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후 휴식 - 59일 차
오늘은 휴직 중에 첫 하이어링 매니저와의 인터뷰가 있었다.
리크루터나 헤드 헌터들과 하는 링크드인 메시지나 짧은 통화나 줌 미팅은 드문드문 있었지만 이런 오피셜 한 진짜 인터뷰는 지금 회사에 들어온 이후 손에 꼽힐 정도였다. (처음이라고 하려 했는데 생각해 보니 반년 전쯤에 한번 있었다)
보통 링크드인이나 이메일이나 전화로 먼저 연락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테핑 업체에 있는 헤드 헌터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 인터뷰 본 회사는 인 하우스 리크루터가 직접 연락이 온 것이었다.
금요일에 연락이 왔는데 잡 디스크립션을 보니 너무 맘에 드는 포지션이었다.
그래서 바로 월요일 (이번 주)에 통화를 하기로 하고 통화가 끝나고 바로 업데이트 한 레쥬메를 전달했다.
화요일에 리크루터가 이메일로 하이어링 매니저가 내 레쥬메를 보고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고 되는 시간을 물어봐서 그날 밤 바로 이번 주와 다음 주 중에 되는 시간들은 보내 주었고,
수요일 아침에 내일 (목요일)에 인터뷰 확정이 되었다는 확인 이메일을 받았다.
24시간 남짓 남은 시간에 긴장되었지만 오랜만에 회사 컴퓨터를 켜고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들은 정리해서 적어 보며 인터뷰를 준비했다.
사실 너무 긴장되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준비에 더 집착하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촉박한 것도 있었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너무 집착적으로 너무 과하게 준비했다가는 아예 모든 걸 외워서 인터뷰하려고 할 수도 있고, 뭐를 물어볼지 모르는 상태에서 오히려 달달 외워버린 대본은 질문에 따라 아예 생각이 얼어붙게 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분명히 물어볼 법한 질문들 (처음에 자기소개, 어떤 업무들을 맡아 왔는지, 왜 지금 회사를 떠나려 하는지 등등)과 인터뷰를 마칠 때 내가 물어볼만한 질문들을 정리해서 읽어보고 오늘 아침에도 한 시간 전부터 읽어보고 다듬어 보고 있었는데 혹시 몰라 노트를 띄워놨는데 어떻게 딱 인터뷰 시작하는데 연결 상태가 안 좋아서 카메라를 끄고 음성으로만 대부분 진행하게 되었다. 그 덕에 쫌 더 마음 편히 노트를 보면서 대화를 진행할 수 있었고 그 덕이었는지 인터뷰는 시간 안에 잘 마무리되었다.
사실 30분 인터뷰라고 해서 시간이 부족하진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적당하게 딱 필요한 질문만 해서 오히려 좋았다.
그래도 뭔가 얼굴을 쭉 보고 얘기한 게 아니고 처음과 끝마칠 때만 영상을 틀어서 왠지 하이어링 매니저의 반응이라던가 그런 걸 알기 어려웠는데 다행히도 묻는 질문에 다 적절한 예시를 들어가며 답변할 수 있어서였는지 리크루터가 내일 아침에 또 그다음 단계 얘기를 하기 위해 통화하자고 했다.
이제 하이어링 매니저 인터뷰가 끝났을 뿐이고 3번의 인터뷰가 더 남았지만 왠지 이 포지션은 딱 내가 원했던 자리라 예감이 좋다.
물론 모든 게 완벽하진 않다. 연봉이랑 복지가 많이 걸리긴 하는데 그건 그래도 오퍼를 받고 나서 어쩌면 네고 가능한 부분일 수도 있기에 우선은 오퍼를 받는데 집중할 것이다.
어제는 한국 다녀와서 첫 상담사와의 미팅이 있었는데 상담사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이직 준비를 이제는 본격적으로 하고 있고 인터뷰를 곧 할 곳이 생겼다고. 그런데 연봉이랑 복지가 너무 걸린다고 하니 상담사는 지금 그래도 어쨌든 풀타임 직장이 아직 있고 내 자리가 보전되어 있는 상황이니 좀 더 마음 편안하게 정말 맘에 드는 곳과 네고 해서 들어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회사 컴퓨터를 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말 정말 지금 회사로 돌아가는 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하며 그렇기에 마냥 마음 편하게 이직 준비가 되지는 않는다고 되도록이면 유급 휴직이 끝나기 전에 다음 회사가 정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터뷰가 잡힌 이 회사는 모든 게 맘에 들고 나도 분명 모든 걸 다 쥘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이 회사가 연봉/복지만! 안 좋은 거라면 그 정도는 감안하고 옮겨야 된다고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만족스럽지 않은 연봉과 복지가 또 한 번 옮기고 나서 나에게 스트레스 요인이 될까 겁난다고 했다.
그랬더니 상담사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며 하지만 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는 거고, 지금은 장기적으로 4-5년 이상 보낼 회사를 고른다고 생각하지 말고 단기로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했다. 특히 나는 지금 내년에는 아기를 가지고 싶고 그렇기에 예전처럼 컨트렉터에서 정직원으로 바꾸는 포지션은 아예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예전과 달리 선택권이 좁아진 상태다. 하지만 내년에 아기가 계획대로 생기고 나온다면 그것 또한 인생에서 너무나 큰 변화이기에 분명 많은 것들이 달라질 거고 달라진 상황에 따라 또 내 마음이 내가 회사와 커리어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 회사에서 만난 엄마뻘의 동료는 아직도 자기 마음은 18살인데 거울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4-5살 어렸고 20대 중반의 나는 그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의 나는 그 동료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나도 여전히 아직도 고등학교-대학교때와 몸도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직은 거울을 봤을 때 그렇게 세월이 크게 느껴지진 않지만 분명 상황이나 주변환경이 많이 바뀌어있다.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나는 달콤한 연애를 꿈꾸고 큰 도시에서 출퇴근을 하는 커리어 우먼을 꿈꿨다.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달콤한 연애를 했고 이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큰 도시보다는 큰 집을 살 수 있고 안전하고 깨끗한 작은 도시가 더 좋아졌고, 회사 출퇴근보다는 재택이 좋아졌다. 무조건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었던 나는 이제 기나긴 면접 프로세스도 출퇴근도 싫어서 차라리 조금 더 작아도 면접 프로세스가 더 빠르고 재택 시켜주는 회사가 더 좋다. 자기 계발 책이 제일 재밌게 읽히던 시기를 지나 책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고 회사 일에 치여 책 읽을 시간조차 없던 시기도 지나 이제는 위로를 해주는 책이 좋고 책에서 또 한 번 배우는 게 많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유급 휴직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일을 안 했지만 이것저것 해보며 바빴고, 그러면서 마음도 업 앤 다운 요동쳤고, 한국도 다녀오고 이곳저곳 다녀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 이제는 정말 이직할 준비가 조금은 된 거 같다. 여전히 불안하고 무섭다. 번아웃을 겪어봤던 언니들의 말처럼 한번 번아웃이 되고 나면 분명 그 전과 같은 열정으로 회사 일을 할 수는 없을 거라 했다. 하지만 괜찮다. 그게 퇴화하는 것도 내가 일을 못해지는 것도 아니고 상담사가 해준 말처럼 회사와 회사일을 보는 시각을 달리해야 할 때가 온 것이기 때문에.
저번주부터 언니의 조언을 따라 감사일기를 써보면서 또 더더욱 느꼈다. 내가 정말 감사하다고 느끼는 일들은 사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고, 일을 하지 않는 지금 오히려 더 그러한 일상의 행복을 크게 느낄 수 있다는 거. 마음은 내생에 가장 불안한 시기를 지나가고 있었을지 몰라도 그런 와중에도 내 주변엔 여전히 감사하게 느껴질 만한 일들이 매일매일 항상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히 회사(일)에 있었던 9-5시에도 여전히 회사 바깥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고 회사가 전부가 아니란 걸 절실히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직을 할 생각이다. 잠깐 사업을 해볼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우연히 펼쳐본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인지 중학교 때인지도 모를) 쓴 글에서도 나는 언젠가는 "대표님"이 되고 싶었다는데 우선 당장 2년은 조금 더 꾸준하고 안전하게 들어오는 월급을 누려볼 생각이다. 상담사 말처럼 아기가 태어나고 나면 많은 것들이 변할 거고 그때 돼서 내가 무슨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처럼 단순히 회사에 돌아가는 게 겁나고 새로 일을 찾는 게 무서워서 회피식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아기를 낳고 출산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때까지, 딱 그때까지 목표로 회사를 선택하고 그때까지 받을 수 있는 월급을 최대한 받아 내서 기반을 다질 생각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전처럼 회사에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했기에, 퇴근 이후의 시간에 앱 개발이던 사업 계획이던 앞으로 2년 동안 사이드 프로젝트로 이것저것 해보며 준비를 해볼 것이다.
대학생 때 고등학교 때 썼던 꿈 리스트를 보고 "오 생각보다 내가 이룬 게 많네?"라고 생각했듯이 최근에 더 어릴 때 쓴 버킷 리스트를 보고도 잊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하고 싶었던 것 중 많은 것들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걸보고 신기했었다. 신기함 + 정말 글에 힘이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글도 부디 2년 뒤의 내가 읽으며 또 한 번 "진짜 쓴 대로 다 됐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