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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Oct 27. 2020

1947년, 후퇴익 전투기의 등장 1편

진정한 제트 전투기의 등장 : 1세대 제트 전투기

1937년에 제트 엔진이 등장한 뒤로 세계 곳곳에서 제트 전투기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기존 왕복 엔진 항공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주목할만한 성능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러던 중 1940년대 말부터 후퇴익과 제트 엔진을 조합한 완전히 새로운 전투기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소련이었다.


Mikoyan-Gurevich MiG-15 Fagot


소련은 미국 영국과 비교했을 때 뛰어난 항공 기술력을 가진 나라는 아니었다. 오히려 2차 세계대전 중 미국과 영국이 서부전선에서 막강한 공군력으로 독일 본토 깊숙이 전략 폭격을 가하고 있을 때 동부 전선의 소련 공군은 가까이에서 지상군을 지원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나름 우수한 항공기들을 만들었던 독일보다 항공 기술력이 떨어졌던 소련은 영국, 미국, 독일이 독자적인 주력 전투기를 선보일 때 미국으로부터 P-39를 공여받고 있었다. 그랬기에 미국은 소련이 제트 전투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P-39 King cobra for Red air force @Portrait of War

그렇게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을 개시하면서 미 공군이 다시 한번 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항공력을 가진 유엔군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러나 1950년 11월 1일 은색 빛이 도는 기체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P-51 1대와 F-80 1대를 격추했다.


하지만, 미국은 나라가 세워진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중공군을 무시하고 있었기에 이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특히 자신들의 우세한 화력과 유엔군이 북한의 남침 다음 날부터 장악한 제공권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MiG-15가 유엔군의 주력 전투기 F-80, F-84에 비해  160km/h 더 빠르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제공권이 흔들리면서 B-29도 원활한 폭격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미국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F-86을 한반도에 급파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MiG-15는 갑작스러운 등장과 빠른 속도로 유엔군을 당황케 했지만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소련 공군이 피격 시 미군에게 기체가 노획되는 것과 비밀리에 투입된 소련 조종사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제한적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전 중 상황이 조금이라도 불리해지면 바로 전장을 이탈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럼에도 MiG-15는 미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MiG-15는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한 용도로 설계된 전투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강력한 무장으로 소련 본토를 폭격하려 오는 미국의 전략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개발된 요격기였다. 게다가 개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미국의 F-86과 배다른 형제이기도 하다.


MiG-15 Fagot @Pinterest

공산권 1세대 전투기를 대표하는 MiG-15의 개발 역사에는 독일과 영국이 빠질 수 없다. 왜냐면 MiG-15는 독일로부터 가져온 후퇴익 자료와 영국이 건네준 제트 엔진로 탄생한 전투기이기 때문이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곧바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제트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전투기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지난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투기 개발이 의지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닌지라 항공 기술력이 부족했던 소련은 제대로 된 제트 전투기를 만드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이 구상 중이었던 후퇴익 전투기 Focke-Wulf의 Ta-183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기수 전방에 뚫린 공기 흡입구와 후퇴익이 적극적으로 적용된 Ta-183은 제트 엔진과 고속 비행에 잘 어울렸다. 그러나 후퇴익은 급기동 시 날개 끝부분부터 실속에 빠지는 단점이 있었고 이 때문에 항공기가 조종 불능에 빠질 수도 있었다.


Focke-Wulf Ta-183 Huckebein  @WordPress.com / @GoodFon.com

이는 날개가 뒤로 젖혀진 후퇴익의 태생적인 문제점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후퇴익은 날개가 뒤로 젖혀져 있어 공기가 날개 위를 반듯하게 흐르지 못하고 자꾸 옆으로 새어나간다. 이때 새어나간 공기 흐름은 날개 끝에서의 공기 흐름을 방해하며 앞서 말한 것처럼 항공기 조종면을 방해해 항공기를 조종 불능 상태에 빠트린다.


이 문제를 소련은 아주 간단하게 'Wing fence'를 설치해 해결하였다. 이처럼 윙 펜스와 35도의 후퇴각을 가진 소련의 새로운 제트 전투기는 고속 비행에 적합한 형태를 갖춰 나가고 있었다.


MiG-15 Wing fence @Cybermodeler

그러나 엔진이 문제였다. 소련은 독일의 Jumo 004 엔진과 BMW 003 엔진을 불법 복제하고 있었는데 불법 복제품이었기에 아무리 잘 만들어도 원본보다 성능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독일제 엔진 자체의 성능도 그렇게 높지 않았기에 소련은 새로운 항공기에 걸맞은 제트 엔진 개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영국이 독일과 함께 싸워준 소련과 우호 관계를 다지기 위한 명목으로 제트 엔진을 건네준다. 이때 건네준 엔진이 바로 Rolls-Royce가 만든 두 번째 제트 엔진인 Derwent 엔진과 이를 개량해 등장한 Nene 엔진이었다. (물론 영국 노동당 정권은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을 당부했지만 지켜질 리가 없었다.)


MiG-15 of U.S. Air force @Thought.co

이후 소련은 당시 가장 강력한 엔진이었던 Nene 엔진이 수중에 들어오자 곧바로 역설계 작업에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Klimove RD-45 엔진이 등장했고 여기서 한 단계 개선된 VK-1 엔진이 등장한다. 영국의 도움으로 엔진 문제까지 해결되자 1947년 12월 30일, MiG-15의 시제기인 I-310이 처녀비행에 성공하고 이후에는 우리가 아시다시피 한국전쟁에 투입되어 소련 항공기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North American F-86 Sabre


소련의 MiG-15와 함께 1세대 제트 전투기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F-86도 처음부터 전설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공군이 제시한 요구조건도 맞추지 못하는 절망적인 성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P-51을 개발해 승리에 도취된 North American도 제트 엔진이라는 새로운 동력원이 등장하자 제트 전투기 개발에 착수한다. North American은 P-51의 주익, 미익 그리고 캐노피를 그대로 활용한 기체를 제작했고 이를 해군에는 NA-134, 육군 항공대에는 NA-140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했다.


해군은 NA-134를 도입하기로 결정해 FJ-1이라는 제식 명칭이 만들어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날이 발전하는 제트 엔진 기술에 1948년 8월에 배치되기 시작한 FJ-1는 1949년 5월부터 퇴역의 길을 걷게 된다. 육군 항공대에서는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도입도 되지 못하고 거절한다.


North American NA-140 @Tripod / FJ-1 Fury @Wikipedia

결국 North American은 제트 엔진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기체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실제로 자신들이 만들었던 P-51이 스핏파이어와 동일한 엔진을 사용했음에도 차원이 다른 성능을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물론 당시 P-51에 사용되었던 익형은 당시로서는 가장 최신형 익형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North American이 후퇴익에 걸맞은 새로운 익형을 선보이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이후 North American은 전후 독일로부터 입수한 Messerschmitt P.1101과 Ta-183을 참고하여 후퇴익을 기체 설계에 적극 반영하였다. 미국이 독일로부터 가져온 후퇴익 자료를 적극 활용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테이퍼익을 적용한 FJ-1이 1946년 9월 11일에 처녀비행을 실시했는데, 1년 만에 후퇴익을 적용한 XP-86이 처녀비행에 성공한 점에서 잘 드러난다.


소련과 똑같이 동일한 항공기를 기반으로 만든 항공기여서 그런지 MiG-15와 F-86의 외형은 굉장히 흡사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MiG-15와 다른 점은 공기 흐름이 옆으로 새어 나가는 문제를 미국은 앞전 플랫(Leading edge Flap)을 사용하여 해결했다는 점이다.


Sabre's Leading edge slat @ED Forum / @Pinterest

이렇게 만들어진 F-86은 배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F-80과 F-84를 2선급 전투기로 전락시킬 만큼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었다. 1947년 10월 1일에 처녀비행에 성공한 F-86은 미 공군이 요구했던 속도보다 훨씬 빠른 1050km/h를 보여주었고 이는 동시대 항공기들에 비해 120km/h 더 빠른 속도였다.


이후 F-86은 1949년부터 미 본토에 배치되었다. 그러던 차에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났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유엔군의 항공전력이 워낙 막강하다 보니 굳이 고성능의 F-86을 투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차에 MiG-15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빠르게 발전하는 제트 엔진 기술에 냉전이라는 시대상이 맞물리면서 F-86은 빠르게 도태되었다. 성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지만 F-86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역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럼에도 F-86은 본격적인 제트 전투기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여담이지만 공군 F-86이 보여준 경이로운 성능에 미 해군에서도 F-86을 항공모함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시제기 XFJ-2를 1951년에 받는다. 그러나 한국전쟁 중이었기에 공군에서 사용할 F-86 생산이 더 우선시되었고 FJ-2는 1952년 11월에 첫 기체가 인도된 이후로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단 7대만이 생산되었다.


결국 안 그래도 저속에서의 성능이 부족하다는 점이 꾸준히 지적돼 오던 차에 함재기 명문가인 Grumman에서 기존 F9F Panther에 후퇴익을 적용한 F9F-6 Cougar를 선보였다. 결국 미 해군은 FJ-2를 지상 해군기지에서 운영하거나 미 해병대에서 운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Grumman F9F-6 Cougar @Smithsonian Institution / North American FJ-2 Fury @Scalespot.com

F-86은 우리에게도 대한민국 공군 최초 제트 전투기로서 의미가 있다. 대만에서는 금문도 사건 때 세계 최초로 공대공 미사일 사이드와인더를 사용해 중공군의 MiG-17을 격추하면서 공중전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사일 만능주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이 시기에 탄생한 항공기가 바로 그 유명한 F-4이다.


Taiwan air force F-86 with sidewinder @Pinterest

이렇게 F-86이 한국전쟁에서 보여준 활약은 기존 항공기에 후퇴익을 적용하는 시도가 일어날 만큼 이후에 등장하는 항공기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서 조우한 MiG-15는 강력한 엔진과 레이더를 탑재한 육중한 전투기만을 추구했던 미국에 경량 전투기도 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소련도 미국의 F-86을 노획해 자신들의 부족했던 항전장비 부문을 발전시켰고, 대만 금문도 전투에서 불발한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은 소련으로 넘어가 아톨 미사일이 되었다. 이처럼 F-86과 MiG-15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본격적인 제트 전투기 시대를 열었다.



참고문헌 및 출처


배경 사진 출처 : Flickr

Wikipedia, F-86

Wikipedia, MiG-15

WIkipedia, FJ-2 Fury

무기백과사전, F-86 전투기

무기백과사전, MiG-15 전투기

무기의 세계, MiG-15 파고트

동고동락, MiG-15 전투기

august님, '갑자기 다가 온 공포' 시리즈

august님, '바로 그때 등장한 대항마' 시리즈

Xwing님, 'F-5 프리덤 파이터/타이거-II' 4화

Xwing님, 'F-86 세이버' 시리즈

쿵디담님, 머스탱의 후신이자 세이버의 선조 : 노스아메리칸 FJ-1 퓨리

에일리언님, 페라도 美 海軍 戰鬪機 - FJ-2 Fury(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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