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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Mar 18. 2022

아, 그래서 그랬겠구나

남들이 못한 건 이유가 있다 

언젠가 자서전을 내고 싶다는 분을 만났다. 다른 출판사랑 진행하다 틀어져 새 출판사를 찾는다며 도움을 청했다. 

첫 만남에서 그분은 거품을 물고 전 출판사를 성토했다. 출판사가 너무 성의가 없다. 책을 제대로 만들 줄도 모르는 것 같다며 연신 불만을 쏟아냈다. 원고 넘기고, 본문 편집과 표지까지 나왔는데, 도저히 수준이 너무 낮아서 출간할 수가 없어 엎었다고 했다. 

사실, 나는 자서전 출판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평소 잘 알던 지인이 그 분에게 나를 소개시켜주었기에 만나서 조언을 드리는 게 도리라는 생각에 만났다. 그런데 계속 출판사 험담을 하니 동종업계로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출판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 이렇게까지 실망을 했는지 안타깝기도 하고, 동종업계를 욕보인 그 출판사에 왠지 화가 나기도 했다. 


그 분이 보여준 전 출판사의 편집본을 보니 왜 그분이 그렇게 화가 났는지 공감이 갔다. 표지도, 내지 디자인도 너무 단순했다.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 형태만 갖춘 정도였다. 

"자서전 만드시는 데 출판사에 얼마 주기로 하셨어요?"

"3백만 원이요."

"표지와 내지 디자인, 교정 비용이요?"

"아니요. 편집해서 책 몇 백권 찍어주는 조건이요."

그제야 왜 편집 디자인이 그 정도 수준인지 짐작이 갔다. 분량이 250쪽 정도였는데, 그 정도 분량의 책을 200~300권 찍으려면 인쇄비(종이값 포함)만 해도 2백만 원 이상이 든다. 표지 디자인 비용은 평균 100만 원, 내지는 2도일 경우 최소 쪽당 4천원이니 250쪽이면 100만 원이다. 교정비는 쪽당 최소 3천 원 이상이니 총 75만 원 정도 든다. 그러니 책 한 권을 만들려면 최소 5백만 원은 잡아야 한다. 

그런데 출판사와 계약한 비용이 3백만 원이다. 출판사가 자선사업하는 것이 아니라면 3백만 원을 받고 단 몇 십 만 원이라도 남겨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답은 하나뿐이 없다. 템플릿처럼 이미 만들어진 디자인 포맷을 이용해 단시간에 끝내야 한다. 초보 디자이너를 하루 일당을 주고 1~2일만에 이미 만들어진 포맷에 글자만 바꿔치기 하는 수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3백만 원에 누가 봐도 멋진 책을 만들기를 기대한 자체가 무리이고, 욕심일 뿐이다. 

예전에는 전후좌우 사정보다는 결과만 보고 판단하곤 했다. 예전 같았으면 형편 없는 디자인을 보고 한숨을 쉬며 속으로 '내가 했다면 발가락으로 했어도 저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라며 자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몇 번 누군가가 망친 작업을 호기롭게 수습하겠다고 나섰다가 막상 일을 해보니 왜 전임자가 그런 결과물을 냈는지 이해가 간 적이 많았다. 

물론 실력이 모자라 결과가 안 좋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주변의 사공이 너무 많거나 일을 의뢰한 사람의 고집, 제한된 예산과 여러 가지 조건 등에 의해 결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러한 일을 경험하면서 남이 한 일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요즘 가장 핫한 분을 보면서 결과만 보고 평가하던 예전의 내가 생각나곤 한다. 청와대로 가는 대신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 공약1호여서 꼭 지키려고 그러는 것 같지만 그것이 취임도 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만큼 시급하고 중한 것인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겠다고 말한 대통령은 여러 분이다. 문 대통령도 그 중 하나인데, 근 2년 가까이 검토한 결과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핫한 그 분도 광화문 이전을 검토하다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후 청와대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으니 광화문 대신 용산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나는 그 분을 찍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마의 차이이든 대통령이 되었으니 어찌됐든 인정하고 잘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청와대 이전 문제로 불협화음이 많이 나는 것을 보니 걱정이 앞선다. 그 분은 몰랐을 수 있지만 그 동안 그 분을 보좌했던 분들도 과연 왜 역대 대통령들이 광화문에서 집무를 보려고 했는데 끝내 할 수 없었던 이유를 몰랐던 것일까? 몰랐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뭔가 그럴듯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광화문 이전을 공약 1호로 내세운 것이니까. 

더 무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고집을 부린다는 것이다. 실수할 수 있다. 실수는 바로 잡으면 되는데, 광화문이 아니면 용산으로 옮긴다는 그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런 모습을 강단있다, 추진력있다고 평가하며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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