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후 휴식 - 66일 차
오늘 드디어 마지막 인터뷰까지 (잘!) 했다.
어제도 오늘도 내생에 처음으로 한 2대 1 인터뷰였는데 다행히 인터뷰어들도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고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수다 떨듯 대화하듯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팀도 성별도 나이도 다양한 사람들이었는데,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밝고 좋았다.
내가 항상 회사 인터뷰를 할 때면 끝날 때 질문 할 거 없냐고 할 때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는데 그건 "개인적으로 지금 이 회사가 맘에 드는 이유"이다.
한국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캐나다나 미국 같은 경우엔 꼭 인터뷰를 마칠 때 지원자에게 더 질문할 게 없냐고 물어보고 그 기회를 "질문 없다"라고 넘기는 건 거의 뭐 이 포지션에 크게 관심 없다고 선언하는 거나 마찬가지 인 데다가 지금까지 이 전 회사들 인터뷰 볼 때 개인적으로 난 항상 질문할 기회를 전환점처럼 나에게 유리한 분위기로 완전히 바꿨다고 생각이 들 만큼 중요한 기회이다.
이번에도 여느 때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이 회사가 좋은 개인적인 이유를 물었고 모든 사람들은 "사람과 회사 컬처"를 꼽았다. 이번에 인터뷰 본 회사도 그렇고 지금 회사도 그렇고 회사 제품명을 말하면 아는 사람은 바로 아는 정도의 브랜드인데 그에 반해 회사 규모는 사실 그렇게 까지 크지 않은 회사들이다. 그래서인지 "작은 회사"의 장점인 사람들과의 커넥션에 대해 많이들 언급했다. 사실 나도 지금 회사 지금 팀, 지금 매니저와의 관계만 아니면 지금 회사의 장점이 좋은 동료들이라고 생각하니 결이 비슷하다고 느낀 점도 이 회사에 끌린 점 중에 하나이다.
나는 인터뷰하기 전 긴장을 많이 하고 학교 졸업하고 사회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하면 주저 없이 인터뷰라고 꼽을 수 있다. 처음 보는 동료들과도 쉽게 대화하고 스몰톡도 좋아하고 수다 떠는 걸 좋아하면서도 인터뷰는 다르다. 질문을 받는 자리이고 대부분의 경우 어떤 질문을 받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가고, 최악의 경우 대답할 말이 생각 안 나서 침묵이 생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통해 평가를 받고 대답에 따라 내가 원하는 자리에 붙거나 안 붙거나 당락이 결정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부담스럽다.
오죽하면 반년 전쯤 한 인터뷰는 마지막 하루 종일 하는 인터뷰까지 갔는데 (5명의 인터뷰어와 백투백으로 연달아서 하루 종일 인터뷰 하는 거 - 심지어 그것 때문에 휴가까지 써야 했다 집에서 줌으로 화상 인터뷰 하는 거였지만 여전히 시간을 5-6시간이나 써야 하니) 사실되더라도 갈까 말까 고민이 많이 되는 회사/직책이었던 것도 한몫했고 지금까지 인터뷰 본 회사 중에 제일 큰 회사여서 더 압박감이 커서 너무 떨리더니 그냥 그날 첫 인터뷰 하고 나서 현타가 와서 굳이 붙어도 안 갈 거 같은 회사에 인터뷰 경험이랍시고 이렇게 까지 스트레스받으면서 인터뷰를 볼 필요가 있나 싶어서 인터뷰 진행을 안 하겠다고 얘기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사실 어차피 안 와줄 거면 인터뷰는 빨리 끊어내면 끊어 낼수록 좋다. 인터뷰어들도 다들 업무시간 쪼개서 인터뷰하는 거기 때문에)
그런데 이번 인터뷰는 조금 달랐다.
연봉 복지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직책이 너무너무 맘에 들었고 그래서였을까 인터뷰 답변도 한번 트이고 나면 술술 나올 거 같은 느낌적이 느낌이 있었다.
여전히 AI와 미리 대화하면서 인터뷰 예상 질문도 만들어보고 답변도 작성해 보고 다듬고 준비하며 연습하긴 했지만 실전에서 정확히 어느 질문이 나왔을 때 그 답변을 적어놓은 부분을 바로 찾아서 자연스럽게 읽는 것도 사실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그래서 화상 인터뷰고 노트를 조금 적어놓을 순 있더라도 인터뷰가 긴장되는 건데 이번엔 정말 노트에 필기해 둔 키워드만 보면서도 충분히 할 말이 너무너무 많았다.
그리고 번아웃 오기 직전 현 회사에서 팀을 옮기려고 할 때 높은 직책 사람들과 여러 번 개인면담을 신청해서 대화를 하고 나서 여서 그랬는지 일부러 인터뷰 전에 마인드 트레이닝을 한 효과도 본 거 같다. 현회사에서 안면 있는 높은 직책 사람들에게 내가 옮기고 싶은 팀/직책에 관련해서 대화할 때처럼 결국 이 인터뷰 보는 새 회사사람들도 비슷한 사람들일 뿐이라고. 단지 초면일 뿐이라 나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인터뷰 시간이라는 그 정해진 30분-1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것들을 물어보고 나에 대해 알아가려고 하겠지만 결국 이 사람들도 이 자리에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한 질문을 할 뿐이고 무엇보다 지원한 직책에 내가 적합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너무나도 강했다.
지금 회사에 있으면서 배운 점 중에 하나는 회사 다니는 입장에서 새로운 사람이 얼른 들어와 주는 건 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바람이다 (대부분의 경우).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열린 공고에 맞는 사람이 하루빨리 와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게 인터뷰어들이기 때문에 사실 그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내가 인터뷰를 잘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렇게 조금은 뻔뻔하게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안 뽑을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 확실히 인터뷰도 잘되고 결과도 좋았다.
부디 지금 쓰는 이 글이 꼭 예지몽 같은 글이 되기를 바란다. (내 담당 리크루터가 다음 주 수요일까지 휴가를 가있어서 그전에 결과가 나올 거 같진 않다)
어쨌든 인터뷰는 이제 끝났지만 약 최근 3일 정도는 너무너무 긴장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저께였나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마음도 다잡을 겸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준희 작가의 <이직 바이블>이라는 책이었는데 오늘 인터뷰 다 끝나고 읽은 부분이 너무나도 마음에 와닿았다.
책에 나온 고민 사연 중에 나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상사 때문에 힘든 사람의 얘기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조언으로 하루빨리 회사를 나오고 나서 회복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놀랍도록 내가 지난 2달 동안 실천해 온 것들과 닮아 있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삶을 살아보라.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상황이 여의찮으면 걷기도 괜찮다. 사람들도 만나보고 여행도 다니면서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자 (...) 어느 정도 마음이 추슬러졌다면, 아주 작은 목표라도 성취해 내는 경험을 쌓기를 권한다 (...) 의미 있는 성취를 하는 데에 시간을 써보라 (...)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 중에, 내가 가진 것 또는 감사 포인트를 찾아보자 (...) 회복 기간을 너무 오래 갖는 것도 좋지 않다. 퇴사 후에 공백기를 맞기 때문에, 한 달 정도를 푹 쉬면서 새로운 경험, 새로운 학습, 새로운 만남들에 도전해 보라고 말한 것이다. 한 달 정도 뒤에는 재취업을 준비하기를 바란다. 참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분명히 이 과정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을 바꿈으로써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직 바이블>, 이준희 - 밀리의 서재
실제로 내가 번아웃이 오고 나서 처음 했던 게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 집엔 많진 않지만 가끔 한국에서 사 왔던 한국 책들이 몇 권 있었고 그중에 위로/힐링해주는 에세이식 책들로 시작했었다. 의도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잠시 지우기도 했었고, 의미 없는 단순 게임을 다운로드하여서 하다가 너무 빠진다 싶을 땐 과감히 지우기도 했었다. 운동은 원래 남편이랑 항상 헬스를 꾸준히 해왔었는데, 거기에 추가해 집에서 놀고 있던 실내 자전거를 조금씩 타보려고 하고, 데이트도 더 자주 나가보고, 시엄마도 2주 동안 놀러 오시면서 셋이서 이곳저곳 근교도 돌아다니고, 한국도 혼자 가족 친구들 보러 2주 다녀왔다. 또 작은 성취를 하고 싶어서 집에 미뤄뒀던 작은 홈 프로젝트들을 사부작 사부작 해보고 노트북을 실수로 한국에 두고 오는 바람에 잠깐 멈췄지만 앱 개발도 디자인까진 완성시켜봤다. 그리고 일지에 가까운 팩트 베이스 일기는 원래 매일 써왔는데 언니의 조언들 듣고 감사 일기도 얼마 전부턴 써보기 시작했다. 책에선 한 달 정도만 쉬로 재취업 준비하랬지만 나는 메디컬 리브가 된덕에 한 달 반정도 푹 쉬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했던 거 같다. 12주라는 길고도 제한된 시간이 있어서 얼른 회복하고 싶고 얼른 나아진 거 같다며 성급하게 이직 준비 시작했다가 오히려 더 요동치는 마음에 편하게 쉬지만은 않았던 2 달이지만 느리게 천천히 조금씩 분명히 나아졌고, 중간에 너무 두려워서 그냥 직장인이라는 걸 다 때려치우고 내 사업을 해볼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한 회사 인터뷰를 다 끝낸 시점에 마음은 참 편안하고 결과가 기대되며 이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는 걸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까지 든다.
메디컬 리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정도로도 메디컬리브가 된다고?라고 생각도 들었고 어느 날은 너무 두근거리는 마음에 불안한 감정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었고, 브런치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불안함을 글로 쓰면서 해소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것도 있었다.
책을 읽은 것도 너무너무 간절히 괜찮아지고 싶어서 어쩌면 절박한 마음으로 힐링되는 글귀들과 책을 찾았던 거 같다. 두 달 남짓한 기간을 되돌아보면 왜 나는 마음 편히 그냥 푹 쉬면서 회복을 못했을까 그냥 쉬는 게 왜 그렇게 어려웠나 싶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정말 많이 힘들었나 보다. 또 그렇게 내 방식대로 간절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괜찮아진 거겠지 싶다.
며칠 전 끝낸 책 중엔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읽고 싶어서 읽은 책이 한 권 있다. <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이라는 책인데 거기에 이런 글이 있었다.
"그런데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글쓰기다. 글로 적는다는 것은 모호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종이 위에 문자로 옮기는 행위다. 종이에 적힌 것은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므로 객관적인 관찰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머릿속에서 어지럽고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클어진 것을 종이 위에 문자 형태로 고정시켜 놓는 것은 모호하고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이나 감정을 구체적으로 실체화시키는 일이다."
<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 강경희 - 밀리의 서재
브런치 글은 내가 매일 쓰려고 하지도 않았고 글을 쓰고 나서 계속 고치지도 않고 거의 있는 그래도 머릿속에서 흘러가는 대로 쓴 글들이다. 치유를 위한 글이었고 그랬기에 너무 다듬기보다 드는 생각 그대로 나의 상태를 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한 글들이었기에 어지럽고 복잡한 내 생각들을 쏟아붓고 내 머리가 조금은 가벼워진 게 아닐까 싶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메디컬 리브 직전 거의 한 달인지 두 달 가까이 멜라토닌 없인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최근엔 인터뷰 전날 긴장했을 때를 제외하곤 언제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멜라토닌 없이 잘 수 있었던 거 같다.
처음 상담사와 상담을 했을 때 내가 팀을 못 바꾼다는 게 확정이 되니 끝없는 터널 끝에 빛이 사라진 기분이라고 말했었는데 이젠 빛뿐만 아니라 그 터널 자체를 거의 다 나온 거 같다는 생각까지 드니 참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