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비빌 언덕은 필요하다

번아웃 후 휴식 - 53일 차

by Nana

나는 K-장녀다

양가 통 틀어도 내 위로는 사촌 오빠는 한 명뿐이고 나머진 다 동생이다.


결혼하며 지금 사는 도시로 이사를 온 엄마에겐 결혼 후 거의 허니문 베이비처럼 생겨 태어난 내가 엄마에게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으며 몇 년 후 동생이 태어나고 나선 나에게 '쪼매난 엄마'라며 동생을 함께 케어해주길 바랐다. 말이 늦은 동생의 옹알이를 그나마 제일 나이가 가까웠던 내가 엄마 아빠에게 통역도 해주며,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바로 엄마, 아빠에겐 나는 '이미 다 큰 아이'였는데, 그건 내게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불평하는 점이자 어쩌면 내가 커서 만드는 인간관계에 있어 언니 오빠를 유독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나는 내 동생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함께 자란 동생과 좋은 추억도 많지만 굳이 붙인 '이미 다 큰 아이'라는 라벨링이 지금까지 너무 싫다.


서른이 된 지금도 나는 아직 내가 어리고, 어리고 싶고, 케어받고 싶다.


그래서인지 남자친구, 그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날 때까지 해외에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유독 남자 친구, 남편감은 무. 조. 건 오빠를 원했다. 해외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보내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나이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꼭 썸을 탈 때부터 나이부터 묻고 나보다 나이가 어리면 남자로 안 보겠다 마음을 먹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끌리는 사람은 꼭 나보다 오빠였고 (신기하게도 꼭 한두 살만 오빠였지만 그래도 오빠에게만 끌렸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온전히 내가 선택해서 평생을 함께할 내 반려자만큼은 나보다 오빠이고 나도 기대고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초중고를 다닐 때야 대부분의 친구가 학교에서 같은 반이라 친구가 되기 때문에 동갑인 친구였지만 커가며 특히 어른이 되고 만난 친구들 중에 내가 유독 따르고 좋아한 사람들은 언니 오빠였다.


어릴 적 혹. 시 엄마 아빠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낳았지만 잃어버린 언니나 오빠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고 기대해 보았지만 엄마 아빠가 사귀고 결혼하고 나를 나은 타이밍상 그건 헛된 기대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서를 고르지 못하니 없는 언니 오빠가 마법처럼 생길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고 나서 사람을 사귈 때 유독 언니 오빠들이 그렇게 좋았다.


친구들 사이에 있어서도 가족들이 나를 보는 거와 같이 나는 알아서 잘하는 애, 하고 싶은 거 알아서 잘하는 애 이미지가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나는 뭐든 할 수 있다고 했고, 그래서인지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도 고등학생 치고 참 편하게 잘 살아온 거 같긴 하다 (물론 호스트 가족 복이 유독 있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 친구 동생 중에는 힘들어했던 동생들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나서서 도와줬다. 호스트 가족들이 인스턴트만 먹고 집에서 눈치 보느라 일 년 만에 10킬로가 빠졌던 동생은 종종 우리 집으로 불러 맛있는걸 해먹이며 놀았고, 이제는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또 다른 호스트 가족 때문에 힘들어하던 동생 집엔 놀러 가서 우리는 정당하게 돈을 내고 이 집에 살 권리가 있는 거라며 그 친구 집에서 요리해주고 맛있는 걸 먹다가 나중에 정말 더 심해졌을 땐 통역사를 자처하며 내 자습 시간에 어른들 (학교 선생님, 카운슬러 등등)과 함께 미팅을 해서 동생 호스트 집을 바꿔주기도 했다. 후에 호스트 집을 바꿔주기까지 한 동생은 사실 나와 반대로 완전 막내 오브 막내 성향이었는데 그래서 트러블이 생기고 졸업할 땐 영영 인연이 끊어진 내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절교? 한 사람이자 나에게 동생 트라우마를 준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것 덕분에 무조건적인 테이커(taker)에게는 기버(giver) 일 필요 없다는 것을 일 깨워 줬으니 어쩌면 교훈을 일찍 얻게 해 준 것도 같다.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 중에 하나인 언니는 나보다도 더 일찍 중학교 때부터 유학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SAT 학원을 다니다가 알게 된 언니였는데, 사는 곳도 비슷한 위치라 언니와 나는 학원을 마치면 같이 버스를 타고 돌아왔던 거 같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정확하게 그런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집에 가는 버스에서 언니는 어렸지만 굴곡 있었던 언니 얘기를 해주며 자기는 평생 믿을 수 있는 평생 가는 친구 딱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내가 그런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말했고 십 수년이 흐른 지금도 이제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지내는데도 언니는 언제 봐도 항상 옆에 있어온 느낌이었고, 내가 힘들 때 얘기를 하면 봇물 쏟아지듯 위로와 조언을 전해준다. 처음 만났던 1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언니는 나보다 딱 한 살 많을 뿐인데도 뭔가 나보다 경험이 많아 보였고, 내가 가지 않은 길을 조금 앞서 걸어가며, 그렇게 앞서 겪은 것을 통해 배운 점을 아낌없이 내게 알려주며 나는 같은 길을 가더라도 조금 더 편하게 갈 수 있게 안내를 해주었다.


어렸을 땐 그저 내가 잘하고 혼자서 뭐든 잘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뿌듯하고 좋았다.

그런데 신기하게 오히려 한 살 한 살 더 먹고 이제는 어른이 된 지도 10년이 넘었는데 오히려 나는 더 기댈 언덕을 가지고 싶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어쩌면 초등학교땐 항상 빨리 자라고 싶었고 그래서 5-6학년 때는 마치 우리가 다 자라서 캐릭터 같은 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다가 오히려 교복을 입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아직 우리는 한참 어리고 귀여운 게 좋다며 오색찬란한 담요를 들고 다니고 수저통은 뽀로로 캐릭터가 그려진 걸 들고 다녔던 거처럼 20살이 갓 되고 대학교에 다닐 때는 특히 졸업할 때쯤이면 "화석"이라며 세월이 빠르다고 우린 너무 늙었다고 하다가, 직장도 다니고 차도 있고 집도 있는 진짜 찐어른이 되는 줄 알았던 서른이 막상 되고 나니 아직도 우린 생에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시간보다 많고 아직도 배울께 많고 아직도 그저 어리광을 부리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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