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끄적끄적

나의 어머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

by JJ

내가 늙어감에 따라 나의 어머니도 연로하고 쇠약해져 가시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기다려주실 것만 같았던 나의 보호자이자 엄마인 어머니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모양새를 달리하셨다. 젊은 시절에는 우뚝 솟아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처럼 맛있는 과일도 시시때때로 제공해 주시고, 온몸으로 따가운 햇빛을 막아주시며 쉬었다 갈 수 있는 그늘도 제공해 주셨지만, 이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퍼주시다 보니 어느덧 그 형체는 대부분 사라지고 그 그루터기만 아름다웠던 나무가 있었던 자리였음을 짐작하게끔 해준다. 언젠간 볼 수도, 만질 수도, 부를 수도 없을 수 있겠지만 그 기약 없는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를 모르니 공기와 같은 존재의 감사함은 그 감사함의 정도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2013년의 어느 날, 어머니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죽겠다고 발작을 일으키셨다고 한다. 놀란 아버지는 새벽에 응급실로 직행하였지만 그 병원에서는 급성 위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간단한 처방전만 쥐어주고는 퇴원 조치를 시켰다고 한다. 불안한 마음에 위 내시경도 해보고, 온갖 검사를 다 진행하였지만 통증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그 병세는 우리의 바람과 달리 쉽게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렇게 어머니가 원인모를 통증을 견뎌가며 지내시다가 또다시 한번 쓰러지셨을 때, 그 병원의 젊어 보이던 여의사는 여러 가지 진찰과 검사 기록들을 토대로 담도암이라고 진단을 해버렸다. 흐느끼며 겨우 말을 이어가던 누나의 전화를 받아 들고선 100톤 망치를 맞은 것 마냥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미어지는 가슴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가까스로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한 후, 신혼집에서 샤워를 하며 물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한 없이 흐느끼며 천지신명이든 뭐든 간에 내 소원을 들어달라며 빌기 시작했다.


"제발! 내 생명의 절반을 가져가도 좋으니 우리 엄마는 제 명까지 살게만 해주세요!!!!"
"제발!! 제발!!! 제발!!!!"

샤워장 욕조에서 샤워기 물을 맞으며 그렇게 울부짖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야 어머니의 거대한 사랑과 존재감을 체감할 수 있었으니, 1년짜리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어머니의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아깝고 귀하게만 느껴졌다. 회사에 연차를 신청하고 곧장 부모님 댁이 있는 지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머니의 입원실에 당도하자 무표정의 쌀쌀맞아 보이는 젊은 여의사는 청진기를 손으로 빙빙 돌려가며 다시 한번 담도암 진단에 대한 본인의 소견과 향후 대처 방안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기계처럼 내뱉고 있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담도암은 생존율이 매우 낮은 암입니다. 현재로선 치료법도 딱히 없고, 예후도 그리 좋지 않으니 큰 기대를 하시는 것은 좋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지금으로선 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네요. 원하신다면 상급 병원 진찰 추천서를 써드릴 순 있습니다."


사형 선고를 말하는 사람치고는 하는 행동이나 어투가 유난히도 거슬렸다. 청진기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비비 꼬아대며 귀찮아 보이는 표정으로 습관처럼 말을 내뱉고 있었으나 달리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녀의 손에 어머니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 엿같은 상황이라도 참고 견뎌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우 참아내고 있던 나의 인내력은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결국 나는 한 소리를 하게 됐다.


"저기, 선생님, 선생님은 선생님 부모님이 이렇게 사형 선고를 받으셔도 그런 태도로 말을 하시고 남의 일인 것 마냥 대하실 겁니까?"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시나요? 허, 참.."
"지금 아무렇지 않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하시면서 장난하시듯 청진기도 계속 돌리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그럼 제가 뭐 슬픈 표정으로 흐느끼며 말해야 하나요? 그리고 청진기는 제가 의사라서 들고 다니는 겁니다. 제가 제 청진기도 못 만지나요?"
"아니!!!! 지금 그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럼 무슨 말을 하자는 건데요? 참, 어이가 없네요!"


간단한 예의를 차려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 선생의 답변과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버르장머리 없고 거만이 하늘을 찌르는 그 여의사를 보고 있자니 헛 배워먹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른 환자들 또한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만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봐 쉬쉬 했으리라..'


그 순간만큼은 내가 어떻게라도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뼈에 사무칠 정도로 후회만 맴돌았다.


'배웠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안하무인일까? 집안 예절도 못 배우고 자랐나? 헛 똑똑이 일세!'


내가 불이익을 당할 것을 감내하면서까지 딴지를 걸자, 옆에서 말도 못 하고 묵묵히 참고 있던 누나와 아버지, 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던 당사자인 어머니까지 그 여의사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여태껏 참을 만큼 많이 참았어요! 선생님께는 진료받기가 싫네요. 담당의사를 바꿔주세요!"
"담당 의사를 바꿔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럼 퇴원시켜 주세요!"
"퇴원도 시켜 드릴 수도 없습니다!"
"어서 퇴원해 주세요! 퇴원할 겁니다!"
"흠..........."


우리 가족의 강렬한 반발로 결국 퇴원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우리는 퇴원 수속 내내 그 여의사의 태도를 불평불만하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결국 난리법석을 떨며 퇴원 수속을 거쳤고, 다행히 아버지 지인들에게 수소문하여 서울대 병원 진료 예약을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잡을 수 있었다. 몇 주간 서울대 진료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머금고, 우리는 기다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이보다 더한 곤욕은 없었다. 그렇게 서울대에서 정밀 진료를 받는 날이 다가왔고, 정밀 진료 결과 다행히 '담도 결석'이라는 진단명을 받았다. 우리 가족은 모두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의사 선생님께 재차 확인을 하며 감사 인사를 올렸고, 간단한 스텐트 삽입술을 통해 어머니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셨다. 오진을 했던 그 여의사는 괘씸한 마음에 소송이라도 걸어볼 심산으로 이리저리 알아보았으나 개인에게 이길 승산이 전무한 불리한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마음을 접게 되었다.




어머니가 죽는다고 생각을 하니, 내가 살고 있던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상실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전화위복이라고 하였던가? 어머니에 대한 나의 감정을 아주 뚜렷하게 확인한 나는 겪기 싫었던 그때의 감정을 곱씹으며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멍청한 망각의 동물이라 종종 그 존재의 감사함을 잊고 또 잊지만 천금 같았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또 기억함으로써 나의 어머니에 대한 나의 사랑을 가다듬어보려고 한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조만간 한국 들어갈 테니, 그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세요!"


후회란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아쉬움인 걸까?
후회하기 싫다면, 지금 당장 하면 된다.

그냥 뭐든지 해보자!
후회하기 싫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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