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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l 07. 2022

Ep 20: 귀찮음 Part 2

마음에 들지 않고 성가시다

 한 바탕 술 소동 후에 한동안 잠잠하나 싶더니 체육대회를 준비한답시고 과 선배들이 인원을 모집한다. 참여하기 싫어서 아무 곳에도 손을 안 들었더니 손 안 든 사람은 모든 종목에 참여시킨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래도 축구를 잘하는 편에 속했기 때문에 축구로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친구들과 술을 한잔 마시고 싶었는데 학과 연락망을 통해 끊임없이 문자가 온다.


'오후 3시 대운동장 축구 집합. 시간 엄수!'


 꼴도 보기 싫은 선배들의 호출이다. 교양 수업 중이었기 때문에 문자 답장을 안 하고 4시쯤 대운동장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꼴 보기 싫은 놈들, 아주 신났구먼?'


 저 멀리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들이 축구 연습하는 꼬락서니를 지켜보고 있는데, 바로 윗 기수 선배가 멀리 있던 나를 바라보며 소리친다.


"야! 씨발! 왜 이리 늦게 쳐와?"

"교양 수업이 있었어요."

"야! 축구복으로 갈아입고 내려와!"

"축구복 없는데요?"

"공지 못 받았어?"

"아까 3시쯤 모이라고 문자가 왔었는데 수업 중이어서 수업 마치고 바로 온 거예요."

"아.. 씨발! 알겠어. 그럼 넌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혼자서 분주히 선배들과 조율해가며 축구 연습을 하려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과와 연습 경기를 진행하는 게 아닌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한 나는 혼자 남겨진 채 10분 정도 경기를 지켜보다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병신 같은 놈이, 최소한 하루 전날 연락을 주던가? 지가 실수해 놓고 왜 나한테 욕 지거리야?'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며 이유 없이 욕 세례를 당했던 것이 분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버스를 탑승하고 20분 정도 지났을까? 나에게 욕지거리를 했던 한 학년 윗 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사이에 첫 번째 전화는 끊겨버렸고, 바로 이어서 두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아, 씨발, 왜 전화하고 지랄이야?'


 속으로 나오는 욕을 참으며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흥분한 듯한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씨발 새끼야? 장난하냐? 죽고 싶어? 이 병신 같은 새끼가 말도 안 하고 혼자 가?"

"........"

"야, 이 씨발놈아 너 빨리 돌아와. 안 돌아오면 죽는다. 알겠어?"

"저 집에 다 왔습니다. 그리고 인원 충분하신 것 같아서 간 겁니다. 해야 할 과제들도 있고요."

"이 개새끼 보게? 또박 또박 말대꾸에 너만 과제 있어? 좋은 말로 할 때 얼른 튀어 와라! 이 씹새~~~"

"뚝.."


 끊임없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욕 세례를 받고 있자니, 뚜껑이 열릴 것 만 같아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차피 이성을 상실한 개와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전화를 끊어 버리자 그 녀석은 3번 정도 더 전화를 한 이후에 협박성 문자를 남긴 후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이 씨발새끼가 나를 아주 물로 보네? 넌 학교 생활 뒤졌다고 생각하고 있어라. 내일 나 마주치면 죽을 준비 해라!'


 답장할 가치를 못 느낀 나는 그냥 답장도 없이 그 문자를 무시했다.


'돌아갈까? 집에 다 왔는데 돌아가긴 뭘 돌아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정 안되면 치고받고 싸우던가. 아니면 그만두던가.'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하려고 했지만 평정심을 되찾기는 매우 힘들었다. 내가 상대해야 할 녀석들은 그놈 한 명뿐만 아니라 수두룩히 쌓여있는 선배들이었기 때문이다.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고 최악의 상황을 나름대로 준비한 채로 친구와 함께 술을 기울이며 오늘을 마무리했다.


 날이 밝았다. 학교 수업에 가야 했다. 불편한 마음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학교에 가기도 싫었지만 그런 자식 때문에 내가 피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한 후 동기생들을 만났다.


"야! 너 괜찮냐? 어제 미친개가 너 죽인다고 난리던데?"

"어? 뭐 그냥 욕을 엄청해대더라. 끊을 생각이 없길래 그냥 끊어버리고 무시했지."

"이야~너 깡다구 대박인데? 어쩌려고 그러냐?"

"몰라. 부딪혀 봐야지. 아 왜 하필 축구에 손 들어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

"축구 못하는 척하던가?"

"그게 되냐? 축구 잘하다가 못하는 척하면 더 지랄할 건데?"

"그렇긴 그렇지? 하하하"

"아무튼 너나 나나 고생이 많다. 내일이 축구랬지?"

"어. 내일이 축구야! 축구화랑 운동복 빼먹지 말고!"

"그래. 그럼 난 수업 들어가야겠다. 내일 보자!"


 학과 동기생과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수업을 받은 후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교문 쪽을 향해 걸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내려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미친개 선배가 그의 여자 친구 선배와 함께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씨발,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시비 걸면 싸우던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그 선배와 지나치는 시점에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응? 어.. 그래.. 안녕? 참.. 내일 축구 연습하는 거 알지?"

"네, 알고 있어요."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의외로 욕지거리 없는 담백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여자 친구가 옆에 있어서 그런 건가? 저 새끼 이중인격 잔가? 뭐지? 수많은 궁금증을 남긴 채, 나는 내일을 기약했다.


 약속했던 시간이 되자 학과 선배들과 동기생들이 삼삼오오 운동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무단 이탈자를 방지하려는 듯 대기 인원들도 집에 가지 말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모두 응원을 하며 대기하라는 지시 사항이 하달됐다. 선발 출전하기 싫었던 나는 대기 장소에서 뭉그적 뭉그적 거리고 있었는데, 미친개 옆의 또 다른 예비역 선배가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씨발 새끼야! 빨리 안 텨와?"


 평소 조용한 성격으로 말을 많이 섞지는 않았었던 선배였는데, 다짜고짜 욕을 하며 나를 노려보고 서있었다. 아마도 미친개 선배가 엊그제 상황을 이르지 않았나 싶었다.


'씨발놈들은 입만 열면 욕이네? 확 맞짱 한번 깔까?'


 열이 받았지만 우락부락한 선배들이 너무 많았었기 때문에 나는 성질을 죽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갔다. 재수 없게도 선발 출전 명단에 내 이름이 등록되었다. 축구를 잘한다는 이유였다. 한 선배가 포메이션을 고민하더니 나를 오른쪽 수비수로 지정했고, 나에게 욕지거리를 했던 예비역 선배는 중앙 수비수로 지명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그 예비역 선배는 더욱 살벌하게 축구를 입으로 해대기 시작했다.


"야! 안 뛰어? 이 씨발 새끼야!"

"패스해! 이 개새끼야!"

"공 몰지 마! 저 씨발 병신 새끼가!"

"제대로 안 하냐? 이 씨발놈아!"


 끊임없는 욕 세례로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은 1도 생기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이 악몽 같은 순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주눅은 들었지만 내 몫을 성실히 수행해서 우리 팀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하호호 웃어대며 서로 승리를 만끽하는 선배놈 들의 면상을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듯했다. 그때 미친개가 승리를 자축하며 술과 안주를 공수해서 세팅해대기 시작했다. 또 시작인 것이다. 나는 거부권을 행사하지도 못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술상을 세팅하고, 주는 대로 술을 마셨으며, 그들이 떠난 후에는 뒷정리를 해야만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아닌데, 이 짜증 나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대학 체육대회에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들을 참고 견디며, 결국 우승을 했다. 우승을 했지만 전혀 즐겁거나 기쁘지는 않았다. 그저 다음 체육대회 때 또 욕을 들어가며 선발 출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고민만 더욱 깊어졌다. 우승 트로피를 받아 들고, 잔디밭에 앉아 탕수육을 시켜놓고 막걸리를 트로피에 벌컥벌컥 따라대기 시작했다. 힘든 심신을 돌볼 결흘도 없이 또 술을 들이켜야 했다. 시간이 지나니 욕쟁이들의 욕은 점점 잦아들었지만 술만 마시면 술또라이가 되는 선배가 있어서, 술또라이와 욕쟁이들을 피해 다니느라 나름 바쁜 대학 생활을 하게됐다. 학과 생활에 덜 참여하기 위한 방책으로 영자 신문사라는 학교 부속 기관에 지원하여 과 생활 이외의 비중을 점차 늘려나갔다. 하지만 개미지옥 같은 과 선배들의 집요함에 과 생활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었고, 다만 생활을 이전 보다 덜 할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입지도 탄탄해지고, 선배들도 더 이상 터치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이전에 그들이 나에게 선사했던 욕지거리의 상흔은 사라질 줄 몰랐다.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으로 변신을 하고,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하는 그들과는 가까운 사귐을 가지고 싶지 않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 결과 과 대표로 선출되어 이리저리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무리를 만들어서 흩어져 있던 과 동기생들의 단합을 최초로 이뤄내는 좋은 성과도 거두어냈다.


나의 희생이 나의 입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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