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Aug 10. 2022

Ep 27: ROTC Part 5

하계 훈련

 정훈 선배와의 사건 이후 마음의 벽은 어느 정도 허물어졌지만 하계 훈련 입소를 위해 학군단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잔뜩 긴장한 채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범죄자처럼 선배들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 사건으로 인한 곤조는 없었다. 그렇게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것만 같았던 파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지나갔다. 그렇게 누구 한 명의 인생을 신랄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 있었음에도 조용히 묵과하며 넘어가 준 정훈 선배의 넓은 아량에 감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의 경솔한 입방정에 매우 죄송스럽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렇게 그날 이후로, 정훈 선배는 더 이상 나를 개인적으로 괴롭히지 않았다. 전화위복이란 말을 이런 상황에 두고 하는 말임을 온몸으로 깨달으며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 사건 때 함께 있었던 동기생 중 한 명이 넌지시 나에게 접근했다.


"JJ야! 너 괜찮냐?"
"어, 다행히 괜찮은 것 같네?"
"근데, 너 어떻게 했어?"
"뭘?"
"아니, 정훈 공보 장교 사관후보생님이 43기 중에 너 한 명은 인정한다고 하시던데?"
"응?"
"비법이 뭐야? 응?"
"비법은 무슨, 그냥 좋게 봐주셨나 보지. 다행이네...."
"에이~ 그러지 말고 정보 좀 공유해줘라!"
"정보랄 것도 없어. 그냥 꾸준함이었다고 할까?"


 비법을 알고 싶어서 안달 난 동기 녀석에게는 대충 둘러댔지만, 남을 통해 듣는 나의 칭찬이 그리 듣기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미 지옥과 천당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던 나의 마음은 더 이상 남들과의 쓸데없는 험담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은 자초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상태였다. 겪기 싫었던 경험으로부터 얻은 인생 두 번째 기회는 말 그대로 너무나도 소중했기 때문에 그 기회를 함부로 날려버릴 만한 어떠한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입소하는 훈련인 만큼, 모르는 것에 대한 긴장감과 두려움은 군장검사를 받은 후, 성남에 위치한 학생 중앙 군사학교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한층 더 증폭되었다. 극강의 긴장감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였고, 그렇게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불편한 마음으로 어딘가로 계속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이리저리 커브를 틀더니 드디어 목표 지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버스 브레이크 잡는 소리가 들려왔다.


"치이익~~~~~"
"자, 모두 군장 챙겨서 운동장 앞에 단번 순으로 2열 종대로 헤쳐 모인다! 실시!"


 훈육관님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학군단에서 챙겨 온 군장을 서둘러 챙긴 뒤 소리 없이 운동장에 서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도시도 보이고 밝은 분위기였는데, 이곳에 들어오고 나니 확연히 달라진 중압감에 당황스러웠다.


"자 1열은 1중대, 2열은 2중대, 10열은 10중대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몸 건강히 훈련 잘 받고, 퇴소식 때 다시 보자!"
"쉬어! 충성!"
"어, 그래, 충성!"


 흡사 서부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황량한 운동장에는 인적 없이 삭막한 모래 바람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분위기 죽이네....'


 크게 생각할 틈도 없이, 서둘러 배정받은 중대로 이동을 해야 했다. 건물마다 번호가 쓰여 있는 것이 보였고, 10이라고 적혀있는 건물로 동기와 함께 이동했다. 조회대 앞에는 한 훈육관님이 철모를 눌러쓰고 서 계셨고, 나는 동기생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그곳까지 이동 후 보고를 하였다. 


"쉬어! 충성!"
 "충성"
"신고합니다! 100 학군단 JJ 사관후보생 외 1명 학생 중앙 군사학교 하계 훈련 입소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야! 됐다. 그냥 대충 하고, 어디 누구라고?"
"100 학군단 JJ입니다!"
"어 너는 10 내무반!"
"너는?"
"100 학군단 오대한입니다!"
"넌 7 내부반!"
"쉬어! 충~!"
"야! 바쁜데 대충하고 얼른 가봐!"
"네? 네! 알겠습니다!"


 삭막할 것만 같았던 학군교 훈련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편한 훈육관을 만나서 그런지 뭔가 이상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전국 각지에서 2차로 입소한 동기들과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낮에는 야외 훈련, 밤에는 군사학 이론 시험을 준비하면서 그렇게 주경야독을 실천하는 4주 간의 군사 훈련을 시작하였다. 그때는 그냥 선배들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그 공간이 지구 상에서 유일한 피난처로 인식되었고, 몸은 힘들어도 정신적 괴로움이 없었으니 그보다 더한 안식처가 따로 없었다.



 

 겁을 잔뜩 먹고 긴장하면서 입소하였는데, 생각 외로 훈련이 편안하였다. 그렇다고 훈련이 진짜로 편안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김없이 얼차려도 받고, 강도 높은 훈련들도 많이 받았지만 2년 차 선배들의 육체적 정신적 괴롭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힘들었다고 말해야 할까? 하루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에 복귀하면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동기생들은 모두들 본인들 학교 학군단의 1년 차 생활의 괴로움을 토로해가며 무용담들을 쏟아냈고, 서로 간의 정보들을 주고받기에 바빴다. 힘든 훈련들을 함께 견디며 이겨내는 동기생들이다 보니, 끈끈한 전우애로 인해 무장 해제되어 이보다 더 단시간 안에 서로 친근해질 수는 없었다. 4주간의 훈련을 마친 후, 각자의 학군단으로 복귀하게 되면 꼭 사회에서 다시 보자고 다짐을 했지만, 인간의 간사함은 상황이 바뀔 때마다 빛을 발휘했다. 땡볕 더위에도 뜨거운 물만 마시며 뜨거운 땀만 끊임없이 흘려대던 우리들은 목 넘김이 시원한 생맥주 한잔이 절실했다. 퇴소하면 꼭 만나서 치킨에 시원한 맥주를 한잔씩 하자고 언약했던 우리들의 약속들은 서로서로의 사정에 의해 그렇게 흐지부지되기 십상이었다. 


 지척에 지내는 다른 학군단 동기생들은 간혹 만나기도 하였으나, 훈련소 내의 힘든 훈련으로 인해 전우애의 간절함으로 각성되었던 아드레날린은 이미 다 소진되어 그때의 감성을 다시 끌어내기는 불가능했다. 각별한 사이가 아니다 보니 다소 뻘쭘한 분위기도 연출되어, 시나브로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다.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인간관계의 가벼움을 배우고 나니, 사람을 만날 때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다하기보다는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만남이 더 많음을 깨닫게 되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편안했던 하계 훈련을 경험하며, 정신적 고통이 육체적 고통보다 더 참고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 스스로 끔찍한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잘 알고 있었지만, 선배들이 탄 버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도착하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했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끔찍한 상상을 하게끔 코너에 몰렸던 나의 심리 상황을 반증하는 척도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우리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선배들이 안 죽고 살아 돌아와서 아쉽냐면서 군기를 잡아대던 선배들을 보고 있자니,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태어나서 다른 사람이 이렇게까지 싫고, 잔인할 수도 있음을 뼈저리게 배웠던 시기였으니, 그도 그럴만하다. 선배들에게 보고하는 것이 두렵고 싫어서 그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마다하였고, 간혹 피치 못할 가족 회식이 있기라도 하는 날에는 가족들 몰래 방구석에서 숨죽여가며 외출 보고를 했어야만 했다. 선배들과 조금이라도 얽히면 항상 생각지도 못했던 말도 안 되는 꼬투리로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갈구려는 자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겠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그때의 같잖은 공포와 두려움은 기분 나빴던 기억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공포를 동반하여 집요하게 통제했던 선배들의 지독했던 사생활 통제 행위는 아직까지도 꺼내보기 싫은 나의 어두운 기억의 단면이다. 그렇다고 장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이제 어지간한 공포와 두려움은 나에겐 명함도 못 내미니깐 말이다. 


 겁의 상실은 나의 도전정신을 강화시켰다.
겁이 없다는 게 아니다. 겁을 이겨내는 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신뢰는 두려움을 가능성으로 바꿔나갔다.
작가의 이전글 Ep 26: ROTC Part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