터 땅으로 떨어지셨고, 아무리 흔들어 깨우려 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고, 아무런 대답도 없으셨다. 당황한 나머지 울며 불며 어머니를 붙잡고 말을 걸어보았지만 의식을 잃으신 어머니는 흡사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아무런 기척도 없으셨다. 트럭 후미등이 깨진 트럭 운전기사 아저씨가 유리가게에서 나오면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어머니는 도로에서 인도 가까이로 옮겨주신 후 경찰에 신고를 하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경찰차가 도착했고, 어머니는 여전히 혼수상태이셨다. 도착한 경찰은 나에게 사건 경위 취조를 하기 시작하였고,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저 멀리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사건 현장에 도착하고 있었고, 어른들의 질문 공세에 어린 나는 겁에 잔뜩 질려 패닉 상태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했다. 다행히 구급차가 도착하고 어머니께서 의식을 조금씩 되찾으시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죠? 누구세요?"

"아.. 깨어나셨나요? 저기 보이는 저 아이가 아주머니를 자전거로 쳐서 사고가 났나요?"

"무슨 일이죠?"

"사고가 난 것 같은데 제대로 본 목격자가 없어서 사고 처리 중입니다."

"저기 서있는 아이는 제 아들이에요. 아무 문제없으니 얘한테 뭐 물어보지 마세요."

"네?"


경찰은 내가 어디에 사는지, 집 전화번호는 무엇인지, 연신 물어보며 나는 조여오듯 취조하고 있었고, 나는 압박감에 못 이긴 나머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오물오물거리고 있었다. 구급대원이 어머니를 황급히 구급차에 옮겨서 병원으로 이송하려고 하자, 어머니는 몸을 세우시며 나에게 소리를 치셨다.


"아들아! 괜찮으니깐 경찰 아저씨한테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렴!"

".........."


정황상 피해자와 모자관계임을 확인한 경찰은 취조를 중단하고 차를 타고 어딘가로 돌아갔다. 구급차도 사이렌을 크게 울리며 병원으로 이동을 했다.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모두 떠나자 구경하던 구경꾼들도 하나둘씩 사건 현장을 떠나기에 바빴다.


"아저씨... 흑흑흑... 저기 자동차 깜빡이가 깨져서 어떻게 해드리면 좋을까요?"

".........."

"그냥 가렴......"

"괜찮으시겠어요?"

"그냥 집에 조심히 가고, 앞으로는 조심히 자전거 타렴...."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죄송하지만 가게에서 전화 한 통만 해도 될까요?"

"그러렴..."


나는 아버지께 사고 사실을 유선전화로 알린 후 잔뜩 풀이 죽어서 90도로 인사를 한 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자전거였지만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는 그 시점엔 그 자전거를 타기가 너무도 싫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전거가 미웠던 나는 1층에 자전거를 자물쇠도 채워놓지 않은 상태로 내팽개치고는 집으로 들어가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 침대에 누워서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서럽고 구슬프게 소리 내어 울어대기 시작했다. 침대가 다 젖도록 울고 또 울다가 지쳐서 잠에 들었나 보다. 잠에서 깨어나 시간을 확인해보니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나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왜 하필 자전거를 태워드린다고 했을까? 이 바보 같은 자식!!!'


불안함과 후회로 가득 찬 감정으로 인하여 다시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따르르르릉"

"여... 보세요? 흑흑"

"응.. 아들아.. 아빠다.. 괜찮니?"

"아빠.. 흑흑.. 엄마는 어때요?"

"엄마는 괜찮으시단다. 너무 걱정 말고, 검사 좀 받고 가봐야 할 거 같아서 시간이 걸리니 밥 잘 챙겨 먹고 기다리고 있으렴.."

"네....."


밥은 애초에 먹을 생각도 없었고, 어머니만 무사히 다시 돌아오시기만을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한참 후 아버지가 어머니를 부축하며 집으로 돌아오셨고, 진단 결과 경증 뇌진탕으로 머리에 찰과상을 입어 피를 흘린 탓에 뇌출혈이 예방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진단해 주셨다고 한다. 자전거 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아찔하다.




내가 겪었던 이 사건을 회상해보면 현진건 작가님의 '운수 좋은 날'이란 작품이 생각난다. 나에게는 운수가 대통인 날인 줄 알았지만 결국은 그 행운 때문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을뻔한 악몽적인 하루이기도 했다. 인생사 항상 오르막과 내리막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그 상승과 하강이 짧은 순간에 급격히 온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자전거 헬멧에 대한 안전 규정도 없었을뿐더러 안전에 대한 개념 자체가 매우 낮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렇게 큰 홍역을 치르지 않았었나 생각된다. 

부모님은 본인들이 곤경에 처하시거나 아프시거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항상 자식인 나를 먼저 걱정해주시고 챙겨주신다. 이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부모님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이 다시 한번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부모님"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Ep 10: 헤드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