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 엔진과 왕복 엔진 사이에 태어난 혼종
영국, 독일과는 다르게 미국과 소련에서는 제트 엔진 기술이 등장한 이후 기존의 왕복 엔진 항공기에 제트 엔진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영국은 제트 엔진 기술이 뛰어났던 탓인지 왕복 엔진과 제트 엔진을 결합한 시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별개로 이탈리아에서도 완벽하지 않지만 제트 엔진 비슷한 항공기가 개발된 적이 있다.
당시 제트 엔진은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연비가 좋지 못했다. 이는 장거리 폭격기를 운용하며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일본을 공격하는 미국에게는 큰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트 엔진의 빠른 속도는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제트 엔진과 왕복 엔진을 동시에 장착한 항공기가 구상되었다.
한편, 미 해군에서도 제트 엔진의 약한 가속력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혼합 동력 항공기를 고려하고 있었다. 함재기의 경우 제한된 활주로에서 이륙하기 위해 가속력이 좋아야 했는데 당시 제트 엔진은 가속력이 부족했다. 뿐만 아니라 착함에 실패했을 경우 빠르게 추력을 올려 다시 이륙해야 하는데 당시 제트 엔진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1944년 초, 미 육군은 장거리 호위기를 찾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일본과 태평양에서 전쟁 중이었는데, 이때 일본 본토를 안전하게 폭격하기 위해서는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호위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제트 엔진은 연비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장거리 비행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제트 엔진의 빠른 속도와 왕복엔진의 우수한 연비를 동시에 취하고자 이 둘을 같이 탑재하는 혼합 동력 항공기가 구상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육군 항공대뿐만 아니라 미 해군에서도 관심을 보여 Curtiss XF15C, Ryan FR-1과 같이 다양한 항공기가 개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개발된 XP-81은 1945년 1월 11일에 처녀비행을 실시한다. 원래 장착되기로 한 미국 최초의 터보프롭 엔진인 General Electric의 T31(TG-100)의 개발이 일정보다 늦어지면서 P-51에 장착되었던 영국 Rolls-Royce의 Merlin 엔진이 대신 장착되었다.
Merlin 엔진과 General Electric J33 엔진을 장착한 XP-81은 나쁘지 않은 성능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J33 엔진은 지난 글에서 다룬 P-80에 장착된 엔진이다.) 하지만 1944년 7월, 괌과 사이판이 함락되어 일본 본토가 미군 폭격기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면서 장거리 호위기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이후 1945년 12월 21일, TG-31 엔진 개발이 완료되어 TG-31을 장착한 채 비행을 실시했지만 엔진은 충분한 추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혼합 동력 항공기가 연구 개발되는 사이에 제트 엔진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면서 굳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엔진을 탑재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여기에 속도는 크게 늘어나지 않지만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엔진을 탑재해 정비 요소만 늘어나는 등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기에 혼합 동력 항공기는 도태되었고 미국은 본격적으로 제트 전투기 시대에 들어갔다.
소련은 활발한 첩보 활동을 통해 연합국 중에서 가장 먼저 독일의 제트 전투기 개발 소식을 확보한 나라였다. 그래서 독일에 맞서 제트 전투기 개발에 착수하지만 부족한 기술력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한 제트 전투기를 만들 수 없었다. 그리고 미국과 다르게 소련은 영국으로부터 제트 엔진 기술을 넘겨받을 수도 없었다.
물론 소련에서도 독일과 비슷한 시기에 제트 엔진 연구가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터보팬 엔진이라는 개념을 구상한 것도 소련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과의 전쟁이 터지면서 새로운 엔진보다는 기존 왕복 엔진 개발에 집중하게 되었다.
결국 제트 엔진에 비해 기술적으로 성숙하고 신뢰도도 높은 왕복 엔진을 가지고 제트 엔진에 준하는 성능을 구현하고자 VRDK 엔진을 개발해냈다. VRDK 엔진은 왕복 엔진으로 임펠러를 돌리고 임펠러에서 압축된 공기는 연소실로 들어가 추력을 만든다.
이후 VRDK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I-250은 1945년 3월 3일 VRDK 엔진을 가동하지 않은 채 처녀비행을 실시했고 7월 5일 세 번째 비행에서 처음으로 VRDK 엔진을 점화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련의 시험 비행을 거치면서 VRDK 엔진은 레시프로 항공기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게 입증되었다. 이후 I-250이 어느 정도 괜찮은 성능을 보여주자 비슷한 시기에 Sukhoi에서 제작하고 있던 Su-5는 I-250에 밀려 개발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VRDK 엔진은 딱 거기까지 였다. 속도를 높일 수 있었지만 시간당 400kg의 연료가 필요할 정도로 연비가 극악이었다. 결국 연료를 너무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엔진 가동은 10분으로 제한되었고, 이렇게 제한을 두어도 사용하고 나면 항속거리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대부분의 비행은 왕복엔진만 사용한 채 이뤄졌고 후미 연소실은 비행기에서 부피만 차지하는 짐으로 전락해버렸다. 여기에 VRDK 엔진은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해 생산성은 떨어지고 단가는 높다는 문제까지 안고 있었다.
한편, 1945년 전쟁이 끝나면서 소련에서도 독일에서 가져온 제트 엔진에 대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Mig-9이나 Yak-15 같은 순수한 제트 전투기들이 등장했다. 결정적으로, 영국이 Nene 엔진을 제공해주면서 제트 엔진 기술은 급격하게 진보했고 문제 많은 VRDK 엔진은 1948년에 전면 취소되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과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과 소련에서도 제트 전투기가 연구되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제트 전투기들이 등장했다. 그중에는 이탈리아도 있었다. 다만, 완벽한 제트 엔진이 아니라 러시아와 비슷하게 왕복엔진을 통해 공기를 압축하고 압축 공기에 연료를 분사해 추가적인 추력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앞에 나온 I-250나 Su-5와 동일하게 제트 엔진을 가동하지 않고 왕복엔진만으로도 비행이 가능했다. 이는 대부분의 추력이 왕복 엔진에서 나왔다는 말이기에 CC.2를 제트 항공기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한편 CC.2는 1940년 8월 27일에 처녀비행을 실시되었는데 CC.2의 성능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He 178의 존재를 몰랐던 당시에는 제트 엔진의 원리가 적용된 최초의 항공기였기 때문에 CC.2의 처녀비행은 항공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게다가 소련 중앙 유체역학연구소(TsAGI)에서 CC.2를 보고 유사한 설계를 검토한 걸로 보아 초기 제트 항공기 설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거라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성능은 실망적이었다. 엔진은 예상보다 낮은 추력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일부 왕복엔진 항공기보다 속도가 느렸다. 여기에 조종석으로 가해지는 상당한 엔진 열기 때문에 조종사는 캐노피를 열고 비행을 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성능과는 별개로 독일과 영국이 비밀리에 제트 엔진을 개발하고 있었던 것에 반해 이탈리아는 자신들의 항공 산업이 이룩한 성과들을 공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은 CC.2를 만들고 자신들이 세계 최초의 제트 전투기를 만들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독일에서는 비밀리에 He 178의 처녀비행이 실시된 후였다.
물론 CC.2는 어디까지나 제트 엔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시험하기 위한 기술 실증기였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꽤나 그럴듯한 제트 전투기가 구상되었지만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연합군의 이탈리아 점령으로 사업은 흐지부지 되었다.
혼합 동력 항공기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과거 전기 모터만으로는 충분한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없어 모터는 보조적인 수단 또는 특정한 주행 환경에서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한 테슬라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는 전기 모터만으로도 충분한 속도와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페라리와 같은 고급 스포츠카 제작사에서도 전기 자동차를 출시할 정도이다.
배경 사진 출처 : White Eagle Aerospace
Wikipedia, Consolidated Vultee XP-81
Wikipedia, General Electric T31
Plane Encyclopedia, Consolidated Vultee XP-81
Wikipedia, Mikoyan-Gurevich I-250
Wikipedia, Sukhoi Su-5
Wikipedia, Caproni Campini N.1
쿵디담 다람쥐우리, 미그 I-250
쿵디담 다람쥐우리, Caproni Campini N.1
쿵디담 다람쥐우리, 커티스 XF15C
LIEBELJD, 003 Turbofan eng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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