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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Aug 24. 2022

Ep 30: OBC

신임장교가 임관 직후 받는 병과별 교육 훈련

 임관 직후 짧았던 휴가 기간을 뒤로하고, 전라남도 장성군에 위치한 상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화학 병과로 배치를 받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동기생들과 3개월 간의 합숙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화학 병과와 관련된 대부분의 내용들을 배우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장비 조작법과 장비명 암기, 그리고 간단한 수학적 계산 등만 잘하면 됐었기 때문이다. 다만 2주간의 유격 훈련에 대한 뒤숭숭한 괴담들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그로 인한 두려움이 나의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먼저 유격장을 다녀온 보병학교 동기생들이 죽다가 살아 돌아왔다며, 몸무게가 2주 만에 10kg 이상 줄었다고 하였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영웅담을 펼쳐댔지만,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알 방도가 없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두려움과 공포로 인한 압박감은 점점 커져, 유격 훈련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전의를 상실한 채 쓸데없는 걱정거리만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저 녀석들도 살아 돌아왔는데, 나라고 못할쏘냐?'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애를 썼지만 형체 없는 공포감의 실체는 점점 우리들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 오고 있었다. 그렇게 2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전차 학교 동기생들과 공포의 동복 유격장으로 입소를 하게 되었다. 도착한 유격 연병장 한 구석에는 수많은 비석들이 세워져 있었고, 흡사 공동묘지에라도 온 듯한 착각이 들게끔 했다. 


"저 비석들은 뭘까?" 
"그러게, 누가 죽기라도 했나?"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2년마다 꼭 죽는 사람이 나온다더라?"
"에이! 설마 죽기야 하겠냐?"
"암벽 등반하고, 하강 훈련하다가 떨어지면 죽는 거지.. 뭐.."
"그런가?"
"아무튼 훈련 때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서 비석을 하나둘씩 세운 게 이렇게 많아졌다는 소문도 있고.."
"흠...." 


 유언비어가 가득한 유격장에서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나의 극한이 어디까지 인지를 타의적으로 테스트할 수 있는 공포의 시간이 코앞까지 성큼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해가 밝자마자 악마 같은 교관과 조교들이 우리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유격장에서 관등 성명은 자신의 번호를 말하고 올빼미라고 대답합니다. 알겠습니까?"
"모든 대답은 '악!'으로 대체합니다!!!!"
"1번 올빼미!!!! 서두릅니다!!!!"
"선착순 10명!!!!"
"자세를 제대로 유지합니다!!!! 신음 소리 내지 않습니다!!!!"
"머리는 땅바닥에 대지 않습니다!!!! 다리 굽히지 않습니다!!!!"
"100번 올빼미!!!! 열외 합니다!!!!"
"마지막 구령 붙인 올빼미! 열외 합니다!!!!"
"버팁니다!!!! 장난합니까? 이런 정신으로 어떻게 소대원들을 지휘합니까?!!!!"
"교장과 교장 사이는 뜀걸음으로 이동합니다!!!!"
"목소리가 이것밖에 안 나옵니까?"
"본 교관이 우습습니까?"


 단 하루 만에 온난전선이 한랭전선으로, 그것도 메가톤급 태풍을 동반한 역대급 저기압으로 우리 앞에 당당히 나타났다. 첫날은 하늘의 축복을 온몸으로 받아가며 유격 체조로 조짐을 당했다. 진흙에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 보니 땀인지, 빗물인지, 진흙인지 분간하기도 힘들었고, 동기생들은 힘든 시름을 신음 소리와 함께 조금씩 입 밖으로 내뱉고 있었다.


"아아아 아악...."
"으으으으윽...."
"끄으으으응...."


 그렇게 하루 종일 몸을 혹사시키고 나니, 하루 만에 온 몸 구석구석에 알이 배기고, 근육통이 발생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정도로 쉰 지 오래고, 일부러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교관의 지시사항은 아무리 귀를 열고 들으려 해도 잘 들리지 않았다. 교관과 조교들은 그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우리들을 더욱 혹독하게 굴리기 시작했다. 다리에 알이 단단히 배겨서 잘 걷지도 못하겠는데, 그 다리로 산악 뜀걸음 질을 끊임없이 해야만 했다. 그야말로 알이 풀릴 틈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동기생들은 고통으로 인한 신음 소리를 참아가며, 유격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군기가 바짝 든 동기생 올빼미들은 정신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3일 차가 되는 날에 거대한 암벽이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당도하게 됐다. 그곳에서도 여지없이 교관과 조교들의 호루라기 소리와 불호령은 끊이지 않고 청명하게 들려왔다.


"삑삑~ 삐비 빅~ 삑삐비비빅!"
"하나!"
"삑삑~ 삐비 빅~ 삑삐비비빅!"
"둘!"
"10번 올빼미!! 장난합니까!!!!"


 지옥 같은 훈련으로 이러다가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암벽 하강하기도 전에 다리 힘, 손 힘이 남아나지 않아 떨어져서 죽겠네!!!!'


 신음소리를 참아가며, 조교의 구령에 따라 열심히 PT 8번, 쪼그려 뛰기, 팔 벌려 뛰기, 앉았다 일어섰다를 쉼 없이 반복하던 찰나, 이름 모를 한 동기생의 뚜껑이 조교를 향해 열려버렸다.


"아오! 이 씨팔! 좇같은!!!!!!"
"아, 이 씨팔!!! 아아아 아악!!!"


 이성을 잃어버린 동기생 덕에 얼차려는 잠시 중단되었고, 이내 모든 시선은 그 동기생에게 집중되었다.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던 한 교관이 그 동기생을 향해 고함을 쳤다.


"100번 올빼미!!!! 뭐 문제 있나!!!!!"
"아아아 아악!!!!!!!!!!"


 흥분을 쉽사리 진정시키지 못하는 그 동기생은 괴성을 질러댔다. 순간 너무 힘들어서 그 동기생이 정신줄을 놓은 줄 착각마저 일게끔 한 상황이었다. 그 동기생은 말을 이어나갔다.


"씨팔! 조교 병사 새끼들이 뭔데, 우리를 이렇게 굴려대고 갈구고 지랄입니까?"


 그 나름대로는 통쾌한 한방이었겠지만, 그 동기생의 안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너무 힘든 나머지 감성이 이성을 장악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교관이 말을 이어갔다.


"본 교관이 없을 시에는, 조교가 교관의 분신이다. 그리고 본 유격장에서는 계급장이 없다! 그래서 귀관들이 올빼미인 것이다!"
"그럼 왜 교관님은 중위 계급장을 달고 하십니까?"
"본 교관은 중위이기 때문이다! 문제 있나? 퇴소하고 싶나?"
".........."


 감성에 지배당한 그 동기생은 한마디도 물러서지 않고, 따지듯 대꾸하였고, 상황이 생각보다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임을 인지한 교관들은 그 동기생을 따로 열외 시켜 어딘가로 데리고 가버렸다. 그 동기생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다른 교관이 우리들을 주목시켰다.


"올빼미!"
"1번 올빼미!, 100번 올빼미!, 78번 올빼미!, 64번 올빼미!,...."
"주목!"
"악!"
"참으로 실망스럽다! 너희들의 썩어빠진 정신 상태를 개조해줘야겠다. 만약 저 올빼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올빼미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 손을 들고 열외 해도 좋다!"
"......."
"대답 안 하나?!!!"
"악!"
"그럼 없다는 걸로 간주하고 더욱 강도 높게 훈련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교관의 얼굴에 똥칠을 하려는 올빼미가 있다면, 진정한 지옥을 경험하도록 해주겠다! 알겠나?!"
"악!!!!!!"


 잠깐의 휴식은 얻을 수 있었지만 설상가상으로 더욱 힘겨운 여정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신력으로 버티고 또 버텨야만 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 버티고, 또 버티다 보니, 유격 훈련 장애물 극복 훈련은 어느새 그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주 흥미롭게도,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알과 근육 통증도 5일이 지나는 시점에 원상태로 복귀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야말로 강압적으로 겪어보지 못했다면, 깨닫지 못했을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알이 풀릴 틈이 없더라도, 계속 알이 배기다 보면 5일 이면 회복되는구나....'


 주말에는 일주일간의 야간 산악 행군 전, 개인 정비 시간을 가졌다. 물집 잡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청테이프를 군화 뒷부분에 붙이고, 그동안 정들었던 유격복도 손빨래 후 반납했다. 이제는 '유격 훈련의 꽃'인 천리 행군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반의 시간이 흐른 만큼 공포와 두려움의 감정이 반감되었다. 불안함보다는 더욱 단단해진 육체적 강함과 1주일만 더 버티면 된다는 희망의 물결이 더 크게 일렁이고 있었다.


 일주일간의 천리 행군은 야간 산악 행군으로 진행됐다. 멀쩡한 아스팔트 도로가 바로 옆에 있는데, 굳이 길도 비좁은 야산을 밤새도록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어야 했다. 산악 행군을 하다 보면 저절로 신음소리와 함께 숨 막힘의 고통이 찾아온다.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를 때곤 숨이 턱밑까지 차서 아무리 숨을 쉬어도 숨을 쉬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40kg 군장에, 갖다 버리고 싶은 K2 소총을 양 어깨로 이리저리 옮겨가며 행군을 하지만, 목과 어깨가 끊어져 나갈 것만 같은 고통은 발 뒤꿈치에 생기는 물집만큼 아리고 성가시다. 날씨도 안 도와준 덕분에 판초의를 걸치고 원망스러운 빗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축축해져서 더욱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기고 또 옮겼다. 군화는 이미 수통과 구분이 안될 정도로 물이 가득 들어찼지만, 그냥 하염없이 걷는 방법 외에는 이 행군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동이 틀 무렵에는 고체 연료를 이용하여 반합에 밥을 짓고, 야전 취식을 실시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친 후에는 동기생과 A형 텐트를 치고 4~5시간의 꿀맛 같은 수면 휴식을 취했다. 


 어두워지면 텐트를 정리하고 다시 산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은 내가 보고 싶은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게 만들었고, 나무 덩굴은 귀신이 웅크리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게끔 만들었다. 평소 귀신을 믿지도 않고, 보지도 못했지만, 극도의 피로감과 고통으로 인하여 헛 것을 본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렇게 행군 결승점을 통과하며 2주 간의 유격 훈련을 모두 마치고 나니, 매서웠던 교관들과 조교들은 어느새 순한 양으로 변신하여 우리들을 따뜻하게 반겨주고 위로해 주었다. 해냈다는 자부심과 벅차오르는 감정에 나도 모르는 사이,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버렸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뽑으라면, 동복 유격장에서의 2주일을 꼽을 것이다. 행군과 유격이라면 학군교 훈련에서도 이력이 날만큼 했었지만, 체력의 한계를 1000번도 더 넘게 느꼈던 그 순간은 나라는 인간을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단연코 피할 수 있었으면 분명 피했었을 찰나였다. 먼저 동복 유격장을 다녀온 동기생들의 영웅담은 전혀 거짓이 없었다. 제법 탄탄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던 나 역시도 2주 만에 6kg을 감량한 것을 보면, 통통한 친구들은 10kg 이상도 감량할 만한 정도의 훈련 강도였다. 


 바닥난 체력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귀신도 보고, 보름달이 어머니, 아버지, 누나 얼굴로 변하는 신기한 경험까지 할 수 있었다. 암벽 하강 훈련을 할 때는 손, 다리에 힘이 풀려,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살겠다고 밧줄을 꽉 잡은 손바닥 때문에 화상을 입어가며 아등바등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웠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동복 유격장의 추억은 치열하게 강한 정신력으로 잘 살아남으라는 교육 훈련의 취지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고 하는가 보다.


 강인한 정신력은 강한 체력에서 나오고, 
강한 체력은 강인한 정신력에서 나온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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