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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940 항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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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May 04. 2021

1944년, 미국의 첫 제트 전투기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 8:7)

지금이야 세계 최강의 전투기를 만들어내는 미국도 처음부터 전투기 강국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국, 독일과 비교했을 때 독립된 공군도 존재하지 않았을 정도로 전투기 분야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물론 영국이나 독일과 다르게 미국은 우수한 전투기를 보유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본토가 폭격을 당하고 있었던 영국이나 바다를 건너 영국을 공격해야만 했던 독일과 다르게 미국 본토는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둘러싸여 있어 안전했다. 그래서 1941년 진주만 공습을 제외하면 미국은 독일과 전쟁 중인 그 어느 나라보다도 평화로웠다.

그래서 미국은 전투기보다는 연합군, 특히 영국에게 제공해줄 폭격기와 목표물까지 폭격기를 지켜줄 수 있는 호위기 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탄생한 폭격기가 우리에게 익숙한 B-29 Super fortress 폭격기와 P-51 Mustang이다. 하지만, 영국과 독일에서 제트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영국과의 기술 교류를 통해 제트 엔진을 접하게 되면서 미국도 제트 항공기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은 제트 엔진을 한 번도 개발해본 적이 없어 1940년 영국과 맺은 ‘Tizard Mission’을 통해 영국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B-17 Flying fortress and P-51 Mustang @steamcommunity

앞서 보았듯이 영국과 독일은 제트 엔진 기술을 선두 하는 국가였다. 그러나 영국은 독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생산할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영국은 미국에 영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들을 공유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자본과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받으며 대량 생산 및 연구를 이어가고자 했다. 이때 미국으로 넘어간 기술 중에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 나온 암호 해독 기술을 비롯해 레이더에 사용되는 ‘공진기형 마그네트론’ 그리고 맨해튼 프로젝트에 기여하게 되는 원자폭탄 관련 자료도 포함되어 있었다.

1942년 10월 1일 Bell P-59 Airacomet

덕분에 미국은 1941년 영국으로 건너가 Gloster E.28/39 항공기와 이에 탑재된 제트 엔진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고 이후 영국으로부터 제트 엔진에 대한 자료와 Power Jet W.1X 제트 엔진 하나를 B-24 폭격기의 폭탄창에 담아 가져왔다. 그리고는 Bell社에는 영국으로부터 가져온 제트 엔진 탑재할 수 있는 제트 전투기 개발을, General Electric社에는 영국제 제트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제트 엔진 제작을 의뢰했다.

이후 1941년 9월 미 육군항공대는 Bell과 계약을 맺었고 드디어 미국에서도 제트 전투기 개발이 시작되었다. 개발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었는데 과거 개발되다가 취소된 항공기의 제식 번호 ‘59’를 빌렸으며 비행장으로 이동할 때는 가짜 프로펠러를 달고 이동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렇게 개발된 P-59 Airacomet는 비밀리에 개발된 것치곤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P-59 with fake propeller @Into the Breech

한편, General Electric社는 미 공군으로부터 Power Jet W.2B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원심식 제트 엔진 개발을 의뢰받고 General Electric은 겉으로는 새로운 터보차저(turbocharger)를 만든다고 하며 제트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드디어 1942년 4월 18일, 드디어 미국에서도 제트 엔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General Electric은 그동안 터보차저를 만들며 쌓아온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I-A 엔진을 손보면서 엔진의 성능을 개선시켰다. 그리고 I-A 엔진은 곧바로 미국 최초의 양산형 제트 엔진 General Electric J31 엔진으로 이어저 미국의 첫 제트 전투기 XP-59A에 탑재되었다.

General Electric @semantic scholar

그러나 1942년 10월 1일, 첫 비행에 성공한 XP-59A의 최대 속도가 고작 658 km/h에 불과해 실망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다. 지금이야 의도적으로 속도가 느린 제트 전투기를 개발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제트 엔진을 사용하는 유일한 이유가 왕복 엔진보다 더 빠르게 날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수명도 짧고 연비도 나쁘며 안정성도 떨어지는 제트 엔진을 탑재한 항공기가 왕복 엔진 항공기보다 속도가 느리다면 아무런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당시 미국 최고의 전투기였던 P-51 Mustang은 대략 600~700 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100대가 도입될 예정이었던 P-59는 도입이 중단되었고 양산 중이었던 21대의 P-59A와 29대의 P-59B 만이 훈련 및 제트 항공기 정비 숙달 용도로 도입되었다. 이밖에도 함재기로 운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기 위해 미 해군에도 제공되었지만 당연히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Tizard mission의 일환으로 Gloster Meteor와 교환되어 영국에 보내졌는데 영국 공군마저 왕복 엔진 전투기보다 못한 P-59의 성능에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다만, General Electric이 제작한 J31 엔진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Bell P-59 @Reddit

그러나 미 육군 항공대는 소수의 P-59를 운용하면서 제트 전투기에 대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P-59를 개발하면서 쌓인 기술과 경험은 고스란히 미국의 첫 실용 제트 전투기 Lockheed P-80에 흘러 들어가면서 미국의 제트 전투기 시대를 여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완벽한 실패작은 아니었다.

한편, 1944년 7월 Bell은 미 육군 항공대로부터 장거리 비해이 가능한 전투기 개발을 요구했고, 이에 Bell은 기존 P-59를 기반으로 J31 대신 J33 엔진 2개를 장착하고 연료 탑재량을 늘리기 위해 동체를 확장한 XP-83을 개발했다. 그러나 XP-83 역시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P-80 Shooting star에 밀려 시제기만 제작된 채 1947년 프로그램이 중단되고 말았다.

1944년 1월 8일 Lockheed P-80 Shooting star

이렇게 미국의 P-59가 실망적인 결과를 보여 주는 중에도 독일에서는 Me 262 제트 전투기 개발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미국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결국 미 육군 항공대는 Bell 다음으로 Lockheed社에 제트 전투기 개발을 의뢰하게 된다. 실은 Lockheed에서도 1939년 Kelly Johnson에 의해 L-133이라는 제트 전투기가 구상되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축류식 제트 엔진에 카나드익이 더해진 L-133은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간 파격적인 외형과 기술 때문에 당시에는 거절당하고 말았다.

Lockheed L-133 @Fantastic Plastic Models

그래서 Lockheed는 전부터 제트 전투기 개발에 관심을 보였던 Kelly Johnson에게 제트 전투기 개발을 맡겼다. 그리고 이때 Kelly Johnson이 이끄는 팀의 이름이 바로 훗날 전설적인 항공기를 여럿 개발해 군용기 역사에 여러 획을 그은 스컹크웍스(skunk works)였다. 이때부터 이들은 범상치 않았는데 영국, 독일과 벌어진 기술 격차를 단번에 좁히길 원했던 미 육군 항공대에게 180일 안에 전투기 설계를 마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리고 실제로 1943년 6월 26일에 개발을 시작한 스컹크 웍스는 불과 143일 만에 P-80을 성공적으로 개발해냈다.

P-80의 외형은 아직 독일로부터 후퇴익에 대한 자료가 입수되기 전이라 기존 왕복 엔진 항공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이나 독일에서 등장한 초기 제트 전투기들과는 다르게 하나의 엔진을 사용한 점과 그 엔진이 날개 아래가 아닌 동체 한가운데에 장착된 점은 주목할만하다. 이러한 설계는 항력을 낮출 수 있는 설계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엔진만으로도 충분한 추력과 가속력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제트 엔진 기술이 많이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때 P-80에 탑재된 엔진은 영국이 제공해준 Goblin 엔진이었으며 이 엔진은 영국에서도 de Havilland Vampire에 탑재되어 단발 제트 전투기의 가능성을 여는데 큰 기여를 했다.

Lockheed P-80 @Getty image

그렇게 Goblin 엔진을 탑재한 P-80은 1944년 1월 8일에 하늘로 날아올랐으며 나중에는 General Electric J31의 개량형인 J33 엔진을 장착하게 된다. 그러나 P-80은 제2차 세계대전에 투입되기엔 너무 늦게 개발되어 제2차 세계대전에는 투입되지 못하였고 대신, 한국전쟁에 투입되어 1950년 11월 8일, MiG-15를 격추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제트 전투기 간의 공중전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처럼 P-80은 미 육군 항공대에 인도되어 처음으로 만족할만한 성능을 보여준 제트 전투기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 전쟁에서 MiG-15이나 F-86과 같은 후퇴익을 지닌 1세대 제트 전투기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P-80은 P-51의 뒤를 이어 미 육군 항공대의 주력 전투기로 자리 잡을 정도로 우수한 전투기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P-80은 얼마 지나지 않아 MiG-15의 등장을 기점으로 후퇴익 제트 전투기들이 등장하면서 공중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지상 공격 임무를 수행하는 전폭기로 그 명성을 이어나갔으며 복좌형이었던 TF-80C는 T-33 제트 훈련기가 되어 미국을 포함한 우방국들의 대표적인 제트 훈련기로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미 해군은 1949년부터 육상기지에서 미 공군의 P-80C를 TO-1(TV-1)이라는 이름으로, T-33A는 TO-2(TV-2)라는 이름으로 들여와 훈련기로 사용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항공모함에서도 T-33을 훈련기로 사용하길 원했다. 이에 Lockheed는 1957년, 거의 다른 항공기라 보아도 될 정도로 T-33을 개량한 ‘T2V SeaStar’를 미 해군에게 개발해주었고 T2V는 기종 전환 훈련기로 미 해군에 도입되어 1970년대까지 운용되었다.

Lockheed TV-2 @Wikimedia commons

Lockheed T2V Sea Star @Alamy

게다가 냉전의 시작으로 소련과 대치 중이었던 미국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소련의 Tu-4 폭격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F-82 Twin Mustang을 대체할 신형 전천후 요격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후보기로 개발 중이었던 F-89 Scorpion의 개발에 차질이 생기면서 미 공군은 급하게 T-33을 개량해 전천후 방공 요격기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F-94 Starfire는 P-80이나 T-33과 부품을 75%가량 공유하고 있었고 개량이 쉬웠다. 덕분에 1949년 초, 미 공군의 부탁을 받은 Lockheed는 1949년 4월 16일에 YF-94의 처녀비행을 성공시켰다. 이후 F-94 Starfire는 F-89 Scorpion의 개발이 완료된 이후에도 1950년대 말까지 훌륭하게 방공 임무를 수행했다. 심지어 1980년대에 Boeing은 T-33을 개량해 Skyfox라는 이름의 훈련기를 개발하였으나 사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서 프로그램은 단 한 대의 Skyfox만을 남긴 채 중단되었다. 비록 Skyfox는 실패로 끝났지만 1980년대에 개량이 시도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P-80이 미 공군에게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