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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Mar 24. 2022

69세

나이가 든다는 것, 통념의 함정을 생각해보게 한 영화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제목이 '69세'이다. 우연히 눈에 띄어 보게 된 영화였고, 시종일관 잔잔하게 흘러간 영화지만 이상하게 여운이 오래 남는다. 어쩌면 나 또한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스스로 느끼는 시점이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시작이 색다르다. 까만 화면에 소리만 두런두런 들려 처음에는 내 컴퓨터가 잘못 됐나 싶었다. 알고보니 감독의 의도였던 것 같은데, 대화 소리만으로는 어떤 영화인지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어서 그저 외로운 노인의 삶을 보여주나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제가 드러난다. 69세의 할머니(?)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29살의 젊은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당시에는 그냥 묻어두려 했지만 결국 고소해야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부터  영화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29세 젊은 남자가 69세 할머니를 성추행했다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통념상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할머니의 고소는 무기력하다. 검찰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번번히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 발부를 기각하고, 피해자인 할머니는 억울함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린다. 

사건도 충격적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했다. 주인공 할머니가 동거하는 할아버지의 죽은 아내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늙어본 적 없어 부러워요"

늙는다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외모가 늙는 것도 그렇지만 몸이 예전같지 않아 젊었을 때처럼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속상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노화는 자연의 순리인데,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같이 일하는 동료 중에도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늙는 것에 대해 경끼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50대임에도 몸매도 날씬하고 스타일도 좋다. 그럼에도 그녀는 항상 더 젊은 사람들과 비교한다. 젊은 사람들에 비해 처진 피부를 비관하고, 나이들어 보이는 것에 좌절한다. 

나이가 든 분들을 보면서는 자기 미래를 떠올리며 걱정한다. 그녀는 입버릇처럼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늙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늙어가면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한숨을 쉰다. 

그녀와 영화 속 할머니가 묘하게 겹쳤다. 물론 영화 속 할머니는 내 동료처럼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지레 짐작하고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늙고 병들고 마음까지 아픈 상태에서 혼자서 삶을 살기는 결코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하는 대사 중에는 노인이기 때문에 불편하고 무시 당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들이 많다. 

영화를 보면서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할머니는 건강을 위해 수영을 꾸준히 하는데, 탈의실에서 만난 중년의 여성들이 인사를 건네며 탈의실을 나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말한다.

"언제부터 수영을 하셨는지 몸매가 처녀 같으시네"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불편해하며 "노인이라고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다. 

내 기준에서는 칭찬이다. 그런데 왜 69세 할머니는 불편했을까. 아마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라 짐작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할머니는 당당했다. 나이 든 할머니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개연성이 없다고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냈다. 여러 사람이 불편해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좀더 밝은 쪽으로 가고 싶어 용기를 낸다는 내용을 글로 적어 육교 위에서 전단지처럼 흩날리게 한다. 

놀랍게도 영화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고 한다. 실제에서는 할머니가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자 억울함과 비통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화의 결말은 달라서 마음이 놓인다. 물론 결말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갔다는 것은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믿고 싶다. 세상에 당당하게 외치고 이후의 삶도 최선을 다해 살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멋지고 귀여운 할머니로 늙고 싶다. 꼰대 짓 하지 않고, 주름이 많아지고, 피부는 처지고, 똥배는 더 나와도 내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려 노력할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과 담 쌓지 않고 힘 닿는 데까지 변화를 수용하며 마음만은 젊은 할머니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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