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말고 비행기도 잘 만드는 나라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던 음주운전자로부터 박지윤 아나운서와 그녀의 가족들을 살려 화제가 된 자동차가 있다. 바로 VOLVO(볼보)이다. 물론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중국 회사가 되었다며 말이 많지만 삼점식 안전벨트부터 선루프 등 혁신적이며 운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회사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스웨덴에는 볼보 말고도 자동차 회사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Saab인데, Saab는 원래 비행기를 만드는 회사였다. Saab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방산 업계에 위기가 찾아올 것을 의식해 항공기 제작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했을 뿐이었다.
1815년부터 영구 중립을 선언한 스웨덴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부터 전투기를 도입하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자기 나라 지키기도 바빴던 전시 상황에서 미국이 아닌 이상 다른 나라에 군용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나라도 없었다.
여기에 중립국이었던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등이 전쟁 초반에 속수무책으로 독일군에게 짓밟히는 것을 눈 앞에서 본 스웨덴은 진정한 중립국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스웨덴 스스로도 자급자족이 어려운 나라였기에 독일과 연합국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결국 스웨덴은 1937년 설립한 Saab(Svenska Aeroplan AB : 직역하자면 스웨덴 항공 유한회사)를 통해 독자적인 항공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덕분에 스웨덴은 오늘날에 와서 미국, 러시아, 프랑스와 함께 독자적으로 전투기를 개발하고 제작하여 자국의 하늘을 지키는 몇 안 되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전 세계에서 왕복엔진 항공기를 제트기로 개량해 성공한 단 두 기종 중 하나인 J21R이 있다. Saab는 1943년 미국, 독일 항공기를 생산하면서 축적해 온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트윈 붐 동채를 가진 전투기 J21을 선보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제트 엔진이 등장하자 바로 이를 적용한 제트 전투기를 내놓은 것이다.
여기서 J21R의 기반이 되는 J21은 독일의 Daimler-Benz DB 605B 엔진을 장착하고 1943년 7월 30일에 처녀비행을 실시한 나름 최신형 기체였다. 하지만 전후 제트 엔진이라는 새로운 동력원이 차세대 전투기 개발의 필수 요소가 되면서 Saab는 J21에 제트 엔진을 장착하는 방안을 구상한다.
Saab는 처음부터 어떤 엔진을 사용할지 정하지 않은 채 연구에 들어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으로부터 Goblin2 엔진을 면허 생산할 수 있게 되자 Goblin2 엔진을 장착하기로 한다. 여기서 J21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엔진만 왕복 엔진에서 제트 엔진으로 바뀐 건 아니다.
사진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제트 엔진의 배기열을 피하기 위해 수평 안정판이 위로 올라갔으며 제트 엔진의 낮은 연비를 감당하기 위해 날개 끝에 연료 탱크를 증설하는 등 연료 탑재량을 늘리는 개조도 이뤄졌다. 이밖에도 날개 익형과 캐노피 형상에도 변형이 가해져 전체적으로 50% 이상이 변경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J21R은 1947년 3월 10일 처녀비행에 성공하고 1950년 8월부터 배치되었다. 그러나 원래 120대의 전투기로 생산될 예정이었던 J21R은 1948년 등장한 J29 Tunnan의 등장으로 도입 대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전투기 대신 지상공격기로 임무가 변경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제트 엔진이 등장하자마자 영국으로부터 Goblin 엔진을 들여와 J21R을 성공적으로 배치했지만 처음부터 제트 엔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기체가 아니었던 만큼 성능에 제약이 있었다. 결국 Saab는 처음부터 제트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제트 전투기 개발에 착수한다.
이번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로 퍼진 후퇴익이 적극 도입되었다. 스웨덴은 독일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덕에 스위스를 거쳐 전후 독일이 연구한 후퇴익 자료를 대거 들여올 수 있었고 이후 기존의 직선익 설계안은 25도 젖혀진 후퇴익이 적용되었다.
물론 독일의 후퇴익 기술을 그대로 적용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의 후퇴익 자료를 바탕으로 Saab Safir 기체에 후퇴익을 장착한 Saab 201 항공기를 통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고 이후 1946년 1월에 최종 디자인이 정해졌다.
그러나 공학적 수렴의 결과인지 기수 전방에 공기 흡입구를 가지고 후퇴익이 적용되면서 독일이 전후 개발 중이던 P.1101과 상당히 흡사한 외형을 가지게 되었다. 이밖에도 날개를 얇게 만들기 위해 착륙장치는 모두 동체 내부로 수납되게끔 설계했다.
참고로, 미국과 소련이 독자적인 엔진 개발로 제트 전투기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에 반해 스웨덴은 영국의 de Havilland Ghost 엔진을 그대로 들여와 면허 생산함으로써 개발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후퇴익이 적용된 J29 Tunnan은 스웨덴 최초의 제트 엔진 전투기였던 J21R이 비행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48년 9월 1일에 첫 비행에 성공한다. 그리고 1951년 5월 스웨덴 공군에 인도되었다.
J29 Tunnan의 외형을 보면 짤고 통통한 동체를 가지고 있어 실제로 '날으는 술통'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민첩하며 조종성이 우수하며 1954년에는 500km 구간에서 977km/h의 속도로 세계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자랑했다.
이로서 스웨덴은 Me 262 이후 유럽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후퇴익이 적용된 제트 전투기가 되었고 스웨덴은 항공 분야의 선두 기업 중 하나로 명실공히 자리 잡게 된다.
스웨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이었지만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나라였다. 이때 북해는 독일과 영국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가 된 상황이었고, 옆 나라 핀란드는 이미 1939년 11월 소련의 침공으로 겨울 전쟁이 한창이었다.
이에 반해 스웨덴의 군사력은 중립을 지켜내기엔 부족했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무기 수입이 어려워지자 군사력을 키우고자 무기 독자 개발에 박차를 가했지만 군사력이 하루아침에 성장 할리 없었다.
결국 완벽한 중립을 지켜낼 힘이 없었던 스웨덴은 암암리에 정부의 묵인 아래 노르웨이로 독일이 병력과 무기를 실어 나를 수 있도록 철도 이용을 허락해주었다. 다행히 연합군은 서부 전선이 형성되면서 스웨덴까지 전선을 확대할 겨를이 없었기에 스웨덴의 독일 협력에 개입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때 노르웨이의 병력을 핀란드로 옮기는 길을 열어주었고 철광석을 비롯해 막대한 원자재를 수출하여 독일의 전쟁 수행을 도왔다. 그러나 스웨덴이 독일만 도운 것은 아니었다. 스웨덴은 동시에 자국 내 상선들을 통해 영국이 필요로 하는 항공기용 볼베어링 등을 수송하였고, 독일군의 신무기였던 V-2 로켓이 스웨덴 영토에 떨어졌을 때는 이를 몰래 영국 측에 넘기기도 했다.
배경사진 출처 : Hush kit
아시아경제, 스웨덴 명차 '사브'는 왜 역사 속으로 사라졌나
욱이님, [제2차 세계대전의 마이너] 스위스와 더불어 아슬아슬한 중립을 지켰던 스웨덴군
Wikipedia, SAAB 21
Wikipedia, Saab 21R
Wikipedia, J29 Tunnan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사브
네이버 무기백과사전, J35 드라켄
네이버 무기백과사전, 'JAS 39 그리펜 전투기'
쿵디담, 스웨덴 최초의 자국산 후퇴익 전투기 SAAB J29 Tunnan
* 마지막으로, 제 글은 제가 개인적으로 항공 역사를 정리하기 위한 글로써 역사적인 오류를 포함할 수 있으니 다른 분들이나 논문과 같이 신뢰성이 높은 글과 반드시 비교하면서 읽으시거나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