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그리고 바로 사직서 제출!

번아웃 후 휴식 - 99일 차; 복직 9일 차

by Nana

휴직 기간이 끝날 때쯤 복직을 하지 않고 퇴직을 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냥 휴직이 아니라 유급휴직이라 회사에서 월급을 주는 게 아니고 베네핏 컴패니에서 월급을 주던 거라 거기엔 이틀 전에 확답을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메일을 했는데 답장이 없어서 괜히 혼란스럽다가 일단은 회사 복지 담당자에게 언질을 줬다.


하필 복직하는 주가 땡스기빙이었고 그래서 그 주는 3일만 일해도 일주일치 월급이 나오기도 하고 복지 담당자한테 안내문을 받아보니 퇴직하는 데에도 절차가 있어서 바로 당일 퇴직은 안되는 거 같았다. 오히려 잘됐다 싶어서 그럼 일단 돌아와서 얘기하면서 퇴직일은 정하자고 짧게 슬랙 메시지를 하고 지난주 월요일 복직을 했다.


안내문을 읽고 회사 캘린더도 보다 보니 복직 바로 다음 주가 또 분기 보너스가 나오는 날이라 또 고민이 되었다. 분기가 끝나고 3개월 뒤에야 보너스가 지급이 되는데 그래서 이번에 나오는 보너스는 내가 회사 다니면서 가장 힘들게 일했던 마지막 분기였기에 받을 수 있다면 보너스까지 야무지게 챙겨 받고 나오고 싶었다. (우리 회사는 개인 퍼포먼스랑 상관없이 회사가 얼마나 잘 됐느냐에 따라 보너스 지급이 되는데 내가 입사하고 첫 2-3년 내리 회사 전체 실적이 좋지 않아 보너스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우선 인사과 담당자랑 먼저 미팅을 잡아서 얘기하는데 이름이 낯설다 싶었는데 역시나 회사에 들어온 지 5개월 밖에 안된 사람이었다. 사실 퇴직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후 만나는 인사담당자라 분위기가 쫌 차갑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세상 스위트한 사람이었다 (사실 우리 회사 사람들 대부분이ㅎㅎ) 담당자는 뭐 퇴사 이유는 개인적인 거니 묻지도 않았고, 퇴사일정이랑 보너스 얘기도 물어보니 퇴사 일정은 전적으로 내 선택권이고 보너스는 자기가 확실하게 아는 게 아니라 다른 팀에 물어보고 오늘 내나 늦어도 내일 아침까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바로 그다음에 내 매니저랑 미팅이었는데 참 전 팀부 터 지금 팀까지 같이 일해온 시간이 3.5년이 훌쩍 넘어가고 누구보다 가장 가깝게 일했던 사람인데 뭐 떠나기로 결정했으니 그럼 넘겨받을 일 그런 것만 얘기하잔다. 후다닥 10분쯤 얘기했으려나, 나는 아직 보너스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던 상태이기도 했고 어쨌든 내가 3개월 전 갑자기 휴직했고 그래서 복직 한 오늘도 어떻게 딱 월말이라 바쁘니까 일주일이건 이 주일이건 도와주면서 혹시 트랜스퍼 안된 자료나 그런 거 있으면 해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매니저는 자긴 내가 오늘이 바로 마지막 날인 줄 알았다면서 월말일은 도와줄 필요 없다며 이번 주 내 언제든지 마지막이어도 상관없단다. 오늘이 마지막이어도 되고 내가 랩탑 반납 오피스로 직접 할 생각이고 빨라야 수요일에나 갈 수 있다 하니 그럼 수요일 마지막 날로 하면 되겠다 하고 끊었다. (목금은 공휴일인데) 그리고 끊고 보니 내 자리 공고가 올라왔던 게 거슬렸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직접 얘기를 들어야겠다 싶어 다시 통화를 걸어서 물어보니 뭐 진짜로 내 자리는 보장되는 거였고 그 한자리가 더 난 건 새로운 C레벨 사람이 들어오면서 데이터 관련해서 해야 될 일이 있어서 진짜로 시니어 레벨 한 사람이 더 필요해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 네가 그렇게 오해했을 수도 있겠네 하면서도 끝까지 뭐 오해할만할 일이었다며 미안하다는 사과 따윈 없었다. 요즘은 공석이 나도 그 자리 채울 사람이 들어오는 데까지 몇 달이 걸리고 승인 나고 예산받는 게 시간이 걸린다는 걸 뻔히 아는 나로선 누가 들어도 멍멍이 소리였지만 그냥 됐다 하고 말았다 떠나는 마당에.


그리고 이제는 진짜 인사과에도 매니저에게도 의사를 전달했으니 본격적으로 개인적으로 전 팀원들이랑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팀 사람들이랑은 더 오래 일하기도 했고 재택이지만 오프라인으로도 출장 가서 몇 번 얼굴을 봐서 그런지 지금 부서 사람들보다도 더 가까운데 정말 이 사람들과의 대화가 3개월의 휴직기간보다 더 강하고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었다. 나보다 조금 경력이 더 많은 사람, 조금 덜한 사람, 직책도 조금 더 위거나 조금 더 아래인 비슷비슷한 사람들과 역시 더 친했는데 정말 하나같이 이런 일로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자기가 같이 일해본 사람들 중에 나는 가장 일을 잘하고 또 열심히 한 사람이었다며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해주었다. 막무가내 자신감이 있었던 완전 커리어 초반기와 달리 번아웃이 오며 정말 많이 힘이 빠졌던 게 사실인데 너무 큰 힘이 되었다. 그중엔 나랑 일이 많이 안 겹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조금 같이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도 다들 나를 일잘러로 보고 있었고 어느 회사를 가도 나는 잘할 거고 나를 뽑는 회사야 말로 복 받은 거라며 우쭈쭈 해주는 동료들이 너무 고마웠다. 동료들 대부분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어린아이가 있는 나보다 나이 쪼금 더 많은 동료들도 있는데 특히 그 동료들에겐 내가 내년엔 아기를 꼭 가지고 싶단 얘기를 하며 수다를 떨었는데 정말 하나 같이 나는 정말 좋은 엄마가 될 거라며 퇴직 후에도 혹시 임산 출산 육아 때문에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개인 연락처도 주고받고 꼭 연락하고 지내자는 동료들이 참 많아서 새삼 내가 동료 팀원 없이 나 혼자 + 매니저랑 두 명뿐인 팀이어서 몰랐는데 내 주변에 이렇게 좋은 동료들이 많았구나 그리고 이 사람들과 내가 좋은 관계를 쌓아왔는 걸 보면 회사생활 헛하진 않았구나 싶었다.


내가 나간다고 하니 좀 더 솔직하게 자기도 인터뷰 본 얘기 오퍼 받고 거의 나가려다가 승진+팀 이동을 제안받아서 회사에 남는 동료, 안 그래도 적극적으로 이직 준비 하려 한다는 동료, 사실은 구조조정 대상이 돼서 차라리 잘리고 퇴직금 (미국은 잘리는 경우에만 퇴직금이 있으니)이라도 챙기고 싶었다는 동료, 한 살짜리 애기와 하루에 제대로 보내는 시간이 한 시간 남짓 되어 그냥 퇴사를 결심하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그만두는 동료까지 참 우리 회사가 어쩌다가 이지경 까지 왔나 싶었다. 내가 입사를 했을 때도 그랬고 나도 그렇게 느꼈고 분명 모두가 말하는 우리 회사의 장점이 워라밸 + 사람들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야만 하는 상황을 만든 회사가 회사의 리더들이 원망스럽고 씁쓸할 뿐이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다른 동료들과 얘기를 더 했는데 특히 내 첫 매니저 (나보다 두 직책 위)도 최근에 내가 부서이동하고 싶어서 얘기하기 시작했던 임원도 다들 회사가 가는 방향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두 사람의 팀 다 내가 팀 이동을 한다면 가고 싶었던 팀/부서였는데 회사는 돈을 아낀다고 그 부서에서 사람이 나가도 충원해주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이동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 다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며 내가 이직 준비를 하면서 혹시나 자기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회사라면 적극적으로 추천서를 써주던 사람 소개를 시켜주던 하겠다고 했다. 진짜 이런 사람들이 내 매니저였다면 지금의 회사라도 꽤나 괜찮지 않았을까 싶지만 결정은 났고 이젠 진짜 이번 주 금요일이면 보너스 받고 퇴사다!


3개월의 휴직 시간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또 의욕적으로 어떻게든 복직 전에 이직 자리를 찾을 생각에 불을 태우고 있었고 또 그로 인해 많은 업 앤 다운을 겪으며 느리지만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마지막 2주의 회사에서의 시간이 나를 가장 강력하게 회복시켜주고 위로해주었다.


아직도 나는 정확히 어떤 회사로 어느 부서로 가고 싶은지 확신이 없다.

확실한 건 여기서 더 이상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였고, 다음 주면 나는 따뜻한 남편의 나라에서 남편의 가족들과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내며 푹 쉴 거고 돌아와서 새 출발 할 것이란 거다.


부디 곧 오는 2026년에는 마음 편안한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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