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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Aug 05. 2022

Ep 26: ROTC Part 4

입방정

 단복을 입고 이동할 때에 선배들이 정해놓은 규율이 있었다. 일정 간격을 두면서 한 명씩 따로 다니면 안 되고, 4명 이상일 경우에는 4명씩 그룹을 끊어서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제식 동작을 통일시켜야만 했다. 우리 학과에는 동기생이 없었으므로 동기생들과 따로 연락하지 않는 한 나는 주로 혼자 다녔다. 선배들이 정해놓은 이동로를 통해 학군단으로 이동하면 되는 매우 간단한 여정이었지만 항상 선배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불안감과 맹수의 소굴로 기어들어간다는 두려움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학과 수업을 마친 후, 혼자 큰 걸음으로 학군단을 향해 걸어가던 중, 뒤에서 홀로 걸어오는 동기를 발견하게 됐다. 선배들에게 걸릴까 봐, 그 동기를 도로 한가운데에서 사주 경계를 하며 기다렸다. 서둘러 그 동기와 합류하고 발을 맞춰 다시 이동하려고 했는데, 정훈 장교 선배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목청이 찢어지도록 경례를 하였는데 우리를 쳐다보면서도 경례를 받아주지 않아 계속 경례 자세를 유지한 채로 이동하였다. 가까스로 10초 정도 경례자세를 유지한 후에야 경례를 받아 주셔서 오른손을 내릴 수 있었다. 찜찜한 기분으로 학군단 생활관내에서 부동자세로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정훈 장교 선배가 우리들의 생활관 철문을 걷어차며 기분 나쁜 표정으로 들어왔다.


"꽝!!!!"
"쉬어! 충성!"
"........."


 한눈에 보아도 심기가 매우 뒤틀린 듯한 표정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말없이 경례를 받아주시곤, 우리들의 관물대와 복장 점검 등을 실시하였다. 꼬투리를 잡기 위함이었다. 나와 입단 전부터 악연이었던 그 선배는 어느샌가 나를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다. 부동자세로 있는 내 근처로 와서는 말없이 잘 닦아놓은 구두를 툭 건드렸다.


"1000번 JJ 후보생!"
"뭐라고?"
"1000번 JJ 후보생!!!"
"JJ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네. 요즘 너무 편해서 빠졌냐?"
"1000번 JJ 후보생, 아닙니다!"
"지금 선배 귀먹으라고 가까이 있는데, 소리 지르는 거냐?"
"아닙니다!"
"여름 방학이 다가오니깐 즐거운가 보지? 오늘 밤 열외 없이 얼차려 장소로 집합한다! 알겠나?"
"(모두 함께) 예! 알겠습니다!"


 저 인간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왜 항상 저렇게 뾰로통해가지고 지랄도 상 지랄을 해대는 건지. 총각 히스테리라도 있는 것인가? 키도 조그마해서 선배만 아니었으면, 그냥 한대 줘 패 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내일이 여름 방학인데, 씨발, 끝까지 이 지랄이네! 미친 개새끼!'


 오늘은 또 얼마나 힘들려나? 심란한 마음에 동기들은 모두 똥 씹은 표정으로 군사학 수업을 받은 후 집으로 귀가했다. 해가 지자, 사복으로 환복을 한 후 약속 시간에 맞춰 얼차려 장소에서 오와 열을 맞춘 상태로 숨죽인 채 대기하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저승사자들이 하나둘씩 입장했다.


"쉬어! 충성!"
"얼차려 받는다고 소문내냐? 목소리 안 낮춰?"
"예, 알겠습니다."
"엎어."
"일어나."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한강 철교 실시."
"머리 박아, 앞으로 3보 전진."
"하나......."


 매번 당하는 얼차려이지만, 모든 얼차려의 하나 자세를 버티는 것은 항상 죽을 정도로 힘들다. 그렇게 선배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우리들은 2~3시간 후에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된 행색으로 겨우 해산을 명령받았다. 해산 명령이 하달되면 우리는 선배들을 다시 마주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빨리 집합 장소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선배들을 뒤로하고 거지 같은 꼴로 귀가하기 위해 동기들과 대화를 하며 어두 컴컴한 대학 캠퍼스를 지나서 대학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날따라 억울하고 분한 기분이 배가 되어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정훈 선배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야, 씨발 진짜 좇같아서 못 해 먹겠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도 모르겠고! 왜 나한테만 그러지?"
"JJ야, 진정해! 언젠간 나아지겠지!"
"아, 씨발! 재수 없는 정훈 씹새끼!!!!!!"


 다소 큰 목소리로 정훈 선배를 지목해서 욕을 했다. 그러면서 길가에 주차된 차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 무언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정훈 선배가 주차되어 있는 차 사이 사각지대에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만 것이다.


"쉬어! 충성!"


 우리들은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순간 지독할 정도로 고요한 정적에 나의 심장 소리만 요란하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정훈 선배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는 듯 부들부들 떨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인생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란 이런 느낌일까? 태풍의 눈에 서있는 것만 같은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그 순간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꺼져! 빨리 꺼지라고!!!!!! 아아아아아악!!!!!"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춤주춤 하는데 정훈 선배는 괴성을 지르며 빨리 꺼지라고 했다. 다시 어딘가로 끌고 가서 반 죽을 정도로 얼차려를 줄줄 알았는데, 그냥 가라고 하니까 더 무섭고 두려웠다. 면전에 대놓고 뒷 욕을 심하게 한 나는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뛰어서 도망갔다. 가라고 하시니 갔지만 앞날이 너무나도 깜깜해서 나의 영혼은 절반쯤 가출한 상태였다. 동기생들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위로도 대화도 건네지 못했다. 그냥 무슨 소리를 해줬더라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냥 죽었구나를 속으로 연신 되뇌며, 극강의 공포를 맛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부분은 다음날부터 여름방학이었기 때문에, 당분간 선배들을 마주칠 우려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호출을 하면 불려 나가겠지만, 예상외로 맹렬히 휘몰아치는 태풍의 눈 같은 여름방학을 보내게 됐다. 물론 나의 입방정 덕분에 집에 가만히 숨어 있더라도 하루하루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고, 정신적 고통은 극에 다다르고 있었다. 미칠 것 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지만, 우리 학군단은 학군교 하계 훈련을 2차에 배정받아서 잠시 숨 돌릴 틈이 있다는 것도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 하지만 잠시만 생명줄을 보존한 것일 뿐, 암울한 현실은 변함이 없었다.


'정훈 선배가 다른 선배들에게 얘기를 했을까?'
'학교를 그만둬야 할까?'
'다른 학교로 편입할까?'
'삼사관 학교를 알아볼까? 근데 복무 기간이 너무 길지 않나?'
'공군 병사로 지원할까?'
'내 입방정 때문에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는 없잖아,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꿈이었으면 좋겠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병신 같은 새끼! 가만히나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왜 입방정을 떨어가지고!'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고, 복잡한 심경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뭐라도 해야만 했다. 이렇게 가만히 틀어박혀서 괴로워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공포를 이겨내며 정훈 선배 전화번호를 찾은 후 통화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정면 돌파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보다 더 최악이 있을까? 모 아니면 도다!'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 연결음이 들렸다. 엎질러진 물이니깐 모르겠다. 일단 전화를 해보면 뭐라도 나오겠지라는 심산이었다.


"따르릉따르릉.."
"뚝!"


 전화를 안 받았다. 한번 더 해봤지만 여전히 안 받았다. 고의로 안 받는 것임이 분명했다.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89#(그 당시 발신 번호 미표시 방법)으로 전화를 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더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안방에 있는 집 전화기 앞에 자리를 잡았다. 부모님이 들어오실 수도 있으니, 문을 걸어 잠그고 집 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띠띠띠 띠띠띠 띠띠띠띠~ 따르릉따르릉~"
"여보세요?"


 헉, 전화를 받았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황급히 전화 예절을 시전 했다.


"충성! 1000번 JJ 후보생, 정훈공보 장교 사관후보생님께 용무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


 분명 전화를 받은 것 같은데 답변이 없었다. 얼굴과 손에는 이미 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말의 물꼬를 못 트고, 안절부절못하던 찰나, 정훈 선배가 말을 했다.


"재수 없는 새끼한테 뭐하러 연락했냐?! 어?!"
"아닙니다!"
"왜? 다시 한번 해보지?"
"그때는 정훈공보 사관후보생님께서 저만 미워하시고 괴롭히는 줄 알고, 너무 힘들어서 저도 모르게 그랬습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학군단 내에서는 죄송하다는 말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말끝을 흐렸다. 아마 말은 하지 않았어도 내 마음을 짐작은 하셨을 것이었다.


"JJ, 알았다. 뚝!"


 말투는 차가웠고, 매우 짧은 시간의 통화였지만 처음으로 인간적인 선배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진정 강해지라고 그렇게 괴롭혔나?'라는 혼자만의 착각이 들 정도로 살짝 삐쳐있는 선배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후 서로 간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불편한 마음으로 또 다른 하루를 기다렸다. 선배가 늦잠을 주무시는 걸 방해할까 봐 다음날 점심 이후 14시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제 전화를 받으셨으니 오늘은 나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
"충성! 1000번 JJ 후보생, 정훈공보 사관후보생님께 용무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그래, 왜?"
"점심은 맛있게 잡수셨습니까?"
"난 뭐 그냥 대충.."
"혹시 자취방에 계시면 제가 집 반찬이라도 좀 챙겨드려도 되겠습니까?"
"됐어! 그냥 너나 잘 챙겨 먹어라!"
"1000번 JJ 후보생!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식사 잘 챙기셔야 건강합니다!"
"재수 없다며? 재수 없는 놈을 무슨 건강까지 챙기냐?"
"아닙니다! 저만 미움받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그런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욱 잘하겠습니다!"
"그냥 부모님께 잘해드려라! 하계 훈련 얼마 안 남았는데 체력관리도 잘하고!"
"예! 알겠습니다! 체력 관리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뭔, 감사는, 좀 쉬어라! 힘들었을 텐데.."
"아닙니다!"
"그래, 알았으니깐 내가 좀 쉬자!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용무 마치셨습니까?"
"어, 그래!"
"충성! 1000번 JJ 후보생, 정훈공보 사관후보생님께 용무 마치고 전화 끊겠습니다!"
" 뚝.."

 

 인생의 2번째 기회를 얻는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나는 하계 훈련을 가기 전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꾸준히 정훈 선배에게 안부 전화를 드렸다. 너무나도 어려운 선배였지만, 지속적인 연락으로 인해서 우리 사이의 갈등의 벽은 그렇게 한 여름에 들고 다니는 아이스크림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우리 학교 학군단 선배들은 우리들이 잘못해도 '죄송합니다.' 혹은 '시정하겠습니다.'라는 말등을 못 쓰게 했다. 그래서 타인에게 사과할 일이 생기더라도 미안하다거나 죄송하다는 말 대신 잘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대체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긍정적으로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며 나아가라는 의미였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의 태도는 잘하겠다는 나의 말을 행동과 일치시키기 위해 항상 능동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인생은 참 다이내믹하다. 너무 역동적이어서 좀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내 인생이 역동적인 이유 또한 나의 바뀔 수 없는 성격 때문이란 걸 너무나도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상기 스토리는 나의 인생에 몇 안 되는 끔찍한 기억중 하나이다. 물론 더 끔찍한 사건도 향후에 터지게 되지만,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습작 시절이 되었다. 힘들었던 시절을 잘 버티고 견딘 나 자신이 대견하지만 한편으론 안 겪어도 될 일들을 겪은 나의 다이내믹한 인생이 조금은 안타깝다.


고난은 평범함을 감사하게끔 만들어주는 어려운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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