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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Mar 11. 2022

기대가 없으면 감동도 크다

오미크론 확진 3일차에 걸려온 전화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처방받은 약 때문인지 코로나 증상은 하루만에 대폭 좋아졌다. 그러니까 침 삼킬 때마다 확연히 목이 아파 고생한 건 하루 정도로 끝났다. 약간 코가 막히고, 목이 안 아픈 대신 목이 살짝 잠기는 증상이 나타날 즈음 병원에서 지어온 3일치 약을 다 먹어 고민했다. 병원약을 더 처방받아? 그냥 집에 준비해둔 상비약 먹어? 고민하다 그냥 집에 있는 목감기 약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점심을 상비약으로 먹고 오후 5시쯤 되었는데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워낙 스팸전화가 많아 안 받을까 하다 010으로 시작하는 휴대폰 전화라 받았다.

"여보세요.  OOO씨죠?"

"네, 그런데요."

"아. 네 전 OO이비인후과 원장입니다. 몸은 괜찮으세요?"

순간 멍했다. 병원에 처음 갔던 날, 처방받은 약이 부작용이 나타나 문의하러 병원에 전화를 했었다. 계속 통화중이었다. 3시간 동안 10분 간격으로 내리 걸었는데도 한 번도 전화를 받지 않던 병원이었다. 그런데 원장이 직접 전화를 주다니.

"아침에 전화를 드려야 했는데, 지금 병원이 너무 엉망진창이어서 이제야 전화드립니다. 약 다 드셨죠?"
"네. 증상이 경미해 집에 있는 상비약 점심 때 먹었어요. 근데 컨디션은 괜찮은데, 자꾸 목이 잠기네요."

"전형적인 증상이에요. 지금 저희 병원에서 200명의 코로나 환자를 보고 있는데, 다 비슷해요. 그래도 3차까지 맞으셔서 그만하면 아주 좋으신 편이에요. 지금 약으로 증상을 눌러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거니 약을 좀 더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처방전을 써놓을테니 가져가실 수 있는 분이 있나요?
"네. 가족은 괜찮아요."

"다행입니다."

그렇게 전화는 끝났다. 전혀 예상도, 기대도 안 하다 원장의 전화를 받으니 감격스러웠다. 병원에서 검사받고 진단까지 받으면 그 병원에서 재택치료 환자를 관리해준다는 뉴스는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전화통화도 안 되는 병원이라 그런 기대는 아예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감동이 밀려왔던 것 같다. 사실 오전에 전화를 했어야 하는데, 저녁 때가 다 되어서 전화한 건 관리를 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감동한 건 순전히 전혀 기대하지 않은 덕분이다.


그러고보면 사람간의 관계도, 세상사는 이치도 다 비슷하다. 기대 때문에 삶의 동력을 얻고, 희망을 품을 수도 있지만 이 기대 때문에 실망도 하고 좌절도 한다. 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섭섭함을 낳고, 최악의 경우 관계를 틀어버리기도 한다. 

예전에도 '기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서로에 대해 내 잣대를 기준으로 기대만 하지 않아도 갈등없이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기대는 어찌 보면 관심 아니던가. 아무런 기대로 하지 않는다는 건 맞나? 

확실한 건, 기대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작은 배려가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기대하본저면 기대한만큼 잘해도 본전인 경우가 많다. 참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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