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후 휴식 - 154일 차; 퇴사 49일 차
며칠 전 휴가 다녀와서 처음 본 인터뷰에 낙방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이력서를 여러 군데 넣어보기 시작했다.
전 같으면 물론 좋은 일을 앞두고 금방 들뜨고 설렜다가도 결과가 생각한 것과 달라도 타격이 없었던 거 같은데 요즘은 이렇게 실망스러운 결과를 들으면 기분이 다운되곤 한다. (그게 보통인 건가?)
탄력 받아 떨어진 그날부터 3일 만에 12군데에 이력서를 넣었다.
다양한 회사 사이즈, 회사 종류, 직책으로 넣어봤다. 많이 넣은 만큼 또 거절의 이메일도 많이 받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까지는 실망감은 들어도 다행히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는 거 같다.
지금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휴직계를 썼었지만 어쨌든 공식적인 퇴사는 12월이었고 아직 1월이다. 그래서 이력서상 공백기가 아직 거의 없다시피 하고, 전 회사에서 나보다 먼저 퇴사한 비슷한 혹은 더 높은 직책의 동료들 중에 퇴사하고 4-8개월가량은 쉬면서 가족들이랑 시간도 더 보내고 천천히 더 나은 회사 (꼭 더 큰 회사가 아니더라도)로 이직하는 걸 봐왔기에 나도 시간을 가지고 결국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실업급여를 신청해 놨고 아직 결과가 나오려면 한 달은 더 남아서 이게 승인만 나면 어찌 됐든 구직을 하고 있는 이 시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나올 급여가 있다. 이건 아직 승인이 난 게 아니라 없는 셈 치고 혹시 나오면 보너스/혹은 회사에서 번아웃이 올 정도로 고생한 나를 위한 위로금이라고 생각해야겠지만 그래도 사람 심리가 혹. 시 모르니라는 기대감이 있는 거 같다.
마지막 이유는 아기를 가질 생각을 하고 있어서다. 임신과 출산이 어떨지 전혀 감이 안 와서 임신준비, 임신과 출산에 대한 책들도 읽어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임신 초기 12주까지 보통 입덧도 더 심하고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에 몸이 적응하느라 힘이 들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쩌면 아직 일을 안 하고 있는 지금이 내 몸이 가장 스트레스도 덜한 상태라 아기도 잘 생길지도 모르고 생겨도 임신 초기에 일을 안 하면서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올해 가장 큰 목표가 이직과 임신이라는 어쩌면 온전히 내 컨트롤 하에 있지 않는 큰 목표들이라 과연 이게 언제 어떻게 이루어 질지 모르는 거지만 아직은 1월, 음력설도 지나지 않은 연초라는 걸 되뇌며 스트레스받지 않고 하나씩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고자 한다. 이렇게 조금씩 준비하다 보면 이직이 먼저이던 임신이 먼저이던 하나씩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임신 출산 책을 다 읽고 지금 또 새로운 책을 시작했는데 소름 끼치도록 내가 딱 올해부터 시도한 것들이 책에 그대로 있어서 신기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지금까지 읽은 내용에 따르면:
1.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이라도 그게 꾸준히 쌓이면서 처음 시작 할 때는 상상도 못 한 결과들을 이끌어 낸다
- 실제로 나는 어렸을 때 일기 쓰는 걸 너무너무너무 싫어했지만 남편을 만나고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해 그걸 잊고 싶지 않아 한 줄씩 쓰기 시작한 일기는 이제 7년 동안 매일 빠짐없이 기록하는 습관으로 바뀌었다. 내 일기는 사실 감정을 담기보단 그날 했던 일을 기록하는 일지에 가까운데 그렇기 때문에 언제 뭐를 했는지 정확히 적혀있어서 뭔가 찾아볼 때 검색하고 찾기가 쉽다.
2. 습관은 복리로 작용한다
- 공감하는 게 운동하는 걸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6-7년 동안 일주일에 적어도 3번에서 6번까지 꾸준하게 운동하는 습관이 들여졌다. 사실 인바디 결과만 보면 아직 내 몸이 그렇게까지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6-7년 전의 나와 지금을 비교해도 아직 까지는 나이 먹은 게 느껴진다던가 몸이 약해지는 게 느껴지지 않는 건 확실하다. 오히려 몸이 더더 좋아지면 좋아질까
3.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체성 중심의 습관을 세워야 한다.
- 이 말에 너무나도 공감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때로는 내가 할 수 있을만한 일에 시도조차 안 하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더 꾸준하게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걸 깨닫게 되면 내가 원하는 사람상(?)으로 될 수 있게 나 자신조차 (좋은 방향으로) 속여서 내가 원하는 모습을 끌어낼 수 있게 되는 거 같다. 예를 들어 나는 내 손글씨를 그리 좋아하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 다이어리를 사면 너무 소중하다고 예쁘게 쓰고 싶어서 아끼다가 한 번도 몇 장 이상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일할 때도 그렇고 나는 메모를 하는 것도 그렇고 폰이나 컴퓨터에 하는 걸 좋아하는데 (검색하기 쉽고 내 손글씨가 아니라 더 깔끔한 느낌이라) 그런데 올해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예쁜 플래너를 갖고 싶다고 해서 선물 받고 지금 약 2주째 너무 잘 쓰고 있다. 어쩌면 계속 일에 파묻혀 있었으면 이런 습관을 만들 생각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이 쉬는 시간을 기회 삼아 플래너를 꾸준히 쓰는 습관을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4. 자신의 어떤 모습에 자부심을 가질수록 그와 관련된 습관들을 유지하고 싶어진다.
- 나는 이 문장에 너무 공감한다. 어려서부터 쉽게 만족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게 좋은 쪽으로 작용해 왔다. 작은 성취에도 나는 크게 기뻐하고 더 나아갈 힘을 얻어서 이게 원동력이 되어 계속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었다. 물론 지금 번아웃이 오고 나서 퇴사까지 하고 나선 커리어 적으로는 잠시 주춤하지만 본능적으로인 건지 휴직한 직후부터 계속 일상 속 작은 성취를 찾고 그걸 통해 더 나아갈 힘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이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나는 글을 잘 못쓴다고 생각해 왔고 특히나 꾸준히 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그래도 지금 며칠에 한 번이 더 몇 주에 한 번이던 꾸준하게 여기에 나의 상태를 나의 회복 여정을 기록하며 글을 못쓰는, 꾸준한 걸 하지 못하는 나를 바꿨다는 성취감을 느끼며 또 글을 더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고 있다.
5. 우리가 열망하는 것은 습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가져올 변화다.
- 진짜 맞는 말이다. 이건 내가 학생 때 깨닫지 못했던 점인데 습관이나 루틴을 그저 지루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습관 그 자체가 아니라 습관을 통해 내가 얻고 싶은 결과를 얻는 것, 그 변화 자체가 중요한 거였고 그 변화를 열망해 왔고, 그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습관이라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6. 의식적으로 행동 변화 과정을 시작해야 하고 의식하지 않으면 변할 수 없다.
- 작가의 아내는 나와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 집을 나서기 전 "열쇠 챙겼고, 지갑 챙겼고, 안경 챙겼고, 남편도 챙겼고"라고 말로 한다고 했는데 나도 혼잣말은 안 하지만 남편이랑 같이 있으면서 가끔 그렇게 입 밖으로 내가 생각하는 체크리스트를 소리 내어 말할 때가 있는데 이게 알고 보니 실제로 효과가 있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좀 더 선명하게 생각을 하고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7. 해야 할 일 목록을 작성하고 이를 기억하고 있기만 해도 유용하다.
- 이게 바로 내가 지금 플래너를 쓰는 제일 큰 목적이다. 내 플래너는 월별 페이지와 주간 페이지가 있는데 월간에는 간단하게 스케줄이나 생일, 특별한 날 자체를 기록하는 거라면 주간에는 지금 올해 내가 이루고 싶던 소소한 하루 루틴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매일매일 체크하고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너무너무 효과가 있다. 정말 소소한 것들인데도 이렇게 적어 놓는 것만으로도 잊지 않게 해 주고 실천하는데 훨씬 효과가 있다.
8. 습관에 시간과 장소를 부여하고 제시해서 반복하다 보면 적시에 적절한 일을 하게 된다 + 습관을 연결해서 쌓아가자
- 지금 내가 만든 루틴 중엔 6-7개 중에 3-4개가 이어지는 편이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침대 정리를 하고 바로 세수를 한다. 그리고 거실로 가서 유튜브로 스트레칭 영상을 보며 10분 동안 스트레칭을 하고 공복 유산소 실내 자전거(거실에 있음)를 바로 30분 동안 타고 샤워를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그렇게 샤워 후에 바로 마스크팩을 한다. 공식 루틴 체크리스트엔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요 며칠은 스트레칭 영상 후에 복근 영상도 10분 연달아서 하고, 샤워 후엔 괄사 마사지도 하고 있다. 하나하나를 봤을 땐 뭔가 거창하고 하나만 해도 잘했다고 생각했던 일들인데 이렇게 이어 놓고 다니 오히려 더 지키기도 쉬웠다.
9. 어떤 습관을 삶의 큰 부분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와 관련된 신호를 자주 인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라 - 행동은 사람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 간의 함수 관계다.
- 이것도 너무 맞는 말인 게, 의식하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눈에 보이는 환경에 우리의 행동들이 영향을 받지만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그 환경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도 있으며 특히 개인적인 공간인 집에서는 그걸 실천하기가 더 쉬워진다. 학생 때는 내가 물을 얼마나 자주 마셨는지 충분히 마시긴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물병을 방 옮겨 다닐 때마다 거의 들고 다니며 항상 물을 채워 놓아서 눈에 띄니 목이 마를 때마다 수시로 물을 마시고 정확히 헤아려 본 적은 없지만 확실하게 하루에 2리터 이상 마신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플래너 같은 경우에도 사실 나는 내가 이걸 꾸준히 쓸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일기를 쓰며 뭔가 꾸준히 기록하는걸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체험했고 플래너라는 실체가 오피스방 책상이던 거실의 탁상위건 눈에 띄게 두고 있으니 하루에 최소 한 번은 나도 모르게 보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내가 체크해야 할 루틴이 있다는 걸 잊지 않게 해 주었다. 또 지난 몇 년간 꾸준하게 해온 일기뿐 아니라 듀오링고와 링크인 게임을 하면서 나의 새로운 정체성 -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하기 - 을 강화 하는 기회들이 있었고 이게 좋아서 또 플래너 작성을 더 꾸준하게 하려는 의지가 생겼다.
10. 신호 > 열망 > 반응 > 보상
- 이게 사실 이 책의 핵심 내용인데 신호는 보상을 알아차리는 거고 열망은 보상을 원하는 일이며 (동기), 반응은 보상을 얻어내는 일 즉 습관 같은 행동을 하는 거고 보상은 그에 따른 내가 원한 결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