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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Apr 11. 2022

마음은 무거운데, 어떻게 벚꽃이 눈에 들어올까

지주막하출혈로 의식을 잃은 그녀의 남편 

유난히 마음이 쓰이는 친동생 같은 동료가 있다. 항상 자신보다는 가족을 먼저 챙기는 그런 사람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아닌 듯했지만 나로서는 그런 그녀가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친정엄마를 살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5년 전 쯤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한 언니가 이후 정기적인 검사를 받을 때마다 병원을 모시고 갔다 오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다. 엄마는 그렇다 치고 언니가 싱글이긴 해도 이제 나이가 60대 초반밖에 안 되는데 왜 그녀가 언니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방암 정기검진은 6개월에 한 번이지만 언니가 신장도 많이 안 좋아 2달에 한 번 정도는 언니를 챙겨야 했다. 

더 큰 걱정거리는 남편이었다. 술을 좋아했던 그녀의 남편은 이미 오래전에 알콜성 간염 진단을 받고, 당장 술을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술을 끊지 못했다. 결국 간경변 초기까지 진행하자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남편에게 직장 그만두고 간 치료를 본격적으로 하라고 권했다. 그게 작년 10월쯤이었다. 

다행히 남편은 퇴직 후 집중치료를 받고 많이 좋아졌다. 술도 딱 끊었다. 남편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던 그녀도 다시 안정을 찾고 일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주 토요일 그녀에게 카톡이 왔다. 지난주 목요일은 오랫동안 미뤄왔던 건강검진을 받느라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었다. 가족들에게는 헌신적이면서도 정작 자기 몸 돌보는 데는 인색했던지라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큰 병원에서 유방 정밀검사를 받는 게 좋겠다는 소견을 듣고도 바로 가지 않고 이제야 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집안 내력(언니)도 있는지라 조금은 겁을 먹은 듯했다. 나도 덩달아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암으로 보이는 혹은 없단다. 

그다음 날(금요일) 그녀는 카톡으로 '저 오늘 못 나가요. 이유는 다음에 말씀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막연하게 뒤늦게 사춘기가 온 둘째 딸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둘째 딸이 골을 부린다고 달래주느라 늦게 나오거나 일찍 들어간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요일 카톡 내용은 내 눈을 의심케 했다. 남편이 의식이 없어 병원에 가서 뇌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금요일 아침 남편이 일어나지 않아 깨웠는데 반응이 없어 119를 불러 병원에 갔더니 지주막하출혈이라며 급하게 수술을 했는데, 아직 의식이 없다고 했다. 

쿵!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뇌출혈은 뇌경색보다도 위험하다. 뇌출혈은 1/3이 즉사, 1/3이 병원으로 이송하는 도중 사망, 나머지 1/3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지만 아무 후유증 없이 완전히 회복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마비와 인지기능 저하 등 심각한 후유증으로 고생한다. 의사는 뇌출혈이 일어난 지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은데도 막상 수술을 해보니 손상 부위가 크기 않다며 2~3일 더 지켜보자고 했단다. 

그녀가 너무 불쌍했다. 이미 가장 역할을 하던 그녀였지만 앞으로 그녀의 어깨를 짓누를 무게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또한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사고가 그녀 가족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벌써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카톡을 받은 게 오전 10시 40분경이었는데, 이후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지만 오후 5시에는 꼭 지켜야 하는 저녁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섰다. 가다 보니 눈꽃처럼 새하얀 벚꽃이 길가에 즐비했다. 저절로 눈이 가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그러다 그녀 생각이 났다. 분명 하루 종일 그녀 생각에 우울하고, 밥맛도 없었는데 왜 벚꽃이 이렇게 눈에 잘 들어올까?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라서 그런 건가? 과연 내 가족에게 그런 일이 생겼어도 비록 잠시나마 벚꽃을 보며 탄성을 질렀을까?

괜히 그녀에게 미안했다. 친동생 같은 그녀인데, 그녀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은 한계가 있나 보다. 

오늘 월요일 지금 이 시간까지도 그녀의 남편은 의식불명이다. 그녀는 마음을 잘 붙잡고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섣불리 물어보지를 못하겠다.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좋을지, 자꾸 경과를 물어보며 위로를 건네는 것이 좋은 건지...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독한 소리도 많이 한다. 하지만 아직은 아이들도 어리고 50대 초반이면 젊은 나이다. 제발 빨리 의식을 되찾고, 최대한 후유증 없이 잘 회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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