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Aug 03. 2022

Ep 25: ROTC Part 3

갈굼의 서막

 학군 단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입단식을 거행했다. 멋들어진 단복과 군기 있는 모습에 입단식을 구경하러 온 가족들과 기타 지인들은 탄성을 자아냈지만, 내릴 수 없는 불행 열차에 탑승하게 된 우리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만 있었다. 선배의 예언대로 우리들의 얼굴 표정에서 해맑은 웃음은 삭제되었다. 그렇게 굳은 표정으로 입단식을 마치고, 가족들과 기념사진 촬영을 할 때에도 우리는 웃을 수 없었다. 저 멀리서 우리를 매서운 눈초리로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고 있는 선배들의 살기 어린 눈빛을 바라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념사진을 함께 찍으며 좀 웃으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웃을 수 없는 우리네들의 사정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선배들의 지시 사항에 따라 단복을 다리고, 구두를 광냈으며, 단모 모양을 잡기 위해 멀쩡한 단모를 긁어내고, 늘리기 위해 잡아당기고, 불로 그을려댔다. 흡사 가내수공업을 연상케 하듯 몇 시간을 투자해가며 칼각을 잡고, 광을 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를 지켜보시는 부모님은 뭘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냐며 잔소리를 해대셨지만, 선배들에게 혹시라도 트집이라도 잡히는 날에는 동기생 전원이 단체로 기합을 받아야 했으니, 동기들에게 피해를 안 주기 위해서라도 모든 행동거지에 완벽을 기해야만 했다.


"동기는 하나다! 동기의 잘못은 나의 잘못이고, 나의 잘못 또한 동기의 잘못이다!"


 이해하기 싫은 억지성 논리였지만, 단체로 기합을 주기에는 이보다 더 훌륭한 전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동기중 한 명이 전화 예절을 실수하거나, 가시 경례, 복장 혹은 기타 아주 사소한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열외 없이 모든 동기생들이 집합을 해야만 했다. 학군단 1년 차 생활관에 앉아서 군사학 수강을 대기라도 하고 있을 때 곤, 양 무릎을 틈새 없이 붙인 상태에서 양팔을 곧게 펴서 무릎 끝에 주먹 쥔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은 부동자세로 잔뜩 긴장을 하고 있어야만 했다. 혹여라도 누군가 편한 자세로 앉아 있거나, 움직이는 것을 선배들이 발견이라도 한다면 우리들은 또 집합을 예약해야만 했다. 얼차려를 받다가 동기 탓을 하거나, 얼굴 표정이 불쾌해 보인다면, 별 시답지 않은 '동기 사랑'을 근거로 더욱더 힘든 얼차려를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2년 차 선배들은 본인들이 1년 차에 받았던 설움과 고통들을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인계하며 권력의 맛을 정신없이 탐닉하고 있었다.


 선배들은 때론 우리를 놀려 먹고, 골탕 먹이며, 영업사원이 영업을 하듯, 하루하루 얼차려 건수를 기록적으로 갱신하며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혹독하게 괴롭혔다. 하루하루 얼차려를 다양하게 주기 위한 선배들의 잔혹한 밥상은 단 하루라도 놓치는 법이 없었으며, 그 방법 또한 타 학교 선배들과 교류하며 꾸준하게 발전시키고 있었다. 신난 사이코패스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기가 막힌 얼차려 자세를 발명했다며 방과 후에 얼른 시험해 보자는 한 선배의 얼굴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그렇게 고되고 힘든 생활을 견디려다 보니, 자연스레 숨어 지내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게 되었고, 혹여라도 우리들이 너무 학교에서 안 보인다 싶으면 야밤에 비상 연락망을 돌려서 선배들이 보기 싫냐면서 또 다른 얼차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0시가 넘은 시각, 동기생 한 명이 집합이라며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내가 연락하기로 되어 있는 다른 동기생에게 비보를 전했다. 그 동기생이 뜬금없이 전화에 대고 선배들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씨발, 우리가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는 개냐? 쉴 틈도 없이 사람을 괴롭히네."


 순간 싸한 느낌을 제대로 받은 나는 동기의 대화 내용에 호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왠지 모르게 우리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고약한 선배들이 고안한 부비트랩인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글쎄, 다 우리들이 장교로 임관하기 전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강인 해지라고 싫은 매를 드시는 것 아닐까?"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존나 짜증 나네. 매일같이 이게 뭐냐고!"

"다 이유가 있으시겠지. 시간 없으니 빨리 전화 끊고 조금 있다가 보자."

"아.........."


 순간 전화선 너머로 정적이 흐르고 누군가가 나를 호출했다.


"어이, JJ!!!"

"누구십니까?"

"누구긴 누구야, 나야 나! 태백산!"

"앗~ 충성! 1000번 JJ 후보생 태백산 사관후보생님 전화받았습니다!"

"알고 있었지? 뭐야 그 반응은? 뭐가 이렇게 노련해?"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내 아들이 이 아버지한테 배신을 때리고 정보를 흘렸나? 음, 아무튼 너의 마음은 잘 알았어. 조금 있다가 강인해지게 만들어 줄게! 10분 안에 도착해라!"

"예, 알겠습니다. 용무 마치셨습니까?"

"어, 그래! 10분 후에 보자!"

"전화 끊어도 되겠습니까?"

"어, 그래!"

"충성! JJ 후보생 용무 마치고 전화 끊겠습니다!"

"....... 뚝!"


 선배가 먼저 전화를 끊었음을 확인한 후 시간 안에 얼차려 장소로 가기 위해 옷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동기생의 파렴치한 배신 행위에 배신감이 사무쳤지만, 선배가 시켰을 테니 어찌할 도리는 없었을 것이었다. 그들이 설정해 놓은 악마의 덫에 안 걸렸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감기 기운이 있는 몸으로 서둘러 집합 장소로 향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고, 집합 제한 시간도 10분밖에 주지 않아서 택시를 잡아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원래대로라면 1시간 정도 걸릴 거리를 10분 안에 오라고 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조차 사치라고 느껴졌었기 때문에 생각 없이 움직였다. 택시를 타고 가도 늦을 것이 자명하였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으로 인해 심장은 쉬이 진정될 기미 없이 더욱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쉬지 않고 뜀뛰기를 하며 집합 장소로 달려갔다. 집합 장소에 가까워질수록 얼차려 받는 소리도 어렴풋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나!"

"동기야!"

"둘!"

"빨리 와라!"


 다른 학과 동기생들이 자신들의 아버지 단번 선배들과 술을 마시다가, 선배들이 심심해서 얼차려를 주기 위해 호출한 듯 보였다. 그들은 매캐한 소주 냄새를 풍기며 자신들의 권력을 시험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야밤에 뛰어오느라 숨이 턱까지 찼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대열에 합류했다. 선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열외 시켰다. 늦게 도착한 만큼 따로 열외를 시켜서 좀 더 강도 높은 집중 얼차려를 한동안 받았다. 평소 개인적으로 동기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서 체력 관리에 신경을 쓴 덕에 항상 동기들이 쓰러지면 도와주면서 악바리 근성으로 얼차려를 잘 받던 나였지만 감기 몸살 기운이 있어서 그런 건지 약 기운 때문에 그런 건지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평소보다 얼차려를 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챈 한 선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JJ!"

"1000번 JJ 후보생!"

"힘드냐?"

"아닙니다!"

"오늘 왜 그래?"

"아닙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로 진지하게 왜 이리 못 버티냐고?"

"괜찮습니다!"

"하아.. 진짜로 괜찮으니깐 사실대로 말해봐!"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실대로 고했다.


"감기 몸살이 걸려서 약을 먹었는데, 약 기운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 선배는 나를 툭 치며 말을 이어갔다.

"1000번 JJ 후보생!"

"어.. 그래.. JJ야, 오늘 열심히 해서 감기 떨구고 가자.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2시간을 넘게 얼차려를 받고 나니, 선배들도 슬슬 지겨워졌는지 그만하자는 사인 등을 주고받는 모양새였다.


'제발 좀 끝내라! 이 자식들아!'


 속으로 연신 욕을 해대며, 얼차려를 받다가 선배 한 명이 이제 새벽이라 날씨도 춥고, 얘들 감기 걸리겠다면서 그만하자는 제안을 한다. 그러자 속으로 환호성을 외치는 우리의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한 선배가 외마디를 뱉는다.


"좋냐?"

"아닙니다!"

"그럼 더 할까?"

"예!"

"진짜로 더 해?"

"예!"

"나는 집에 가고 싶은데?"

"아닙니다!"

"나 집에 가지 말라고?"

"아닙니다!"

"집에 빨리 꺼지라고?"

"아닙니다!"

"선배들이 우리 사랑하는 후배들 감기 걸릴까 봐 그만하자고 하니깐, 오늘은 이만하고 다음에 다시 할까?"

"아닙니다!"


 그렇게 끝없는 장난질에 서로 시시덕거리며 그 상황을 즐기던 선배들은 우리에게 선심 쓰듯 해산을 명령한다. 선배들을 다시 안 마주치기 위해 동기들과 발을 맞추어 빠른 뜀걸음으로 얼차려 장소를 벗어났다. 도망가듯이 빨리 택시를 잡아탄 후, 추운 날씨임에도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손으로 쥐어짜며 나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아.... 씨발...."




 아직도 와이프를 도와서 집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곤, 나도 모르게 '후보생의 고독'이라는 학군 단가를 흥얼거린다. 아직도 그 고달팠던 1년 차 후보생 시절을 회상하면, 가슴 한편이 뭉클하다. 아리다고 해야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힘들었던 기억이 결코 달갑지만은 않다. 아마 ROTC 1년 차 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겠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당연히 안 할 것이라고 단언할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보게 된 불가항력적인 절대 권력에게 절대복종을 하며 쉴 틈 없는 괴롭힘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초원의 미어캣이라도 된 것 마냥, 평범한 길을 걸어갈 때에도 좌우 앞뒤 사주경계를 하며 선배들이 주변에 있는지 항상 확인을 해야만 했다. 1km 밖의 선배를 발견한다면, 목청이 찢어지도록 경례를 해야만 했다.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이 놀라서 기절을 하더라도 나와 동기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큰 목소리로 타인들에게 무례를 범해야만 했다. 가슴이 항상 답답한 듯 소화도 안 되고,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으로 1년을 살아본 적이 있는가? 나의 ROTC 1년 차 생활이 그러했던 것 같다.


그래도 살아남았다.
작가의 이전글 Ep 24: ROTC Part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