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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l 27. 2022

Ep 24: ROTC Part 2

미소야! 안녕!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때 즈음 학군단에서 호출이 왔다. 호출 이유는 단복을 맞추고, 보급품 등을 지급해주기 위해서였다. 단모, 단복, 단화, 체육복, 체육화, 전투복, 전투화, 군장 등등등. 챙겨야 할 것이 많은 만큼 긴장감도 고조되고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짐을 느꼈다. 한 사람씩 줄을 서서 정신없이 보급품 등을 지급받고 더블백이라고 불리는 샌드백처럼 생긴 못생긴 가방에 지급받은 물품들을 꾹꾹 눌러 담은 후, 딱 봐도 군인으로 보이는 훈육관님의 훈시가 이어졌다.


"여러분,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학군단에 입단하여 주신 것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입단식은 내년 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진행될 예정이며 기타 자세한 사항은 밖에 대기 중인 선배 후보생들이 설명해 줄 테니 잘 경청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럼 건강한 모습으로 입단식 때 뵙겠습니다."


 간결했지만 따뜻한 어조의 말투였다. 소문보다 그렇게 무서운 곳만은 아니구나라는 안심을 할 수 있었지만 학군단 건물 내부는 왠지 모르게 스산하고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것만 같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사로잡혀 나는 스스로 여유 있는 미소를 유지하려고 노력한 채 자리에 앉아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조금씩은 얼어붙어 있는 표정이었다. 건물의 기운에 중압감을 떠받치며 선배 후보생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충성! 대대장 후보생 외 4명 강의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어 그래.. 어서 들어오렴.."


 선배 후보생들이 들어오는 순간 우리들은 그 기운에 자연스럽게 압도당했고, 그 상태로 얼음이 되어 버렸다. 스산했던 기분은 내 착각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미소를 머금고 부동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러분, 여기 후보생들은 명예 위원 후보생들로 학군단을 운영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훈육관을 도울 예정입니다. 선배 후보생들의 말은 훈육관의 말이라고 잘 생각하고, 학군단 생활에 대한 많은 조언과 가르침을 받기를 희망합니다. 그럼 교육 잘 진행하고 나는 이만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쉬어, 충성!"


 훈육관님께서는 그렇게 앞으로 전개될 상황들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모르는 척, 우리들을 사나운 맹수들에게 인계하시고는 유유히 자리를 떠나셨다. 훈육관님이 나가신 후 숨소리조차 내기 힘든 적막이 감돌았다. 속으로는 아빠 잃은 아이처럼 훈육관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날 리 만무했다. 훈육관님이 우리들의 군기를 잡기 위해 고의적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는 사실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훈육관님의 발걸음이 멀어질 때쯤 정보 작전 사관후보생이 입을 열였다.


"자.. 주목!"


 우리는 쩌렁쩌렁한 선배 후보생의 목소리에 따라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는 다시 말했다.


"주목이라고 말하면 주목이라고 복창 후 고개를 돌려 시선을 고정시킨다. 알겠나?"

".........."

"내 설명이나 말이 어렵나? 대답 안 하나!?"

"네... 네네네!!!"


 당황한 우리들은 우후죽순 대답을 해댔고, 그것이 못마땅한 선배 후보생들은 싸늘한 무표정으로 우리들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이어 대대장 후보생이 입을 열었다.


"정작 선배, 아직 입단도 안 했고, 첫날인데 살살해요."

"대대장 선배, 여기까지만 할게요."


 정보 작전 선배가 말을 이어갔다.


"여기 이 선배는 대대장 사관후보생님이다. 그리고 인사 장교 선배, 정훈공보 장교 선배, 군수 장교 선배, 그리고 나는 정보 작전 장교 사관후보생이다."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우리는 영문도 모른 체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동작 그만! 누가 움직이라고 그랬나!!!!"


 갑자기 불호령이 떨어졌고, 우리들은 다시 얼음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분노에 가득 찬 그를 보고 있자니 나의 암울한 미래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ROTC 1년 차 생활의 악명은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심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나의 머릿속에 엄습해왔다. 절대 권력을 손에 쥔 선배들의 살벌한 엄포에 입단식이고 뭐고 그냥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저들도 1년 차를 잘 견디며 버텼을 테고, 내가 저들보다 못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침착하자! 설마 죽기야 하겠나? 버텨보자! 나는 할 수 있다!'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긴장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자신감 있어 보이게 약간의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기로 생각했다. 그러나 긴장한 모습을 숨기려고 했던 나의 행동은 엄청난 오판이었다.


"야!!!!!"

"......."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던 정훈 선배가 무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 주변 두리번거리는 너!"

"네?"

"선배가 말하는데 웃어?"

"아.. 아니요.."

"요? 장난하나?!"


 나는 금세 미소를 거두고 나의 상황 판단에 후회했다. 입단하기도 전에 선배 후보생에게 말 그대로 찍혀버린 것이다. 참 쉽게 가는 법 없는 다이내믹한 인생이다. 물론 나의 행동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말이다. 정훈 선배가 말을 이어갔다.


"너 이름이 뭐야?"

"JJ입니다."

"그래, JJ, 너 이름 잘 기억하고 있으마. 입단식 이후에 보자! 그 미소를 울상으로 바꿔줄 테니깐!"

"......"

"선배가 말하는데 대답 안 해?!"

"네! 알겠습니다!"

"그래! 지옥이라는 게 어떤 건지 실감 나게 해 줄게! 걱정마라! 그때도 꼭 지금같이 웃어라!"

"네! 알겠습니다!"

"또 웃겠다고?!"

"아.. 아닙니다"


 시작도 안 했는데, 지옥을 예약했다. 도망가고 싶었다. 저항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의 예언이 달갑게 들릴 리 만무했다.


"음.... 그리고 너!! 귀걸이 한 새끼!! 염색한 새끼!!"

"너네들은 이름 뭐야? 개념을 상실했네.. 개념을 만들어줘야지 그럼!"


 나를 필두로 그들은 살생부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여차저차 입단을 하기도 전에 살벌한 첫 만남을 마치게 됐다. 나는 내 몸만큼 큰 더블백을 동여매고 어두운 앞날을 걱정하며 터벅터벅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의 그 심정은 암울함 그 자체였고, 그냥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힘겹게 합격한 학군단에서 입단하기도 전에 매운맛을 제대로 봤다. 힘들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두려움과 공포를 맛보게 되니, 그 두려움과 공포가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커져만 갔다. 다행히 구타는 없었지만, 그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사람을 어떻게 하면 극한까지 몰고 갈 수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아는 전문가들이었다. 우리에게 그들은 마치 범접할 수 없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나는 이때부터 웃음을 잃고 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웃는 얼굴에도 침 뱉을 수 있음을 처절하게 느꼈고, 다시는 웃지 않을 것 임을 스스로에게 다짐 또 다짐했다. 학군단 생활은 전혀 즐겁지 않았고,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나라는 주체를 억누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그날부터 인간의 감정보다는 로봇의 명령 수행 체계를 이해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심장이 차가운 로봇이 되어야만 했다.


한계를 안다는 것은, 그것에 근접해 봐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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