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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07. 2022

Ep 12: 탈선

말이나 행동이 일반적인 규칙이나 규범 등을 벗어나 나쁜 방향으로 빗나감

중학교 입학 고사가 사라지고 뺑뺑이로 다니게 될 중학교를 배정받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학교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던 나의 입장에서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지만 학교 배정에는 불만이 컸다. 친한 친구들과 다시 한번 뿔뿔이 흩어져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배정받은 학교는 깡패들이 많기로 악명 높았던 학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공부를 잘 가르치는 학교라며 내심 반가운 기색을 밝히고 계셨다. 성적이 떨어지면 두들겨 맞다 보니 안 맞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해야만 하는 속사정은 잘 모르셨을까? 


그 중학교는 두발 자유화가 없는 학교였기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포츠머리로 커트를 해야만 했다. "싹둑싹둑" 짧아진 머리의 내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다. 머리를 커트한 이후에는 시장에 가서 교복도 하나 맞췄다. 바지 동계 2벌, 하계 2벌, 마이 1벌, 여름 상의 2벌, 겨울 상의 2벌.. 뭔 놈의 준비할게 이리도 많은지 중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짧은 머리에 교복을 입고 나니 제법 중학생 테가 나왔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왠지 모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더 무거워진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싫어서였을까?


무사히 입학식을 마치고 학교 주변을 새로 사귄 입학식 친구들과 탐색했다. 골목도 많고, 스산한 분위기가 소문대로 깡패들이 많이 나올 것 같은 환경이었다. 그러던 중 한 녀석이 제안을 한다.


"JJ야! 우리 집에 놀러 갈래?"

"좋지~"


새로 사귄 친구의 집은 한 시장통 뒤쪽 야산 골목길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다. 겉에서 보기에도 못 사는 동네인 것이 티가 낫지만 자칫 그 친구가 어색해할까 봐 평범한 대화를 이어가며 함께 등산 아닌 등산을 이어갔다.


"이야! 공기도 좋고! 전경도 좋고! 마음이 뻥 뚫린다!"

"그럼 너도 여기서 같이 살래?"

"컥.. 난 우리 부모님이랑 살아야지.. 하하"

"야! 라면이나 하나 끓여먹고 같이 나가서 놀자!"


허름한 집안으로 들어가서 능숙한 솜씨로 함께 라면을 끓여 먹은 후 집 밖으로 나와서 함께 놀이를 시작했다. 제법 불량해 보이는 동네 친구 녀석들도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함께 이 얘기 저 얘기해가며 정신없이 놀다 보니 어느덧 하늘은 석양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 친구는 담배를 한 가치 꼬나물더니 나에게도 한대 피겠냐고 물어본다.


"난 됐어! 어릴 때 호기심에 아빠 재떨이에 있던 꽁초 펴봤었는데 재채기를 하두 심하게 해서 그 이후론 손도 안대!"

"원래 처음엔 다 그래! 지금 다시 피면 괜찮을걸?"

"아니야, 난 그냥 안 필래. 고맙지만 사양할게!"


동네 친구들과 오손도손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량 청소년들이 따로 없었다. 구름 과자를 맛있게 먹은 녀석들은 또 뭐하며 놀지 궁리를 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나 타러 갈까?"

"오토바이도 있어?"

"대여점에서 빌려야지."

"야! 비싸지 않냐?"

"뭐.. 비싸겠지? 후훗.."

"야! 나는 날도 어둑어둑해졌고, 이제 집에 가야겠다. 늦게 가면 혼나!"

"어.. 그래! 그럼 조심히 가! 가는 길은 알지?"

"어, 그냥 길 따라서 쭉 내려가면 되겠지.. 뭐.."

"혹시라도 내려가다가 어떤 형들이 붙잡으면 내 이름 말하면서 놀러 왔다고 말해!"

"깡패 형들 있어?"

"어 좀 많은데, 나 안다고 하면 운 좋으면 그냥 보내줄 거야! 하하하!"


그 녀석은 장난조로 말하는 듯 보였지만 순간 겁을 먹은 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동네였기에 조금 겁에 질렸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성급히 작별 인사를 하고는 후다닥 좁은 골목길을 뛰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혹시나 깡패 형들을 만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동네를 벗어난 후 나는 한 숨을 푹 내쉬었다.


'휴.. 그 녀석은 저 위험한 동네를 매일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건가? 대단한 녀석일세..'


한편으론 안쓰러우면서도 동시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집에 무사히 도착한 나는 그 홍역을 치르고 나니 다시는 그 동네로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생전 처음으로 경험한 그 스산한 분위기를 다시 느끼기 싫어서였다. 그래서 그 친구와 놀 때는 그 친구 집에 가는 대신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어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곤 했다. 매일 그 친구와 놀러 다니다 보니 학교 성적은 뚝뚝 떨어져서 어느덧 하위권을 맴돌고 있었다. 성적을 보며 심각성은 인지했으나 그 친구와 노는 게 재미있었던 나는 낮은 성적 덕분에 선생님들께 매일같이 허벅지를 맞고 뺨을 맞아가며 고통스럽고 힘겨운 학교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1학기를 엉망진창으로 마치고, 여름 방학 후 2학기를 시작하는 시점에 그 녀석이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한 채로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 후문에 와 있는 걸 보게 되었다. 방학 동안 만나지 않아 전후 사정을 물어보니 선생님한테 맞는 것도 지겹고, 짜증이 나서 자퇴서를 제출하고 학교를 그만 다닐 거라는 것이었다. 학교를 그만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나로서는 한편으로 그 녀석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진정한 불량 청소년의 길로 진입하는 그 녀석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나는 그 녀석과의 만남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고, 자연스레 학교 생활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불량함으로 선생님들께 체벌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처사였고 '교사 체벌'이라는 단어는 사회 분위기상 언급할 필요도 없는 '사랑의 매' 였었다. 다소 불량하게 놀면서도 이 것이 똥인지 된장인지에 대한 개념은 이미 확고히 나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성격상 나라는 사람은 크게 탈선할 위인은 못되었다.

 

담배는 태우면 안 된다. 

남을 괴롭히면 안 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부모님이 속상하실 일은 하지 말자.

선생님 말씀 잘 듣기.


하마터면 중요한 인생의 변곡점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뻔했지만, 그 친구의 자퇴로 인하여 새로운 방향성이 나에게 제시되었고, 나는 그 방향성을 타고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누구에겐 불행이지만 누구에겐 그 불행이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가 아닐까?


유유상종

나의 역량에 따라 내 주변의 사람들이 구성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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