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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l 13. 2022

Ep 21: 사주팔자

타고난 운수

 나는 운명이니 사주팔자니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랄까? 나는 운명을 믿느니, 나의 노력대로 살아가면서 나의 인생을 나의 방식대로 설계하며 살아가는 것을 더 믿고 선호한다. 사주팔자나 관상학 등은 수많은 시대를 거쳐서 만들어진 정보를 토대로 통계자료로 만들어진 학문이기는 하지만 그 생년월일시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법은 나의 상식과 수학적 확률 선상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호기심이 완성했던 20대의 나는 남들처럼 재미 삼아 역술가의 통계학 강의를 들으러 강의비를 지참하고 사주 풀이를 하러 갔다.


 원조 동자님들을 모시는 무당집에 가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시내 2층에 사주 카페 형태의 역술관이 운영되고 있었던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나는 친구와 술을 마시러 가기 전 그곳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올라가는 계단은 비좁았고, 화려한 전등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뛰링뛰링뛰링~"


 문을 열자 문에 달려있던 종이 울려대며 우리가 도착했음을 역술가에게 알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중년으로 보이는 역술인은 우리를 한번 위아래로 훑어보며 인사를 했다.


"어떻게 왔어?"


 초면에 반말을 해대서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기왕 마음먹고 왔으니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저.. 그게.. 사주팔자 하러 왔어요.."

"사주팔자는 타고난 운수를 말하는 거고, 사주 풀이하러 온 거겠지."

"뭐.. 어쨌거나 아무거나 해주세요. 만 오천 원 맞죠?"

"2만 원 줘도 되고~"

"아니에요. 만 오천 원 정확하게 들고 왔어요."

"그럼 만 오천 원어치만 봐줄게!"

"그러지 말고 2만 원 같은 만 오천 원 풀이해주세요!"

"자신의 운수를 가지고 돈으로 흥정하면 안 돼!"

"제 운수를 가지고 방금 전까지 흥정하셨잖아요? 아닌가요?"

"볼 거야? 말 꺼야? 안 볼 거면 말고~"

"그럼 안 보고 가볼게요! 안녕히...."

"잠깐! 그럼 지금은 손님도 많이 없고 하니까, 둘이서 2만 원 주면 둘 다 봐줄게!"

"둘이서 2만 원이요? 좋아요!"


 한치의 물러섬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기싸움을 하다가 그냥 나갈까도 생각해봤지만 이양 큰 마음먹고 왔으니 한 사람당 만원씩만 내면 된다는 계산이 되자, 괜히 오천 원 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자리에서 돈을 만원씩 걷어 지불했다. 역술가인지 사기꾼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주 풀이가 시작되었고, 이름, 생년월일시 등의 정보를 받아 적으시곤 이리저리 책을 접었다 펴기도 하고, 무언가를 분주히 적기도 하면서 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음.. 그래.. 그렇군.. 관상부터 말하자면 관상이 아주 좋아. 아주 부족함이 없어. 연애운은 크게 없구먼. 본인이 자꾸 상대방들을 쳐내는 형상이야. 성격이 대나무와 같이 올곧아서 청렴결백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부러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해! 어디 보자.. 돈복이 많구먼, 같이 온 친구 양반은 서로 친하게 잘 지내.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니...."


 나는 속으로 이 사기꾼 같은 양반이 돈 받아먹으려고 온갖 감언이설과 일반적인 사실들을 나열하면서 술수를 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음.. 역마살이 좀 보이는 구만?? 그리고 좀 외로울 운명이야!"

"역마살은 우리 누나가 있는데, 전 어디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요? 그리고 전 친구들도 많고 사람들이 항상 주변에 많은데요?"

"자네 사주가 그렇다는 거지.. 꼭 사주대로 가라는 법은 없지만 말이야.."


 미신을 안 믿는 성격이어서 역술가를 골탕 먹여줄 생각으로 방문한 것도 있었지만 의외의 맞는 부분들도 제법 있었다. 약 10분간의 사주 풀이가 끝나고, 우리는 허망하게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툭 튀어나온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고는 머리를 부여잡고 흐느끼며 친구와 단 둘이 술을 마시기 위해 술집으로 들어갔다. 술집으로 이동하는 내내 외로울 운명이라는 사주 풀이로 인해 은근히 신경이 거슬렸다.


"외로울 운명이라? 그게 뭘까?"

"글쎄, 결혼을 못하려나? 하하하하하"

"근데 사주 풀이집 손님도 하나도 없고, 주인도 반말로 막 하고, 만원이나 받아먹으면서 5분씩만 대충 말해주는 걸 봤을 때, 조만간 망하겠다!"

"그러게, 그래도 오천 원 벌었으니 만족하지 뭐..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하하하하하"


 그날 그렇게 친구와 부어라 마셔라 하며 술을 마셔댔지만 그날의 외로울 운명이라는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몇 년 후 서울에서 친구와 만나서 놀기로 했는데, 어느 지하철 역 근처에 즐비하여 있는 사주풀이 노점상들이 눈에 띄게 된다. 2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사주를 봤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다가 시간이나 때울 요령으로 사람이 비교적 없고, 한산한 곳에 또다시 재미 삼아 입장을 했다. 한눈에 봐도 앳돼 보이는 역술가가 노트북을 응시하다가 나를 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시죠."

"아.. 네.."

"뭐 때문에 오셨죠?"

"사주 풀이요.."

"그럼 한자 이름을 여기 적어주시고, 태어난 생년월일시 좀 알려주실래요?"

"네, 잠시만요.."


 역술가라는 내 또래로 보이는 작자는 노트북에 내 정보들을 빼곡히 기입하기 시작했다.


"저기, 근데, 이렇게 컴퓨터로 정보만 넣어서 하는 거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아.. 이게 그렇기는 한데 프로그램 자체가 엄청 비싼 거여서...."

"얼마나 비싼대요?"

"그거는 알려드릴 수 없지만, 엄청 많이 비쌉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

"이 프로그램이 엄청 방대한 자료를 함축하고 있어서 시간은 오래 걸리는데 제법 정확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게 나와 친구는 못 미더운 상황에 슬며시 눈빛을 교환하며 역술가 몰래 키득키득 눈웃음을 쳤다. 몇 분을 기다리던 중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며 화면을 보고 하나하나씩 읽어 내려가며 풀이를 시작했다.


"재물복이 있으시네요. 장수하실 거고.. 근데 나이가 들수록 외로울 사주가 보이네요?"

"네? 외로울 사주라고요? 왜 그런 거죠?"


 전에 봤던 사주 풀이와 상당 부분 겹치는 사주 풀이가 나오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당황을 하며 되물었지만 노트북 역술가는 묵묵부답이었다.


"음.. 사주라는 게 운수에 대한 풀이여서 그에 대한 답변은 못 드리겠네요.."

"그렇군요.. 아무튼 덕분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컴퓨터로 한 거니깐 5천 원만 깎아주세요."

"아..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지 말고 깎아주세요.. 아까 추운데 드시라고 붕어빵도 드렸잖아요.. 네?"

"음.. 그럼 만 오천 원만 주세요.."

"감사합니다!"


 젊은 역술인을 당황시키려는 재량으로 장난을 많이 쳐서 미안하긴 했지만 2번 본 사주 풀이에 연달아 외로움이라는 사주가 있다고 하니 안 그래도 평소 생각이 많았던 나는 그 사주가 나의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돈은 많이 벌지만, 외로울 운명이라...'


 그 이후로도 어김없이 외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나는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듯 외로울 운명이라는 사주를 혼자 머릿속으로 되뇌며 중얼거리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사주에 나를 끼워 맞추는 건지, 나를 사주에 끼워 맞추는 건지, 사주의 저주는 시나브로 나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원체 미신 등을 믿는 성격이 아니지만, 살다 보면 겪게 되는 비슷한 상황에 그때의 사주가 불현듯 떠오르며 끼워 맞추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곤, 나도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이란 생각만 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강함을 유함으로 만들어주는 연성 작용 단계인 걸까?


 신경이 1도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 안 외로울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지극히 일반적인 내용의 사주 풀이가 아니었을까란 의문을 품는다. 말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상대방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어서 까먹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말로 인해 아직까지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라는 속담 뜻을 되뇌며 이만 글을 줄인다.


어릴 적 부모님은 친구들을 너무나도 좋아하던 나에게 친구 다 필요 없다고
수없이 말씀하셨다. 이제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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