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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Aug 19. 2022

Ep 29: 임관식

사관후보생 또는 사관생도가 장교로 임명되는 의식

 꿈만 같았던 ROTC 2년 차 생활을 마치고, 국방의 의무를 행하기 전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학생 중앙 군사 학교에 모든 동기생들이 멋들어진 정복을 착용한 채 군집하였다. 임관식을 거행하기 위함이었다. 2월의 꽃샘추위는 칼바람을 일으키며 얇은 정복 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그 덕에 온몸 구석구석은 냉혹한 한기로 무차별하게 난도질당했다. 뼛속까지 아리게 하는 추위에 모두들 고통스러워했지만 국무총리도 참석하는 큰 행사였기 때문에 약 3천 여명의 동기생들은 임관식이 거행되기 4시간 전부터 예행연습을 반복, 또 반복하고 있었다. 원래는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다른 일정과 겹치면서 급하게 국무총리로 변경된 모양새였다.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참석자보다는 임관식이 더 중요했으니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반복되는 연습에 이미 뿔이 머리끝까지 난 임관 장교들을 달래가며, 사회자가 정말 미안하다는 말투로 마이크를 또다시 잡았다.


"자! 여러분, 많이 추우시겠지만 가만히 있으면 더 추우니까 진짜 마지막으로 연습 한 번만 더해보겠습니다."


 저놈의 마지막은 벌써 4시간째다. 허례허식에 강한 염증을 느끼는 나였지만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높으신 양반들이 헬기까지 타고 오신다니 그냥 참고 견디며 한시라도 빨리 임관식이 끝나기만을 고대할 뿐이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추위에 힘들어서, 최초 가슴에 품었던 자랑스러운 임관식에 참석한다는 자부심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이 지긋지긋한 허례허식 때문에 추위에 벌벌 떨며 고생하고 있는 현실에 불만만 가득 찬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황량한 연병장에 차디찬 모래바람을 맞아가며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한 동기생이 쓰러져서 근처에 대기 중이던 응급차로 호송되었다. 순간 이름 모를 그 동기가 걱정되기도 하였지만, 모두 힘든 상황을 참아가며 버티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한편으론 한심하단 생각도 들었다.


'저래서 어떻게 병사들을 통솔하려고.... 그런데 저기 담요를 덮고 누워있을 네가 부럽긴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날도 추운데, 찬 바람은 어찌나 불던지, 부동자세로 저체온증의 고통을 몇 시간 동안 버텨온 모든 동기생들 역시 인내력의 한계에 도달하며 가까스로 버텨내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헬기를 타고도 지각을 한 국무총리 덕택에,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가까스로 임관식은 거행되었고, 다행히 별 탈없이 임관식은 마무리되었다. 아무리 좋은 훈화라도 그저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빨리 좀 끝내자!'


 임관식이 끝나기 무섭게, 기념사진 촬영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신속하게 마치고 부모님이 주차해 놓으신 차를 향해 신속히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였다. 굳게 다문 창백한 입술 안에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위아래 치아들이 서로 치고받으며 경쾌한 소리가 멈추지 않고 터져 나왔다.


"딱딱딱딱딱딱! 따다딱딱딱다다닥딱딱딱!!"


 부모님은 서둘러 차 시동을 걸고, 히터를 최고 풍량인 4단까지 올렸지만 몸의 찬 기운은 쉽사리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입고 오신 외투들을 차에 타고 나서야,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겹겹이 입고 감쌀 수 있었다. 지독한 오한은 차를 타고 1시간이 지나도록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얼음장 같은 손과 발을 녹이려고 애를 쓰며, 괜스레 아까 쓰러져서 욕했던 동기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지 모를 그 동기생도 얼어버린 그의 몸이 통제되지 않아 힘겨웠을 상황이 통감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날 나는 극심한 오한과 발열, 냉탕과 열탕을 오가며,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했다. 그렇게 예정됐던 가족 외식도 못한 채, 병원에 가까스로 기어갔다가 약을 타 먹고는 홀로 끙끙 앓으며 침대 위에서 사투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픈 자식을 보고 있자니, 아버지께서 속상하셨는지 짜증적인 말투로 한마디를 보태셨다.


"왜 약해 빠져 가지고, 아프고 그러냐?"
"누군 아프고 싶어서 아픈가요? 저도 아프기 싫어요!"


 아픈 것도 서러운데, 위로는 못 해줄 만정, 신경질적인 말투로 속상해서 투덜거리시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괜스레 더 서운하고 짜증이 밀려왔다. 두꺼운 이불을 꽁꽁 동여맨 채, 오한과 고열에 시달리다 운 좋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따스한 햇살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두터운 이불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불쾌하기는커녕 기분이 상쾌하고 날아갈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고, 허기가 졌다. 몸이 아프고 나서는 항상 건강에 대한 감사함을 몇 배로 더 느끼는 것 같다. 비록 또다시 금방 망각하겠지만 말이다.


 상쾌한 기분으로 부모님께 아침 문안 인사를 드렸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 그래.. 몸은?"
"많이 좋아졌어요! 거기 병원 약발이 죽이네요!"
"다행이네!"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요!"
"아침인데?"
"이제 OBC훈련 갈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 든든히 먹고 가야죠!"
"그래, 그러자꾸나!"


 그렇게 몸을 회복한 뒤, 가족들과 그리고 친구들과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간직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 그리고 황혼에서 새벽까지 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자유의 시간을 만끽했다.




 나는 효율적이지 못한 전시 행정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래서 높은 사람이 방문한다고 한들, 보여주기 식으로 특별히 더 신경 쓰거나 노력하는 것들은 지양한다. 상관이 난리법석을 떨며 응접 준비를 하라고 시킨다면, 어쩔 수없이 그 지시에 따르기는 하겠지만 그 상황을 못마땅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평상시에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자신 있다면, 그렇게 난리 법석을 안 떨어도 되는데 말이다. 어지르지 않는다면 치울 필요가 없고, 준비가 돼있다면 준비할 필요가 없지 아니한가? 그렇다. 나는 간단하고, 효율적인 것들을 선호한다. 복잡한 업무 행정들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면, 곧바로 시행하려고 노력한다. 다만 나에게 결정권이 없다면, 설득을 통해 최대한 빨리 승인을 받아서 절차를 수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상관이 나의 타당성 있는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허례허식이 가득했던 임관식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짧은 시간의 보여주기 식 쇼를 위해 3000명이 넘는 초임 장교들을 수시간 동안 벌벌 떨게 하며 세워둔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비 효율적이고, 낭비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예행연습이 필요하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1시간이면 떡을 치고도 남을 것인데, 동물원 동물 조련하듯이 무한 반복으로 예행연습을 하는 꼴이 상급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을 제 입맛에 맞게 모두 변경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사소한 문제들은 상급자 본인이 미리 언질을 주고 통제를 함으로써 아주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높으신 분들께서는 이런 문제점들을 보살펴주지 못하셔서 계속 반복하고 계시는 건지, 아니면 권위의식 속 권력욕에 탐닉되어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보여주기 식은 없어질 수 없지만, 좀 더 효율적이고, 상식적인 보여주기 방법들로 똑같은 애로사항이 반복되는 악의 순환을 끊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높으신 양반들께서는 특히나 사회 전반적인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고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내가 겪었던 이런 애로사항들이 앞으로는 더 나아지길 바라면서, 과도기적인 시기에 피치 못해 겪게 된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무리 쓰레기 같아 보여도, 상관은 상관이다.
 
하관은 상관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상급자의 논리에 따르거나,
상급자를 설득하거나,
하급자가 묵과하거나,
혹은 떠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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