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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08. 2022

Ep 13: 깡패

폭력을 쓰면서 못된 짓을 하는 무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군인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우리 집은 항상 아침을 일찍 시작했다.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간단히 예배를 드린 후 아침을 먹었다. 이를 닦고, 부지런히 교복을 입으면 아버지께서 빨리 나가자고 손짓을 하셨다. 현관을 나서서 집 앞으로 나가면 운전병 아저씨가 차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경례를 하고는 우리가 모두 탑승하면 아저씨도 차에 탑승하셨다. 항상 07시 정각에 출발했던 것 같다.


"운행 시작하겠습니다."

"1단 변속하겠습니다."

"2단 변속하겠습니다."

"좌회전 깜빡이 켜겠습니다. 우회전 깜빡이 켜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묵묵부답이신데도 혼자 열심히 주문을 외우듯 운전병 아저씨는 그렇게 끊임없이 불필요해 보이는 설명을 이어가고 계셨다.


"정차하겠습니다."


07시 15분쯤, 원주 군인 극장 사거리 지하상가 입구 부근에 잠시 정차하였다. 나를 위한 정차였다.


"아빠, 조심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형식적인 인사를 건넨 후 차에서 내렸다. 지하상가 사거리에서 중학교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10~15분 내외, 이젠 내 두발에 의지해서 학교로 걸어가야 했다. 항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인적도 드물고, 그렇다 보니 걸어서 학교에 도착해도 내가 거의 1등으로 반에 입성한다. 여느 날과 다름없던 또 다른 하루였지만 그날은 평소와 달리 지하상가 통로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 멀리 노란색 후드티를 잔뜩 눌러쓴 사람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이른 아침에 사람이 다 있네?'


대수롭지 않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왼쪽으로 걷고 있는데, 그 사람도 왼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그를 지날 칠 심산이었는데, 그 사람 역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서 그대로 걸어오는 게 아닌가? 간격이 줄어들수록 돌아오는 압박감은 높아졌다.


'술에 취했나? 뭐지?'


다시 황급히 왼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걸어가는데, 그 사람이 또 내가 걸어가고 있는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간격을 좁혀왔다. 우연이 아닌 의도임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자석에 이끌리듯 내 코앞까지 온 그 사람은 갑자기 나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야! 조용하고 따라와!"

"........."


순간 무언가 일이 잘못됐음을 인지한 나는 상대가 행인이 아닌 깡패임을 알아챘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라 너무 늦게 알아챈 나머지 그대로 붙잡히고 말았으니, 물에 젖은 생쥐처럼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가 되었다.


"돈 있냐?"


나는 지갑을 꺼내 보여주며 사실대로 말하기로 결심했다.


"형, 저기요...."

"돈 있냐고? 이 씨발새끼야! 뭔 말이 많아! 죽고 싶냐?"


말을 하기 싫었지만 말을 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지갑을 활짝 열어 보여드리며 맞을 각오를 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어제까지 5,000원이 있었는데, 부모님께 치악예술관 공연 티켓 선물드리고 싶어서 2장을 샀거든요? 지금은 2500원짜리 공연 티켓 2장밖에 없어요...."

".........."

"혹시 괜찮으시면, 이 공연 티켓으로 대신드려도 될까요? 제가 지금 돈이 정말 없어서 그래요.... 용돈 모아뒀던 돈을 다 모아서 산거여서...."


끝말을 흐리며 깡패형의 선처를 간절히 바랐지만, 묵묵부답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 형의 시선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애매모호한 침묵만 계속 흐르자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너, 착한 애구나?"

"네? 아.. 아니에요.. 부모님께 받기만 하고 해 드리는 건 없는 것 같아서요.."


깡패형의 의외의 답변에 당황한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서 그 형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지갑만 한 손으로 들고 있었다. 무언가 결심한 듯 깡패형이 말을 이어나갔다.


"하아.... 너 이른 아침이나 사람 없을 때, 이런 길로 다니지 마! 형 같은 사람 또 만나면 그땐 맞을 수도 있고 끌려다닐 수도 있어!"

"아.... 네...."

"그리고, 부모님께 잘해라! 가봐!"

"형, 이거 티켓이라도 드릴게요!"

"됐어! 부모님께 드려! 그리고 조심히 가라!"


우물쭈물 서있는데, 어깨동무를 풀어주며 나를 한번 쳐다보시고는 많은 생각이 드는지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서 가라! 학교 늦겠다! 항상 조심히 다니고!"

"형, 감사합니다. 항상 몸조심하세요!"


90도로 인사를 한 뒤 천천히 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를 돌아보니 그 형은 이미 떠나고 없는 상태였다.


'휴우, 좋은 깡패형을 만나서 다행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다잡으며, 학교로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지하상가를 벗어나서 큰 도로로 나오니 한결 안정감을 되찾았다. 


'앞으로는 지하상가로 내려가지 말고, 기다리더라도 횡단보도로 다녀야겠다.'


홀로 다짐을 하고는 무사히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1541(수신자 부담 전화)로 아버지께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1시간 후쯤 우리 중학교로 오셔서 깡패의 인상착의와 장소, 마주친 시간 등등을 나에게 물어보시기 시작했다.


"아빠! 깡패는 나쁜 거 아는데, 그 형은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 않으니깐 안 잡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아빠가 알아서 할게!"


아버지는 직원들을 동원해서 지하상가 사거리 주변을 탐문하시는 듯했고, 다행스럽게도? 이미 한참이 지난 시점이어서 그 깡패형을 못 찾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무슨 동정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앞으로는 더욱 조심히 다닐 것을 다짐했다. 그날 이후로는 아버지께서 출근길을 조금 돌아가시더라도 나를 학교 정문에 내려주셔서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확고한 등교 1등은 타의적으로 멈출 수가 없었다.




나의 효심에 감복한 그 깡패형은 무언가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듯 보였다. 다행히 그 듣지 못한 사연 덕분에 첫 번째 깡패 걸리는 경험을 아무 사고 없이 넘어가게 됐다. 글쓴이가 어릴 적에는 왜 이리 깡패가 많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많지 않은 총 3번의 경험 중 가장 무난하게 상황을 모면했던 경험이었다. 아무리 나쁘게 보이더라도 그들 역시 그들 나름의 인생이 있고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다. 깡패 행위에 대한 변론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들 또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의 여러 가지 변수와 결과물로 발생한 잘못된 형태의 희생자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을 해본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없더라....
안 알려고 하다 보니 나쁘게만 보인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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