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초기 제트 전투기 (1)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MiG-9와 Yak-15 외에 소련이 개발한 초기 제트 전투기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글을 작성하고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MiG-9와 Yak-15를 따로 빼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함께 다루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930년대 중반 스페인 내전에서만 해도 소련의 공군력은 독일군보다 우세했다. 소련의 전투기 개발 사정을 몰랐던 독일군은 소련이 미국 항공기를 라이센스 받아 생산한 기종들이라고 판단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공군력 우세도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한 Messerschmitt Bf109에 밀리고 만다. 여기서 독일군은 현대전에서 복엽기가 설 자리는 더 이상 없음을 배웠으며 이후 공군력을 빠르게 증강해나갔다.
이와 반대로 소련은 1938년까지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수많은 고위 장교들과 지식인들을 유배 보내거나 숙청했다. 결국 소련은 스페인 내전을 통해 얻은 교훈들을 잊은 채 1930년대 공군 전력을 가지고 그대로 독일군과 맞서 싸우게 된다.
그 차이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이 소련으로 진격했을 때 소련과 독일의 주력 전투기의 소재를 보면 느껴진다. 독일은 1930년대 중반 최신 기술을 동원해 제작한 전금속제 항공기 Bf-109를 주력 전투기로 운영했다. 반면, 소련은 1930년대 초반에 금속 골격에 나무 판자와 천을 덧대어 만든 단엽기 I-16을 주력으로 운용하는 중이었다. I-16은 접이식 랜딩기어를 도입한 최초의 단엽기이지만 1940년대에 와서 Bf-109와 비교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구닥다리가 되어 있었다.
이후에도 소련은 독일군과 전쟁을 하면서 지상군을 지원할 수 있는 저고도 공격기 개발에만 집중하여 고성능 엔진 개발에 뒤쳐져 있었다. 이러한 점은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의 주요 전투들을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서부전선에서는 ‘영국 본토 항공전’이나 ‘드레스덴 폭격’ 등이 있지만, 동부전선에서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갑전 ‘쿠르스크 전투’나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이 주목할만한 전투였다.
게다가 대표적인 항공기용 경합금인 두랄루민의 주 원료는 알루미늄인데, 이 알루미늄을 생산할 능력조차 부족했다. 그럼에도 소련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1500개 이상의 공장이 우랄 산맥 너머의 동쪽으로 이전해 생산을 이어 나갈 수 있었으며 1941년 통과된 미국의 무기대여법의 도움이 크다.
종전 후에도 소련의 상황은 심각했다. 병사 1,500만 명과 민간이 3,500만 명이 희생되었는데 그 중 2,000만 명은 소련 국민이었다. 그 결과 1946년 소련의 산업 생산은 고작 1940년의 70퍼센트 수준이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소련은 연합국 중에서 가장 먼저 독일의 제트 전투기 개발 소식을 입수하였고 제트 엔진 개발을 시작했다. 그러나 기술력이 부족해 바로 제트 엔진을 만들어내진 못하고 VRDK와 같은 혼합 동력 항공기를 제작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혼합 동력 항공기의 성능은 실망스러웠고 오히려 순수 제트 전투기의 필요성만을 부각시킬 뿐이었다.
이렇게 소련은 영국이나 미국보다 열역한 환경 속에서 제트 전투기 개발에 들어갔다. 시작은 소련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독일이 남긴 Me262 기체를 포함해 Jumo 004, BMW003 엔진 등을 노획해왔다. 이후 Jumo 004 엔진은 Klimov RD-10이라는 이름으로, BMW 003 엔진은 Klimov RD-20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아무리 원본을 그대로 만든다고 해도 원본 자체에 문제가 많았으며 소련 역시 내열합금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해 여러모로 원본보다 성능이 부족했다. 오히려 독일 기술자들이 밟은 실수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독일제 엔진을 역설계해 만들어진 RD-10과 RD-20은 소련의 제트 전투기 시대를 여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배경사진 출처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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