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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14. 2022

Ep 16: 문과 / 이과

아쉬움이 남는 선택의 순간

 중학교 담임 선생님의 예상과는 반대로 고등학교 성적은 중, 상위권이 아닌 중, 하위권에 머무르게 되었다. 또다시 공부에 대한 염증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8년은 안팎으로 유난히 혹독한 한 해였다. 어머니께서는 1997년 초반부터 SMK라는 다단계 피라미드 회사에 현혹되셔서 집안 재산의 대부분을 회원 가입비와 그들의 물건 등을 구입하시는데 탕진하셨다. 그래서 집안 침구류들은 모두 SMK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회사의 마크가 여기저기 박혀있는 건강 자석 침구류로 도배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꼴 같지도 않은 다이아몬드 계급 진급을 위해 회원 모집에 사력을 다하고 계셨다. 단순한 산수만 하더라도 말이 안 되는 수익 구조였기에 내 판단에는 의심스럽기 그지없었지만, 도깨비방망이로 금, 은, 보화를 함께 나눠줄 것처럼 다른 협잡꾼을 강단에 세워가며 본인 통장 입금 내역을 공개하여 보여주니, 그나마 유지하던 의구심은 솜사탕이 입에서 녹듯 달콤하게 사라지며, 이 건으로 한몫 잡아야겠다는 심산 속에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그 회사의 매출을 늘려주기 위해 여념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다 가짜라고 큰 소리를 치시며 부아를 내셨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을 완전히 빼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시고 반신반의하고 계시는 중이셨다. 일정 계급에만 도달하면 아무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만 앉아 있서도 다달이 일정 금액이 통장에 들어온다고 하니 미래를 걱정하는 서민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사기 치기에는 이만한 스토리가 없어 보였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이런 종류의 사기꾼들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진화하면서 우리들의 곁을 지켜왔다. 끊임없이 우리들의 쌈짓돈부터 목돈까지 갖다 바치게끔 만들고 있으니, 그들의 재간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신기루와 같았던 그 허황된 투자는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좋은 핑곗거리를 구실로 삼아 사라지고 만다. 1997년 11월 21일 발생한 외환 위기로 인해 많은 회사들이 도산하여 가장들이 길거리로 나앉는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시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SMK라는 간판이 붙어있던 서울 소재의 큰 빌딩은 하룻밤 사이 그 족적을 감춰버렸다. 초대형 태풍이 지나간 듯한 이 악재들은 쉽사리 사그라들 줄 몰랐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어머니는 그동안 이 일을 추천했던 지인들로부터 비난과 질타를 받게 된다. 외환 위기로 인한 여파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어려워진 가정 형편에 허리띠를 졸라매기 정신없었고, 마지막 피난처였던 각자의 가족들은 숨만 죽인 채 우리 집만은 아무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학수고대하였다. 그 당시 군부대에서도 대대적인 구조 조정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그 맹렬한 칼날을 비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많이 기울어진 가세로 인하여 아버지의 군인 봉급만으로 우리 가족을 모두 부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뒤숭숭한 분위기는 여러 가지 고민과 걱정거리들을 불러일으켰고, 복잡한 심경을 대변이라도 하듯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너무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나머지 8차선 도로의 한 복판에서 쌩하고 지나가던 차가 몰고 온 바람으로 인해 정신을 가까스로 차리며 큰 사고를 면한 뒤 멀뚱히 파란불이 되기만을 기다렸던 적도 있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던가? 국가의 근간인 가정이 흔들리니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렸고, 나의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줏대 없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기에만 바빴다. 부모님께서 쓸데없이 급식비, 학비 걱정 같은 거 하지 말라고 수없이 안심시켜 주셨지만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간 태풍의 상흔은 쉽사리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영원히 암흑기에 머물러 있을 것만 같았던 끔찍한 시간도 대자연의 이치를 벗어날 수는 없었는지 깊게 파인 상처가 조금씩 아물며 내 마음의 평온도 조금씩 찾아왔다. 그러던 1학년 2학기 중의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교탁에 서서 공지를 하셨다.


"자, 모두 주목! 이제 조금 있으면 2학년으로 올라갈 텐데 올라가기 전에 문과, 이과를 선택해야 한다. 국어가 좋다면 문과를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있다면 이과를 고려해볼 만하다!"

"............."

"선택은 다음 주 까지 하기로 하고,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도록!"


 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나가시자마자 정적은 사라지고 친한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무슨 과로 지원할 것인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과 가면 수학은 물론이고 물리, 생물, 화학, 지구 과학Ⅱ라는 과목도 있대, 근데 엄청 어렵다더라?"

"그럼 문과 갈까?"

"근데 취업 잘하려면 이과가 더 좋다고 하는 것 같더라?"


 이렇게 갑자기 문과, 이과를 정해오라고 통보하시니 그 혼란스러움에 짜증이 났다. 직무 적성 검사도 MBTI 검사도 지금처럼 활발했던 시기가 아니었던 터라 오로지 나의 직감으로 결정을 해야만 했다. 부모님께 진로 상담을 요청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알아서 잘 결정하라는 짤막한 답변만 돌아오니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나는 취업에 유리하다는 이과를 선택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잘 선택한 거겠지....'


 다가올 미래는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해야만 했던 나는 그렇게 미지의 세계를 향해 주사위를 던졌다.




 유달리 생각이 많았던 나는 항상 사색에 잠기기 일쑤였다. 버스를 타고 등하교하며 영어 단어나 필요한 공식 등을 수첩에 적어가며 틈틈이 외우려고 노력했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는 그냥 멍하니 앉아서 생각의 나래를 펼치는데 열중하였다. 그 생각 때문에 교통사고로 죽을 뻔도 하기도 하였지만, 그 생각 덕분에 좀 더 다양하고 심도 있게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부모님은 고졸이시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대학에 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부모님의 처절한 생계 환경이 그들에게 고졸이라는 타이틀을 선사했다. 돈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할 뻔했다는 아버지의 서글픈 무용담을 들을 때곤 가슴 한 켠이 찡했다. 그래서 문과, 이과도 제대로 정해주지 못하셨으리라 생각된다.


 뒤늦게 나의 성향이 이과보다는 문과에 더 적합했음을 인지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생존의 영향으로 모든 촉각이 취업이 잘 되는 것에만 곤두세워져 있었다. 추후 비록 자연계 관련 직업을 구하지는 못하였지만, 가족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취업이 잘되는 방향으로 선택을 해야만 했다는 것이 그 시절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의 기본적인 논리였음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성인이 된 후, 그 시절 적절하지 못했던 선택들은 나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나의 시간을 더 소비하게 만들었으며 가고자 하는 방향성은 그 선택들의 횡포에 의해 좀먹혔다. 그 선택의 꼬리표는 결국 현재의 나라는 사람을 반영한다. 그러하니 영원히 과거의 결정에 연연하며 아쉬움을 삼킬 수만은 없다. 그래서 나는 그 꼬리표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후회하지 마! 우리에겐 내일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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