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정우 Mar 16. 2021

1950년대 극동 1편

중국편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0년대부터 활발한 기술 교류가 이루어졌던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아시아의 독자적인 제트 전투기 개발은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글에서 다룰 한국, 중국, 대만, 인도 그리고 파키스탄 5개국가들은 모두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처 1940년대 말이 돼서야 제대로 된 나라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였는데, 과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국력을 가진 일본은 두 발의 원자폭탄과 함께 패전국이 되어 미국의 감시 아래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워가는 중이었다.


중국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오늘날 J-20이나 FC-31 같은 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선보이며 무시할 수 없는 공군력을 자랑하는 중국은 믿기 어렵겠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적 우세만 가질 뿐 질적으로는 북한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보유한 전투기 수는 적더라도 일본과 대만이 질적으로 중국보다 더 강한 공군력을 가졌다고 평가되었다. 그리고 그런 중국의 전투기 개발 역사는 1950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을 계기로 시작된다.


FC-31 @Forbes  & J-20 @Aisa times

1949년 10월 1일, 장제스와 오랜 내전 끝에 마오쩌둥은 중국 본토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음을 선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1월 27일부터 북한을 도와 한국전쟁에 개입했다. 중국은 이를 계기로 소련으로부터 MiG-15를 공급 받을 수 있었고, 소련은 중국에게 기체 뿐만 아니라 관련 기술자들까지 제공해주었다. 이처럼 건국 초기에만 해도 소련은 중국에게 우호적이었으며 중국에 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단순히 전투기를 제공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국으로 데려와 교육시키고 중국에 풍동 실험 시설을 지어주는 등 항공기 개발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덕분에 중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항공기를 면허 생산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중국 군용항공산업의 시초인 선양비행기연구소가 세워지게 된다.


이후 중국은 소련에서 들여온 MiG-15UTI 훈련기를 J-2(단좌), JJ-2(복좌)라는 이름으로 면허 생산했다. 그러나 이 둘은 어디까지나 훈련기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전투기는 아니였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중국에서 제작된 첫 제트 전투기는 MiG-17F의 면허 생산형인 J-5이라 할 수 있다. J-5는 1956년 7월 6일 첫 비행에 성공하고 1957년부터 인민해방공군에 인도되었으며 J-2와 마찬가지로 단좌는 J-5, 복좌는 JJ-5로 불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58년에는 소련의 첫 초음속 전투기 MiG-19의 면허생산권을 획득해 ‘J-6’라는 이름으로 양산에 들어갔다.


순서대로 JJ-2, J-5, J-6이다. @JetPhotos

한편,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폭격기도 들여왔다. 중국은 1952년부터 250대 가량의 Ilyushin Il-28 폭격기를 들여왔으며 1958년에는 Tu-16 폭격기 면허 생산권을 획득해 노후화된 Il-28을 대체하는 등 공군 전력을 키워나가는 중이었다. 심지어 적은 수량이지만 과거 소련이 미국의 B-29를 무단 복제해 만든 Tu-4도 중국으로 들어왔다. (참고로, 이때 들어온 H-6는 꾸준한 개량을 거처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H-5 @Pinterest  &  H-6 @Airliners.net

그렇다고 중국이 독자적인 개발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중국은 소련 전투기를 면허 생산하면서 내부적으로 ‘흥촨 503’이라는 계획을 통해 인민해방군에서 운용할 독자적인 고등 제트 훈련기를 개발하고자 했다. 소련으로부터 비교적 빠르게 최신예 기체를 받아올 수 있었던 중국이 굳이 항공기 독자 개발에 착수한 이유는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뒤부터 시작된 중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차이 때문이었다.


건국 전부터 스탈린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은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과 함께 소련을 수정주의자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한국전쟁에서 소련이 보여준 소극적인 자세와 자신들에게 다른 동맹국들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무기를 공급한 소련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반대로 소련은 중국을 교조주의자라 하며 중국의 팽창식 공산주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소련은 중국을 자신과 동등한 위치의 공산국가로 생각하기보단 위성국가들 중 하나로 생각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련은 조금씩 중국에 대한 기술 지원을 줄여나가기 시작했으며 이에 중국은 독자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JJ-1은 중국이 보유하고 있던 MiG-15UTI를 참고하며 설계에 들어갔다. 이후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JJ-1의 외형은 테이퍼익을 채택했다는 점만 제외하면 소련으로부터 받아온 MiG-15와 비슷했으나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한 것은 아니였다. JJ-1의 공기흡입구는 소련 전투기들과 다르게 기수 대신 동체 양측에 위치했으며 날개는 후퇴익 대신 날개 앞전에 약간의 후퇴각이 적용된 테이퍼익이 채용되었다. 그러나 엔진은 소련의 Klimov RD-500 엔진을 복제한 PF-1A가 탑재될 예정이었고 여기서 RD-500 엔진은 소련이 영국의 Rolls-Royce Derwent 엔진을 불법 복제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영국의 제트 엔진 기술이 소련을 거쳐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Shenyang JJ-1의 개발은 당에서 ‘역설계를 통한 단좌 전투기의 국산화’로 목표를 낮추면서 취소되고 말았다. 당시 당에서 목표를 낮추고 독자적인 항공기 개발을 취소하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체의 완성도와 별개로 중국 인민해방공군이 운용하고 있던 기체 대부분이 왕복 엔진 항공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트 훈련기가 개발된다 한들 조종사들은 제트 훈련기로 교육을 받더라도 실전에서는 왕복 엔진 전투기에 탑승하는 웃픈 상황이 연출될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지상 운전에서 발견된 제트 엔진 블레이드의 균열 때문이었는데 앞으로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Shenyang JJ-1은 시제기 2대만 제작된 채 개발이 중단되었고 나중에 1958년 7월 28일, 처녀비행에 성공했다는 중국 측 주장만 남아 있을 뿐이다.


Shenyang JJ-1 @War Thunder Forum /  @airwar.ru

그 사이, 1950년 한국전쟁과 1956년부터 시작된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 등으로 중국과 소련의 사이는 갈수록 냉담해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1959년 10월, 마오쩌둥은 중국을 방문한 흐루쇼프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소련과 진행 중이었던 여러 합작사업들을 파기하고 만다. 이 ‘중소결렬’ 이후 중국에 파견되었던 모든 소련 엔지니어들은 소련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50년대 중국은 내부적으로도 매우 혼란스러웠다. 1951년 5월에는 무력으로 티베트를 통합하였으며 나라가 세워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전쟁에 개입했고, 동시에 대만으로 건너간 장제스도 견제해야 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중국을 뒤흔든 사건은 ‘대약진 운동’이었다. 1958년에 마오쩌둥의 주도 하에 8년 혹은 10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겠다고 시작된 ‘대약진 운동’은 중국을 발전시키기는커녕 농업과 경공업은 퇴보시키는 등 중국 전체의 문화적 · 경제적 수준을 20년 이상 퇴보시켰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전투기 개발 사업이 원활하게 돌아갈리 만무했고 중국의 항공산업은 소련의 지원이 끊긴 채 1960 년대를 마주하고 있었다.


출처 : 오늘 인문 인문360 대약진운동

출처 및 참고자료


배경사진 : Wikimedia commons

Wikipedia, Mikoyan-Gurevich MiG-15

Wikipedia, Shenyang J-5

Wikipedia, Shenyang J-6

Wikipedia, Shenyang JJ-1

도위창, 중소국경분쟁

쿵디담, 중국의 첫 국산 제트 훈련기 : 셴양 JJ-1

세종이, 티베트의 역사 중국은 결국 분열한다.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대약진운동'

작가의 이전글 1946년, 소련 이야기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