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연합군 모두에게 두렵게 만든 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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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던 것처럼 1919년에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종전 직후 독일은 엔진이 달린 항공기 개발이 철저히 제한되었다. 그래서 독일 내에서는 동력 없이 상승 기류를 이용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글라이더가 활발히 연구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에서는 1929년에 일어난 대공황으로 동요한 국민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히틀러가 등장한다. 그는 1933년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1935년에는 급기야 재군비를 선언하며 노골적인 군비 강화에 들어갔다.
그렇게 다시 항공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자 베르사유 조약에서 벗어나 연구되고 있었던 글라이더와 로켓 엔진을 결합해보자는 제안이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로켓 엔진이 장착된 글라이더는 뛰어난 상승력을 보여주었고 연료를 다 사용하고 난 뒤에는 평범한 글라이더와 마찬가지로 긴 날개로 활공이 가능했다. 이는 충분히 독일 항공성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그렇게 로켓 엔진 요격기 사업은 Messerschmitt에게로 넘어가 Me 163의 개발로 이어졌다.
이후 Messerschmitt Me 163 Komet은 1941년 9월에 처음 하늘로 날아올랐으며 10월 2일에는 1,004km/h라는 경이로운 속도 기록을 세우며 역사상 최초로 1,000km/h를 넘는 유일한 유인 항공기가 되었다. 그래서 독일 공군은 Me 163의 압도적인 가속력에 매료되어 본토 방공용 요격기로 Me 163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연합군의 폭격이 본격적으로 거세지는 전쟁 중후반이 되자 다급함을 넘어 절박함으로 바뀌었고 결국, Me 163의 무리한 운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우선, Me 163에 탑재된 HWK-109-500 발터 엔진은 인체에 닿으면 피부를 괴사시킬 정도로 독한 연료를 사용했다. 또한, 천에 닿기만 해도 불이 붙을 정도로 반응성이 높아 폭발 사고도 빈번히 일어났다. 게다가 전쟁 말기에는 제대로 된 병사 교육이 어려웠기 때문에 실전에 투입된 정비사들은 발터 엔진을 다루는데 서툴렀다. 그래서 교육이나 훈련 도중에 사고가 자주 일어났고 심지어 비행기가 뜨기도 전에 조종사나 정비사들이 엔진을 다루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일어났다.
이게 끝이 아니다. 운 좋게 이륙했다고 해도 Me 163은 위험요소 투성이었다. 연료만 채우고 산소는 외부로부터 공급해오는 제트 엔진과 달리 로켓 엔진은 산화제와 연료를 기체 안에 모두 실어야 한다. 그런데 Me 163은 동체가 워낙 작아 체공시간이 8분에서 12분으로 굉장히 짧았다. 그러니까 이륙한 뒤 8분 안에 고도를 충분히 올려 폭격기를 요격한 다음 기지로 귀환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Me 163의 빠른 속도는 Me 163을 연합군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적기 조준도 어렵게 만들었다.
심지어 무사히 임무를 마치더라도 Me 163 조종사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연료를 다 사용하고 활공하는 Me 163은 자체적인 동력원이 없어 적에게 굉장히 취약했다. 그리고 작은 기체 안에 연료를 최대한으로 집어넣으면서 동시에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을 정도의 중화기를 장착하느라 제대로 된 착륙장치는 장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바퀴 형태의 착륙 장치가 아니라 썰매처럼 생긴 스키드 랜딩기어가 장착되어 지면에 동체로 착륙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뜩이나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비행기를 썰매판 하나로 동체 착륙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다. 게다가 동체 착륙을 위해서는 고른 평지가 필요한데 자체 동력원이 없었기 때문에 마땅한 착륙 장소를 찾지 못한다면 기체와 조종사 둘 다 크게 다칠 수 있었다. 그리고 설령 무사히 동체 착륙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남아 있던 연료가 조금이라도 유출되면 조종사와 기체 모두 불에 휩싸일 수 있었다.
이밖에도 활공해서 착륙하기 때문에 정확히 기지로 귀환하는 것이 어려웠고 벌판에 착륙한 바퀴 없는 Me 163을 다시 기지로 회수하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전쟁 말기에는 로켓 연료마저 부족해지면서 작전 수행 자체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1944년 7월부터 작전에 투입된 Me 163 비행대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Me 262가 폭격기 요격에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 하에 1945년 5월부로 폭격기 요격 임무에서 해제되었고 Me 163 조종사들은 모두 Me 262 조종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Me 163은 당시로선 상상도 못 할 속도로 짧게나마 연합군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물론, Me 163의 약점들이 속속히 드러나자 이러한 두려움은 Me 163 기지를 약간 우회하거나 활공 중인 Me 163을 요격하는 방식 등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또한, 꼬리 날개가 없는 무미익 항공기라는 점에서 항공역학적으로도 주목할만한 항공기이다. 무엇보다 로켓 엔진의 빠른 가속력은 초기 제트 엔진의 부족한 가속력을 채워줄 수 있었기에 전후 곳곳에서 독일과 비슷한 개념의 로켓 요격기들이 개발되었다.
한편, Me 163의 등장 이후에도 날로 심해져만 가는 연합군의 폭격에 독일군은 1943년부터 ‘Jägernot programm(Fighter Emergency Program)’을 통해 새로운 요격기 개발에 착수했다. 물론, 독일은 카미카제를 운용한 일본과 달랐으며 Me 163을 운용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원래 로켓 요격기를 개발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기존의 V-2 로켓을 만드는데 들어간 기술을 활용해 오늘날의 지대공 미사일과 굉장히 흡사한 Wasserfall이나 Schmettering, Rheintochter 등 다양한 요격 무기들을 개발해보았지만 당시 기술로는 폭격기를 향해 미사일을 정확하게 유도하기 어려워 명중률이 낮았다. 그래서 위험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탑승해 폭격기를 격추하는 요격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또 다른 로켓 요격기가 바로 Bachem Ba 349 Natter였다. 그리고 Be 349는 당시 독일의 절박한 상황을 잘 보여주었다.
Ba 349가 개발될 당시 독일은 이미 많은 조종사를 잃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Ba 349는 짧은 기간 교육받은 조종사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도록 V-2 로켓에 사용된 자동조종장치가 장착되었다. 조종사는 폭격기에 어느 정도 다다르면 그때부터 조종간을 잡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체 자체도 숙련되지 않은 작업자들이 최소한의 도구를 가지고 제작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설계되었으며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목재가 항공기에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Ba 349는 외형도 특이하지만 이륙에서부터 요격을 마치고 돌아오는 전반적인 과정이 매우 독특하다. 로켓을 이용한다는 점은 Me 163과 동일하지만 Me 163이 동체 바닥에 탈착형 바퀴(Dolly)를 달아 활주로에서 이륙했다면 Ba 349는 지표면에 수직으로 설치된 레일을 따라 진짜 로켓처럼 수직으로 발사되었다. 특히 요격을 마치고 돌아오는 과정이 매우 독특했다. Me 163이 활공해서 글라이더처럼 착륙했다면 Ba 349는 항공기가 공중에서 둘로 분리된 다음 낙하산이 펼쳐지면서 회수되었다. 이때 동체는 공중에서 조종석을 기준으로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분리되며 조종사는 동체 앞부분에서 나와 낙하산을 펼쳐 지상에 착지하고 로켓 엔진이 들어있는 뒷부분도 낙하산이 펼쳐지면서 안전하게 회수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Ba 349는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다. 1945년 3월 1일에 처녀비행에 성공하지만 이미 전세는 연합군에게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입이나 운용 자체도 어려웠겠지만 설령 도입되어 성공적으로 폭격기들을 요격할 수 있었더라도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독일은 이미 1944년 6월 서쪽으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동쪽으로는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되면서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었다. 한마디로 Ba 349가 처녀비행을 했을 때 독일은 항복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1945년 5월 7일, 날아오르지 못한 채 남아 있던 Ba 349들은 Me 163과 함께 독일이 연합군에게 항복하면서 연합군에게 넘어갔다.
이후 소련을 포함해 연합군에게로 넘어간 ‘로켓 항공기’라는 개념은 제트 엔진 기술이 발전해감에 따라 점점 잊힐 것처럼 보였으나 제트 엔진보다 간단한 구조로 엄청난 가속력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동력원이었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후 시작된 냉전으로 소련의 핵무기와 폭격기에 대한 위협이 증대되자 로켓 요격기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다시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순수한 로켓 요격기는 아니지만 초음속 영역에 대한 연구나 항공기의 이착륙 거리를 단축시키는 ZELL(Zero Length Launch)에 로켓 엔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처럼 제트 엔진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당시 제트 엔진의 추력은 오늘날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최대 출력에 도달할 수 있는 로켓 엔진은 비교적 오랫동안 많은 항공기 디자인에 차용되었다. 그러나 초기 제트 엔진의 단점들이 하나 둘 해결되면서 제트 엔진도 로켓 엔진만큼의 가속력과 추력을 낼 수 있게 되자 오늘날에는 로켓 엔진을 사용한 항공기를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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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kipedia, Hellmuth Walter
2. Wikipedia, Heinkel He176
3. Wikipedia, Rhön-Rossitten Gesellschaft
4. Wikipedia, Messerschmitt Me163 Komet
5. Wikipedia, Deutsche Forschungsanstalt für Segelflug
6. Wikipedia, Bachem Ba 349 Natter
7. History HD, Bachem Ba 349 Natter (video)
8. 네이버캐스트, 무기의 세계 Me163 코메트 로켓 전투기
9. 쿵디담의 다림쥐우리, Bachem Ba 349 Natter
10. 쿵디담의 다람쥐우리, 실전최강 전투기대전(19) 최후의 비밀병기
11. 쿵디담의 다람쥐우리, 엔진의 발전이 전투기에 끼친 영향(7)
12. 루프트바페의 강습용 글라이더 DFS 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