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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Aug 11. 2022

Ep 28: ROTC Part 6

선배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후배의 모습

 학군교에는 1년에 총 2번 입소를 하였는데, 하계에는 4주, 동계에는 2주 동안 입소하였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동계훈련을 다녀오고 나니, 나는 어느새 번데기에서 막 부화하여 비상하기 전 화려한 날개를 말리고 있는 호랑나비가 되어 있었다. 지난 1년 간의 인고의 시간들을 떠올려보니 좋은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선배들에 대한 증오 섞인 두려움만 가득 남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선배들이 마지막 얼차려 이후 1년 간 고생했다며 뒤풀이를 해주었지만, 그 간의 앙금은 뒤풀이 한 번으로 쉽사리 사라질 리 없었고, 어떻게 없애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혔던 선배들은 여전히 보고 싶지도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그런 인물들로 뇌리에 남게 되었다. 한편, 우리들을 인간답게 대해주려고 노력하셨던 몇몇 평 선배(명예 위원단이 아닌 선배들을 일컫는 말)들께는 그때의 감사함에 아직까지도 가슴 한편에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끔찍한 시간도 흐르고 흘러 나는 어느새 2년 차 선배가 되어 있어고, 더 이상의 시련은 없을 것만 같았다. 다시금 손에 쥔 절제된 자유의 소중함을 감사히 여기며 후배들을 공명정대하게 대할 것임을 스스로 다짐하였다.


 생활관에서 잔뜩 긴장한 1년 차들의 얼굴 표정을 바라보니, 1년 전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했다. 이미 명예 위원단 동기들에 의해 군기가 바짝 올라있는 듯이 보였다. 겁에 질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이 그다지 유쾌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그들이 선후배 간의 예의를 지키며 잘 적응하기만을 기원하고, 가르침 없는 괴롭힘이라고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 그래서 최대한 그들에게 신경을 끄고, 접촉을 자제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인간이란 간사한 존재는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용하려고 든다. 결국 후배들이 어려운 선배와 쉬운 선배를 구분하려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자 나는 나의 권력을 잠시 사용해야만 했다.


 1년 차들의 군기를 담당하던 명예 위원단 소속 동기들에게는 군기가 바짝 들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착하고 터치를 덜 한다고 판단되는 평 선배들에게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부쩍 받고 있던 중이었다. 혹여라도 혼자만의 착각은 아닌지, 다른 동기들과도 대화하여 보니, 그들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래서 악의 순환은 끊어내기가 어려운 것인가?'


 1년 차 후배들이 선배들을 구분하려는 듯한 모습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나는 명예 위원단실로 직행했다.


"어이, 대대장 선배! ㅎㅎㅎ"
"오, JJ 선배! ㅎㅎㅎ"


 2년 차가 되면서 동기들 간의 호칭에 변화가 생겼다. 명예 위원단 동기들은 보직에 선배를 더해 불러 주었고, 나머지 동기들은 이름 뒤에 선배라는 호칭을 서로 붙여주었다. 서로 장난스럽게 호칭을 주고받은 후 말을 이어나갔다.


"대대장 선배, 1년 차들 집합 좀 해야겠어!"
"왜? 어제도 훈육관님이 군기가 빠졌다고 그래서 집합했었는데?"
"훈육관님이? 예전에 우리한테도 그러셨겠지? 하여튼, 내가 볼 때 이놈들이 평 선배들 알기를 아주 우습게 여기는 것 같단 말이지?"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냥 잘해주니깐 감사해서 더 잘할 줄을 모르고 기어오르는 것 같아서 한번 꺾어줘야겠어!"
"오! 드디어 악마 선배의 부활인가?"
"부활까지는 아니고, 그냥 각인 좀 시켜주게!"
"알겠어! 일정 잡은 후에 연락망 돌릴게!"
"땡큐! 그럼 고생해!"


 그렇게 나는 내 안에 숨겨놓았던 악마를 잠시 봉인 해제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동기 연락망에 집합 관련 공지가 올라왔다. 시간을 확인한 후 먹이를 사냥하러 가는 맹수처럼 그들이 얼차려 받고 있는 장소로 어슬렁거리며 다가갔다. 얼차려에 일가견이 있었던 나는 내가 가장 힘들어했던 얼차려들을 하나둘씩 떠올리며 사냥감들을 향해 접근했다. 이미 한 바탕 땀을 뺀 모양새였다. 평소 눈살을 찌푸리며 눈여겨보았던 1년 차 1명이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얼차려 받으며 땀을 뻘뻘 흘리는 1년 차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관등성명을 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 앞으로 다가가 의도적인 신체 접촉을 하며, 지속적으로 관등성명을 유도했다. 그렇게 하고는 한 녀석 앞에 가만히 앉아서 그 녀석만 주시하기 시작했다. 


"동기들은 힘들어도 참고 버티는데, 너는 뺑끼쓰냐? 동기들 더 고생시킬래?"
"아닙니다!"
"아닙니다? 관등성명은 어디다 버리고 왔냐?"
"1050번 홍길동 후보생, 아닙니다!"
"너 내가 누군지 아냐?"
"JJ 사관후보생님이십니다!"
"관등성명은 어디 갖다 버렸니?"
"1050번 홍길동 후보생, 시정하겠습니다!"
"시정?"
"아닙니다!"
"누가 시정이라는 단어를 쓰라고 그랬지? 대대장 선배!!"


 나는 대대장 선배를 호출했다.


"대대장 선배가 1년 차들 '시정'이라는 단어 사용하라고 가르쳤어요?"
"아니요? 왜 그러시죠?"
"아니, '시정'이라는 단어를 쓰길래 물어보는 거예요! 1년 차들이 평 선배들을 우습게 여겨서 그런 건가요?"


 나는 말리는 시누이가 고자질이라도 하듯 모두가 들리게끔 우렁찬 목소리로 흐름을 바꿨다. 상황을 접수한 대대장 선배는 1년 차들에게 불호령을 내렸다.


"1년 차! 동작 그만!"


 1년 차들은 싸리나무 떨듯, 떨리는 목소리로 일제히 관등성명을 댔다.


"내가 그렇게 가르쳤나?"
"아닙니다!"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되나?"
"아닙니다!"
"평 선배들 앞에서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명예 위원단 선배들을 욕보이겠다는 건가?"
"아닙니다!"
"명예 위원단 선배들과 평 선배들은 모두 같은 동기이다! 동기는 하나고, 선배들 역시 하나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날 밤, 나는 군기를 잡겠다는 목적으로 1명의 1년 차 후배를 열외 시켜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 한 명이 메시지를 모두에게 정확히 전달하기만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그 날이후 1년 차들의 태도는 눈에 띄게 바뀌었다.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는 행태를 보고 있자니, 인간의 간사함에 안타까운 한숨만 내뱉게 되었다.


'잘해줄 때, 잘하면 좋을 것을, 잘해주면 더 잘해야지 왜 기어오르려는 걸까?'
'기합 좀 줬다고 잘하는 저 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다. 답답해! 저러니 기합을 받지!'  


 그렇게 나는 1년 차들과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거리를 두기로 결정하였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컸지만, 내가 싫어하던 선배들과 똑같이 불공정하게 행동하는 것은 나의 신념이 허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운맛을 한번 보여준 이후에는 더 이상 얼차려에 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명예 위원단 동기들이 후배들에게 관심 좀 가져달라며 잔소리를 해댔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가만히 놔둬주는 것이 그들에게는 최선의 휴식이었음을.




 어느 날 갑자기 학군교장님(육군 소장)으로부터 공지가 내려왔다며, 훈육관님이 공지 사항을 공유했다.


<학군단내 악습 근절을 위한 행동강령>

 - 2년 차 후보생은 품위 유지를 위해 야외에서 단모를 반드시 착용할 것
 - 1년 차 후보생은 일과 시간 이외에 집합 및 체벌 금지
 - 학군단 가혹 행위 설문 조사 실시
 - 문제 후보생 적발 시, 경고 및 학군교 퇴교 조치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제 좀 단모도 안 쓰고, 편하게 생활하나 싶었는데 1년 차 때처럼 단모를 반드시 착용하라는 공지가 내려오다니. 더군다나 1년 차들 군기를 잡지 말라는 건, 무언가 전통을 아예 무시하는 처사처럼 느껴졌다. 


'그냥 형, 동생처럼 지내라는 건가? 그래도 군대인데, 악습은 버리더라도 군기는 있어야지.'


 2년 차 동기들은 당황하였고,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1년 차들은 내심 공지 사항을 응원하는 듯한 기운이 감돌았다. 우리들은 1년 차들을 말없이 노려보았고, 그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긴장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시행할 거면 1년 전에나 시행하지, 이게 무슨 억울한 경우람?'
'참, 내 인생도 그냥 편안하게 지나가는 법이 없구나. 참 씁쓸하구먼!'


 홀로 사색에 잠겨있던 찰나 훈육관님이 2년 차들은 모두 다른 강의실로 이동하라고 지시하셨다. 알고 보니 1년 차들에게 미리 준비해둔 설문지를 나눠주기 위함이었다. 우리들은 강의실을 이동하며 암묵적인 압박을 1년 차들에게 주었다. 설문지는 형식적인 거였지만, 그래도 얼마 전 후배들에게 기합을 심하게 줬었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힘들게 버텨온 1년 차 생활을 마치자마자 퇴교를 당한다면, 이보다 더 개 같은 경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할 거리는 1도 없었다. 자체적으로 설문지를 취합하여 보고하는 형식이었다 보니 안 좋은 내용들은 자체적으로 검열되어 버려진 후 다시 쓰여졌기 때문이다. 훈육관님이 검열하던 설문지 중에는 가혹 행위를 신고하는 1년 차들도 있었다. 훈육관님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당분간 단모 착용을 신경 쓸 것과 우리들에게 후배들을 살살 대하라고 말씀하시고는, 문제의 설문지를 넌지시 던져놓고 나가셨다. 훈육관님 역시 따지고 보면 ROTC 출신이셨고, 선후배 간 군기의 필요성을 인정하시는 편이셨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학군단은 공지 사항을 따르는 척 시늉만 할 뿐,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따르기라도 하듯, 큰 변화 없이 전통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듯 보였다. 1년 차 후배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격이고, 이보다 더 불공정하고 더러운 처사가 어디에 있을까라고 의문과 불신을 가득 품게 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2년 차 동기들은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지만, 좁혀오는 행정 압박에 몸을 조심히 사려야만 했다. 이유 없이 우리가 당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후배들을 괴롭혔다가는 인생을 종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무기명으로 작성된 설문지 증거 자료를 확보하였기 때문에 밀고자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일일이 필체를 검증해야만 했다. 화가 단단히 난 대대장 선배가 보란 듯이 그 설문지를 펄럭이며 1년 차 후보생들을 주목시켰다.


"주목!"
"주목!"
"선배들의 관심과 애정의 훈육을 매도하는 쥐새끼 같은 녀석이 너희 동기들 중에 있다."
"......"
"관등성명은 까먹었나?"


 모두 기겁한 표정으로 관등성명을 댄 후 대대장 선배(동기)는 말을 이어갔다.


"이 쥐새끼를 필적 조회로 잡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이 쥐새끼를 놓아주기로 결정했다!"
"......."
"대답 안 하나?!"
"네! 알겠습니다!"
"다만 이 쥐새끼가 누군지 모르니, 이 녀석이 스스로 자수를 할 때까지 오늘부터 매일 저녁 전원 집합 장소로 열외 없이 집합한다!"
"예! 알겠습니다!"
"쉬어! 충성!"


 대대장 선배는 싸늘한 표정으로 경례도 받지 않은 채, 1년 차 생활관을 빠져나왔다. 녀석들은 똥 씹은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1년 차였던 시절의 1년은 10년과 같이 느껴졌고 고달팠는데, 2년 차가 되고 나니 1년이 1달과 같이 짧게 느껴졌다. 참 인간이 간사한 게 같은 1년이더라도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서 동등한 시간도 모두 다르게 체감됨을 배웠다. 그렇게 꿀맛 같던 2년 차 생활의 종지부에 다이내믹한 나의 인생이 다시 기지개를 켜듯 비보가 날아들었다. 일반 보병 부대에서도 힘들기로 소문난 최전방 메이커 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부대라도 좋으니, 그 부대만큼은 피해 가기만을 간절히 기원했는데, 당첨되라는 복권은 당첨 안되면서, 당첨 안되기만 바랬던 단 하나의 부대는 이렇게 떡 하니 당첨되고만 것이다. 당첨 확률도 나쁜 쪽에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다. 그때 당시의 극도의 우울감은 미루어 말할 수 없었으나, 죽기야 하겠냐는 마음가짐 하나로 체념을 하며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1년 차 시절에 한 선배가 우리에게 주먹을 오므린 후 눈에 바짝 붙인 채 그 안을 쳐다보라고 명령했다. 


"무엇이 보이냐?"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그래? ㅋㅋㅋ 그게 너희들의 미래다!"
"......"


 선배는 오므리라고 말하였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나의 손을 펼쳐 보았다.


'나의 미래는 이렇게 환한걸?'




나는 실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능동적으로 살고 싶다.
피동적으로만 살기에는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이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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