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Jun 10. 2022

Ep 15: 고입시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시험.

중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이제 더 치를 시험도 없으니, 선생님들도 수업을 자율학습으로 대체하시거나 영화를 보여주시는 등.. 3년간의 고생을 위로라도 해주시는 듯,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은 담임 선생님과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상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50명 가까이 되는 반 아이들을 모두 상담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렸기 때문에 상담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똑똑똑, 드르륵"

"어, JJ 왔니? 이리 와서 앉으렴."

"네."

"JJ 성적으로 봤을 때, 원주고를 진학할 수는 있겠구나. 그런데..."


당시 원주에서는 강원 과학 고등학교(특수 목적 고등학교)를 제외하고 인문계 고등학교 중에서는 원주 고등학교가 1등, 진광 고등학교가 2등, 대성 고등학교가 3등 순으로 공부를 잘하는 학교였는데,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실업계 고등학교인 공업 고등학교 혹은 농업 고등학교 등으로 진학을 하였었다.


"그래, JJ는 원고를 갈 수는 있지만 성적이 애매해서 턱걸이할 가능성도 높고, 원고에서 하위권에 머무느니, 진광고에서 중 상위권을 노려보는 게 좋지 않을까?"

"아... 예..."

"어때? 그렇게 하겠니?"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럼 진광고에 지원하자꾸나... 그럼, 다음 번호 오라고 그러고 들어가 보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고등학교 진로 상담을 마친 후 교실로 돌아가 다음번 친구에게 손짓을 하고는 내 자리에 앉았다.


'잘 선택한 거겠지?'


무언가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하교 후 부모님께 진광 고등학교에 지원했다고 말씀드리자, 예상외로 기뻐하시며 좋은 고등학교에 가게 됐다고, 축하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직, 지원만 한 거지 떨어질 확률도 있어요!"

"그래도 선생님이 진광고에 지원하는 게 안정권이라고 했다면서?"

"그렇기는 한데 잘 모르겠어요.. 저처럼 원고 지원하려다가 너도나도 하향 지원해버리면 경쟁률이 높아져서..."

"걱정마라! 다 잘 될 거야!"


부모님은 걱정 말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지원자가 많아서 경쟁률이 높아지게 되면 고입 시험 결과에 따라서 탈락자가 결정되고, 만약 탈락을 하게 된다면 실업계 고등학교나 횡성 고등학교, 육민관 고등학교, 삼육 고등학교 같은 학교로 재지원을 해서 입학 허가를 받아야 했으니, 제발 내가 지원한 학교에 지원을 많이 안 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지원 마감일이 다가오도록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입학시험 공부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며 고등학교 지원 마감일에 결과가 발표되기를 기다리는 순간 담임 선생님이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교탁 앞에 섰다.


"자.. 주목.. 탕탕"


평상시 들고 다니시는 회초리로 나무 교탁을 탕탕치며 우리들의 주의를 환기하였다.


"자 이번 고등학교 지원 결과가 나왔는데....."


장난식으로 말끝을 흐리자 우리들은 답답하다며 빨리 말해달라고 아우성을 쳐댔다.


"알았다.. 알았어.. 성격들 하고는.."

"자.. 원고, 대성고는 인원이 많이 몰려서 입학시험을 잘 준비해야 할 것이고, 진광고는 운 좋게 미달이다!"

"미달이더라도 공부 열심히 해서 입학시험 때 좋은 성적낼 수 있도록! 이상!"


진광고에 지원했던 나는 하늘로 날아가는 듯한 행복감을 느꼈다.


'미달이라면 떨어질 일이 없잖아! 야호!'


이 기쁜 소식을 부모님께 먼저 알려드렸고, 그렇게 눈치게임의 승자가 되어 후련한 마음으로 더 이상 고입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예민한 성격 때문이었을까? 입학시험 전날 극심한 오한과 함께 감기 몸살이 나서 시험 당일 참석하기 힘든 상황에까지 직면하게 된다.


'미달이라서 시험 참석만 해도 합격이니깐, 어떻게든 버텨보자!'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아픈 몸을 이끌고 진광 고등학교 입학 시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험 문제를 받는 순간 비몽사몽 하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높은 난이도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어렵사리 시험을 꾸역꾸역 치르고 교문밖을 나서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학교 오지 말라고 아픈 건가?'

'왜 이렇게 중요한 날 아프고 난리인 거지?'


평소 믿지도 않던 미신까지 들먹거리다가, 생각을 접은 후 나를 기다리시던 어머니의 차를 타고 우리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지금은 고교 평준화가 되어 입학시험이 사라졌지만, 저 때는 인생의 첫 번째 성패가 좌우될 것만 같았던 고교 입학시험 때문에 상당히 많은 스트레스를 감내해야만 했다. 미달이 아니었다면 시험을 망쳐서 떨어졌을 가능성도 높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다행스럽게도 어부지리로 시험 결과에 상관없이 입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는 자부심이 컸지만, 왜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공부를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주입식 교육의 병폐에 대한 반항으로 다시 한번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후회가 되는 대목이다. 아무리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주변에서 조언을 해줘도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다. 직장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 간판이 필요하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했다는 것을....

그냥 오전 07시 30분부터 보충 수업을 시작으로 밤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며 방학도 없이 살아야 하는 그 상황이 싫고 짜증 났었던 것 같다. 하교를 하면 학원을 가거나, 새벽 3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한답시고 친구들과 라면 사 먹고, 쪽잠을 자대던 그 지옥 같은 패턴의 학교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서 반항한 덕에 지잡대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게 될 거라는 것은 그때 당시에는 알턱이 없었다.


대통령이 약속했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대학 간판 상관없이 전공만 잘 살리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주는 사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남 탓하면 안 되지만 믿은 내가 바보였다....
남의 말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편식하듯 들으면 안 된다....
작가의 이전글 Ep 14: 노력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