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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Sep 21. 2022

Ep 34: 날갯짓

다시 날아오르다

 분명 자살까지 결심할 정도로 많이 괴롭고 힘들었는데, 최악을 경험하고 나니, 극도의 우울감은 한층 완화되는 것 같은 착각처럼 느껴졌다. 우울의 강도가 약해지니 상태가 완화되었다고 착각하는 듯싶었다. 여전히 암울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의 내면을 사정없이 헤집고 지나간 태풍의 상흔은 쉽사리 치유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상처들을 남겼다. 전 병력이 보는 앞에서 당한 심한 욕설들의 유리 파편들은 수치심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상처 깊은 곳에 함께 파묻혔다. 그 아물지 못하는 상처들은 고름을 뱉어내며 소대장으로서 나의 역할을 무리 없이 진행하기 힘들게끔 만들었다. 이미 너무나도 많이 망가져 버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장교, 부사관, 병사할 것 없이 모두 나의 등 뒤에서 수군거리며 나를 뒷담화하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여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마냥 주위 눈치만 보느라 허송세월을 보낼 수만은 없었다. 경계, 당직, 교육 훈련, 장비 관리, 병력 관리, 지시 사항 이행, 타 부대 협조 등등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당직 근무를 서며, '병영 생활 행동 강령'의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을 지속적으로 반복 숙지하였고, 다른 이들 앞에서는 조그마한 실수도 안 하도록 모든 것에 완벽을 기하기 시작했다. 폭력 사고가 없었다면, 이 정도로까지 완벽을 기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땅바닥까지 실추된 나의 위치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에겐 사소한 실수 한 번쯤으로 용인될 수도 있는 일일지라도, 나에겐 "쟤 또 실수했네~문제야 문제!!"라는 또 다른 구설수에 오르내릴 수 있는 '잘하면 본전, 못하면 치명타'의 게임을 매일같이 진행해야만 했었기 때문이다.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된 군 생활이었지만, 뒤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 외에는 별달리 특별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병적으로 스스로에게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FM 소대장으로서 나의 방향성을 굳히고 있었다. 어쭙잖은 융통성으로 인해 또 한 번의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불상사는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소대원들이 규정과 규범 내에서 융통성을 요구하는 것은 용인하여줬으나, 부대 규정과 규범을 벗어난 융통성에는 과감히 불가 방침을 전달하였다.


 엄격한 관리 감독으로 인하여 소대원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불만 사항은 부대 외출, 외박, 휴가 관련 요청이었는데, 친한 소대원들끼리 한 번에 다 같이 나가서 놀고 싶었던 욕심에 규정에 어긋난 외박 및 휴가 인원을 수시로 요청하였던 것이다. 각 분대장들을 소대장실로 호출하여 평시 부대 운영 규정에 대해 간략히 교육하였다.


"자, 너희들 내무반에도 비치되어 있는 '병영 생활 행동 강령'이라는 책들을 읽어본 적 있는가?"
"없습니다.."
"내가 간략히 알려줄 내용들은 모두 이 책에 들어있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군 생활을 슬기롭게 영위하는 데 있어서 좋은 정보들도 가득 담겨 있지. 평시 주둔 병력의 %가 소대별, 분대별로 구분되어 있으니 앞으로는 이 계산법에 의거하여 휴가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무슨 대답들이 이렇게 시원찮아? 분대장들은 분대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겠지?"
"네.. 그렇습니다.."
"너희들이 분대원들을 통제하려면 분대원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확실하게 알아야 하지 않을까?"
"네.. 맞습니다.."
"그래, 그래서 그것이 너희들이 이 책을 탐독해야 하는 이유야. 분대장들은 개인 정비 시간 등을 이용해서 반드시 이 책들을 정독하고 완벽히 숙지할 수 있도록! 일주일 이후에는 책 내용과 관련된 시험을 보겠다!"
"소대장님, 저희도 해야 할 것들이 많고, 많이 바쁩니다.."
"긴 말 하지 말고, 이건 소대장으로서 명령이니깐 반드시 이행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분대장들은 대화를 하는 내내 불만 가득한 뾰로통한 표정으로 하기 싫다는 내색을 숨기지 않고 표현했지만, 직속상관인 소대장이 지시하니 안 따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틈틈이 그들이 독서를 하고 있는지 체크를 해가며 불평불만을 한 몸에 받으면서 생활하던 도중,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소대 외출, 외박, 휴가 관련 인사권을 담당하고 있던 행정관께서 우리 소대에 딴지를 걸고 넘어가려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소대장님, 지금 부대에서 휴가 가는 병력들이 많으니까, 2 소대에서 휴가 좀 자르세요!"
"왜 그러십니까?"
"아니, 이전부터 본부 소대원들도 휴가 간다는 병력들이 많았는데, 바빠서 여태껏 못 보내고 있다가 이제야 겨우 여력이 생겨서 보내려고 하니까, 양보 좀 하세요! 부대 병력을 다 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깐 외출이든 외박이든, 휴가든 다른 소대에서 자르라고요!!"
"저희 소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요청드린 대로 휴가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소대장님은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고집을 피우고 그러세요? 다른 병력들도 몇 개월 전부터 휴가를 손꼽아 기다렸다고요! 소대원들만 부대 병력인가요? 좀 양보도 하고 그러면서 융통성 있게 사는 법 좀 배우세요!!"
"병영 생활 행동 강령에 의거 제 소대의 평시 주둔 병력 % 는 아무런 문제 없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평시 주둔 병력 %를 어긴 본부 소대에서 휴가를 제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네?!!! 아.. 진짜 짜증 나게 또 왜 그래요?? 어서 나가 보세요!! 아 왜 저리 말이 안 통해?!"


 행정관실을 나와서 내무반이 있는 상황실로 자리를 옮기니, 분대장들이 빼꼼히 열받아서 화가 나 보이는 나의 눈치를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소대 내무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쉬어! 충성!"
"어, 그래!"
"소대장님! 저희 소대 휴가 잘리는 겁니까? 오래전부터 나간다고 약속도 많이 잡아놨는데 말입니다."
"그래, 걱정하지 마! 소대장만 믿어! 내가 다 보내줄 테니! 행동 강령 책은 잘 숙지하고 있지?"
"네, 소대장님이 알려주신 대로 잘 숙지해서 소수점 밑은 절하해서 휴가 신청했습니다."
"그래, 나도 다시 확인해봤다. 그렇다면 아무 문제없어. 제 아무리 기세 등등한 행정관이라도.."
"제가 볼 때는 본부 소대에서 이번에 휴가를 너무 많이 신청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행정관이 본부 소대 담당이시고, 인사권을 담당하시니까 본부 소대 얘들이 말하는데, 자기들은 아무 문제없이 휴가를 갈 거라면서 말하고 다닙니다.. 휴가를 나가지 못할까 봐 걱정됩니다.."
"아무 걱정하지 말으렴. 소대장을 믿어봐!"
"예, 소대장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행정관이 상황실에 전화를 해서 전 소대장들을 인사 행정관실로 급하게 호출했다. 모든 소대장들은 어안이 벙벙해하며 내심 오라 가라 하는 행정관에게 기분이 상했지만, 소대원들의 휴가 승인이 관련된 사항이다 보니, 모두 싫은 내색을 숨기고 행정관실로 발걸음을 서둘러 옮겼다.


"똑똑똑!"
"아, 예~ 소대장님들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각 소대별로 상시 주둔 병력 %를 산출해 봤더니, 2 소대만 빼고 전부 문제가 있어요! 다들 알아서 계산해 보시고, 휴가 조정해서 다시 제출해 주세요! 2 소대는 문제가 없으니 신청하신 대로 승인하겠습니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럼 고생하십시오!"


 선배 소대장님들이 하나같이 한 숨을 쉬며 행정관실을 나왔다. 보통 기존에는 후임 소대장이 휴가권을 양보하거나 하는 형태였지만, 규정을 들이밀며 따지고 들다 보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나 보다. 나를 제외한 타 소대장들은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소대원들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보였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외치고 있었다. 나의 예상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소대장님들께는 죄송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의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사과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비보를 전달하는 각 소대의 상황을 둘러보고 있자니, 여기저기에서 탄식과 개탄의 목소리가 튀어나왔고, 심각하게 찌그러진 얼굴 표정들로 보아하니 상황이 매우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평소 외출, 외박, 휴가 인원들을 너무나도 유별날 정도로 철저히 관리했던 것으로 인하여 소대원들의 불만이 턱 밑까지 차올랐던 상황에서 얻게 된 값진 승리였다. 이 사건 덕분에 소대원들은 나의 지시 사항에 좀 더 높은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나 역시 병신 소대장이라는 멍에로부터 한 걸음 멀어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소대원들이 휴가를 신청하는 대로 신청하던 방식에서 상시 주둔 병력 %를 계산하여 신청하는 방식으로 부대 휴가 신청 시스템을 통째로 변경시켜 버렸다. 별 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부대원 모두 이 방법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인지하는 듯했으며, 이 간단한 방법을 적용시킨 이후에는 휴가로 인한 애걸복걸의 잡음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나의 다음 목표는 소대원들을 특기에 맞게끔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두꺼운 병과 서적을 각 분대별로 배분하여 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내가 무작위로 출제한 시험지를 토대로 소대원들의 성과를 성적에 따라 관리하였다. 성과가 좋은 소대원에게는 좀 더 많은 혜택과 휴식을 제공해 주면서 확실한 동기부여를 제공해 주었다. 당연히 성과가 안 좋은 소대원들은 더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그 시스템으로 인하여 소대 내에서 긍정의 시너지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음을 그때 당시에는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시너지가 제대로 빛을 발하며 큰 관리 감독 없이도,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소대 운영을 실시할 수 있었다. 전문 지식과 상호 간의 신뢰 그리고 자기 동기 부여의 삼박자가 아름답게 조화를 잘 이루면서 나는 그렇게 화려한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비상 뒤에는, 수많은 추락이 존재하는 거야.

성공의 다른 이름은 실패를 잘 이겨내는 방법이야.
실패 없는 성공은 계란 없는 닭과 같아.

실패가 너에게 찾아왔다면, 네가 잘하고 있다는 반증이야.
경험은 실패로부터 만들어지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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