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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l 26. 2022

Ep 23: ROTC Part 1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학군단

 대학교 대자보에 ROTC 모집 공고 포스터가 붙었다. 지원 자격은 모든 학기 학점 3.0 이상, 지원 과정은 1차 체력 검정 후, 2차 분야별 면접 그리고 신원 조회의 단계 등을 거쳤다. ROTC 지원은 나의 부족한 학력을 커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였고, 추후 취업 전선에 뛰어들더라도 당연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강했다. 나는 지체 없이 학군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록 대학 생활에서의 자유를 2년이나 포기해야 했지만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런 고민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체력 검정은 1.5km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 등으로 진행되었는데, 검정일 2달 전부터 합격해야겠다는 의지로 총력을 다했다. 강의 중 빈 시간이 있으면 대학 캠퍼스를 트랙 삼아 미친놈처럼 뛰어다녔는데, 랜드로버라는 캐주얼 구두를 신고 뛰다 보니 무릎에 무리가 갔다. 갑자기 걷기 힘들 정도의 심각한 통증에 덜컥 겁이 나서 정형외과를 방문해보니 충격 흡수가 안 되는 아스팔트 위에서 구두를 신고 오랜 시간 뛰어다닌 탓일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을 받았다. 체력 검정이 코 앞인데, 이러다가는 시도도 못하고 떨어지겠구나 싶어서 처방받은 소염진통제를 복용하고, 당분간 충격 흡수에 편한 운동화로 신발을 바꿔 신었다. 뜀 뛰기를 할 때에는 딱딱한 아스팔트 대신 학교 대운동장을 시험장 삼아 열 바퀴, 스무 바퀴씩 돌았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도 밤늦은 시간 학교 운동장으로 올라가 오래 달리기의 페이스를 잊지 않기 위해 매일 같이 달리고 또 달려댔다. 매일 같이 운동을 한 덕분에 나름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릴 수 있었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도래했다.


 언뜻 보아도 경쟁률이 치열했다. 몇 백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지원자들이 하나둘씩 약속된 장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원이 그렇게 많아 보였던 이유에는 인근 대학교 ROTC 지원자들도 날을 맞춰 함께 체력 검정에 응시해서 그런 듯 보였다. 실로 어마어마한 지원자들로 인하여 혹여라도 탈락할까 걱정도 되었지만 합격에 대한 의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그렇게 1.5km 달리기를 필두로 대망의 체력 검정이 시작되었다. 대략 20여 명씩 그룹을 나누어 각 조 별로 달리기를 실시하였는데 군인으로 보이는 감독관이 우리들을 주목시킨 후 말을 이어갔다.


"자! 주목하여 주십시오! 1.5km 달리기는 각 조 별로 진행되며, 5바퀴 반을 완주하면 되는 시험입니다. 1등급은 5분 30초 이내로 완주해야 하며 2등급은 5분 45초 이내로 결승선을 통과해야 합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구급차가 운동장 한쪽 편에 준비되어 있으니, 몸 상태가 이상하거나 안 좋으신 분들은 바로 저희 감독관에게 알려주십시오. 재시험은 없으며 기회는 한 번뿐 입니다. 그럼 건투를 빌겠습니다."


 짧고 간결하지만 위압감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주위를 둘러보자 감독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원자들의 눈빛이 전투적으로 변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체육학과로 보이는 지원생들이 단체로 구령을 붙여가며 몸을 푸는 등, 전투가 임박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의 심장 역시 전고가 둥둥둥 소리를 내며 요동치듯 나에게 전쟁이 임박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안 된다! 나는 할 수 있다!'


 속으로 다짐을 하고 마음을 추스르며 자기 암시를 했다. 승패가 갈리는 앞 조들의 경쟁을 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속한 조의 차례가 왔다. 딱 봐도 잘 뛰게 생긴 우락부락한 체육학과생들이 4명이나 한 그룹에 포진되어 있었다. 약간 주눅은 들었지만 경쟁자들에게 여유를 선사해주기 싫어, 내색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출발선에 서기 전 감독관은 명단을 호명하며 얼굴을 일일이 확인한 후 출반선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저 녀석들 4명이 4등까지 차지하면, 나는 아무리 잘해도 5등이라는 건가?'


"자! 준비...."

"땅!!"


 경쾌한 신호 총소리가 나기 무섭게 체육학과 4명이 선두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뒤처질 수 없어 바로 그 4명 뒤를 따라붙었다. 초반 무서운 속도로 치고 나가는 녀석들을 따라가자니, 내가 연습했던 페이스가 무너질까 당황했지만 이내 호흡을 가다듬고 원래 계획대로 달리기를 결정했다.


'4바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연습했던 대로 최대한 따라가고, 마지막 한 바퀴 반에서 승부를 보자!'


 나는 운동장 바퀴를 거듭할수록 몸이 가벼워졌지만, 그룹 내 다른 지원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훈련의 성과를 몸소 느끼며 마음속으로 약속했던 4바퀴 선을 지났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100m 달리기를 하듯이 폐활량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가속을 하기 시작했다. 꼴등으로 죽을 상을 하며 달리던 지원자를 추월하고, 체육학과생들 또한 하나둘씩 제쳐 나갔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녀석들의 얼굴을 보며 추월을 하는데, 이미 지치고 힘든 얼굴이어서 한 명씩 따라잡는 나를 견제하며 도망가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순식간에 조 2위로 치고 나가며 선두를 탈환할 준비를 하는데, 선두에 선 녀석이 만만치 않았다. 점점 거리는 좁혀졌지만, 나의 계산 오류로 인해 몇 걸음 차로 선두를 그 녀석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숨을 고르며 주변을 확인해 보니, 너도 나도 죽겠다며 땅에 드러누워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어떤 지원자는 너무 힘들었는지 헛구역질을 하며 구토를 하는 등 환자들도 속출했다. 반면 체력적 여유가 있었던 나는 차분히 숨을 고르며 제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나의 기록은 4분 50초, 조금만 더 빨리 스퍼트 했더라면 충분히 1등을 할 수 있었겠지만, 체육학과생들을 기겁시킨 것으로 만족했다.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고, 감독관들을 포함해서 모두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던 진검승부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운동장 모퉁이에서 일반 학생인 나에게 오래 달리기를 졌다며 응원 나온 체육학과 선배들이 지원자들을 꾸지람하는 듯이 보였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어쩌겠니? 나를 만난 너희들이 운이 없던 거지. 내가 뒤쳐지면 내가 탈락이잖니?'


 그렇게 모든 체력 검정은 나의 계획대로 1등급을 획득하였다. 나는 보람의 땀방울을 흘리며 근거 있는 자신감과 함께 합격 통보를 기다렸다.




 체력 검정 합격 통지를 받은 후, 인터뷰까지 기존에 준비했던 대로 기분 좋게 마무리하였다. 염원했던 학군단 입단은 계획대로 성사되었고, 또 한 번의 인생 시험 합격을 자축하였다. 이때부터 나는 한 가지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데, 매일 같이 팔 굽혀 펴기를 43번씩 3세트 하는 것이었다. 43번을 하는 이유는 학군 43기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선배들에게 얼차려를 받을 때에도 43기라는 이유로 항상 한 세트당 43번씩 얼차려를 받아야 했었기 때문에 얼차려를 받을 때곤 눈앞에 보이지도 않는 후배들을 걱정해야만 했다. 학군 100기가 입단한다면, 그들의 얼차려 기준은 100개가 될 것임에 웃픈 상상도 해보았다. 그와 동시에 선배가 없었을 것 같은 1기 선배들은 어떻게 생활했을지 궁금해하면서 알지 못할 부러움에 사로잡히곤 했다. 아무튼 나는 술을 마시든, 몸이 피곤하든, 운동을 하기 싫은 마음이 들든, 아프던지 간에 1년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묵묵히 체력 관리를 하였다. 향후 소대장으로서 소대원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빠짐없는 체력 관리에 육체적, 정신적 자존감은 절정에 달했고, 이러한 좋은 습관은 강인한 나를 만들어주는 초석이 되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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