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엔진에서 제트 엔진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제트 엔진이 개발된 이후 영국과 독일 그리고 미국은 앞다투어 제트 엔진을 사용하는 전투기 개발에 관심을 보였다. 제트 엔진은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혁신적인 동력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 제트 엔진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다. 속도는 왕복엔진에 비해 조금 빠를 뿐 수명이 짧고 연비가 좋지 않아 항속거리도 짧았기 때문에 전투기에 사용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순수하게 제트 엔진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왕복 엔진을 같이 사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트 엔진과 왕복 엔진을 동시에 사용한다면, 순항 시에는 연비가 좋은 왕복 엔진을 사용해 제트 엔진의 짧은 항속거리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고 필요에 따라 제트 엔진을 사용해 고속 비행이 가능한 항공기를 만들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공군과 해군이 혼합 동력 항공기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서로 조금 달랐다.
우선, 혼합 동력 항공기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데 있어 신중하고 보수적인 미 해군에서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해군은 한 번 육지를 떠나면 기체에 결함이 생겨도 이를 해결할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미 해군에게 제트 엔진은 미완성에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로 다가왔다. 또한, 초기 제트 엔진은 가속력이 약해 짧은 항공모함의 갑판에서 운용하기 위험했다. 그리고 함재기는 착함에 실패했을 경우 빠르게 추력을 올려 다시 이륙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추력을 급격하게 올릴 수 없었던 초기 제트 엔진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미 공군을 포함해 영국과 독일에서는 제트 전투기 개발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미 해군도 제트 엔진 항공기의 도입을 마냥 거부할 순 없었다. 그래서 1943년 미 해군은 Ryan에 혼합 동력 항공기 개발을 의뢰했고, 그렇게 탄생한 전투기가 바로 FR-1 Fireball이다.
FR-1의 외형은 기존 왕복 엔진 항공기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자세히 보면 동체 후미에 제트 엔진이 장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배기 노즐이 보이며 날개 뿌리에는 제트 엔진에 공기를 공급해줄 공기 흡입구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엔진 노즐이 기체 뒤에 위치하고 있어 오늘날 항공기들이 주로 사용하는 3점 전륜식 착륙장치가 사용되었다. 제트 엔진은 미국에서 최초로 대량 생산된 General Electric J31이 장착되었다. (J31은 앞에서 다루었던 XP-59 Airacomet에도 장착되었던 미국 최초의 제트 엔진 General Eletric I-A 엔진을 기반으로 제작된 엔진이다.)
FR-1은 전시 상황이었던 만큼 시제기가 제작되기도 전인 1943년 말부터 100대의 주문이 들어오더니 1945년 1월에는 700대로 그 주문량이 늘어나며 나름 미 해군으로부터 한껏 기대를 받고 있었다. 이후 첫 비행은 제트 엔진 없이 1944년 6월 25일에 실시되었으며 1945년 1월 초부터는 항공모함에서 적합성을 평가받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1945년 3월 호위항모에 도입된 FR-1은 미 해군이 처음으로 도입한 제트 엔진이 탑재된 항공기가 되었으며 1945년 11월 6일에는 미 해군에서 최초로 제트 엔진을 동력으로 착함한 항공기가 되었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FR-1은 단 66대만이 제작된 채 양산이 종료되었다. 이러한 결말에는 종전으로 인한 군비 감축, 그리고 핵폭탄의 위력을 본 미 국방부가 더 이상 원거리 타격 수단으로 미 해군의 항모가 아닌 미 육군 항공대의 폭격기에 더 큰 관심을 보이게 되면서 미 해군의 위상이 떨어진 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FR-1의 양산 중단의 결정적인 이유는 FR-1이 생각보다 괜찮은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FR-1이 정규 항모가 아닌 호위 항모에 배치하였다는 점만 보더라도 미 해군은 여전히 제트 엔진 항공기 도입에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FR-1은 기체의 내구도가 약해 짧은 운용기간 중에도 사고가 빈번히 일어났으며 줄곧 후륜식 착륙장치를 사용해 온 조종사들에게 전륜식 착륙장치는 낯설고 불편했다. 결국, FR-1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체에 피로도가 쌓이면서 1947년 8월에 퇴역하고 만다.
이후 Ryan은 기존 FR-1에서 왕복 엔진을 T31 터보 프롭 엔진으로 바꾸고, 제트 엔진은 J31을 그대로 유지한 XF2R을 제작해 다시 한 번 미 해군에 제안했다. 그리고 1946년 11월, 터보 프롭 엔진을 장착한 XF2R은 FR-1에 비해 훨씬 향상된 성능을 보여주며 미 해군은 XF2R에 Dark shark라는 제식 명칭까지 붙여주었다. 하지만, 그 사이 빠르게 발전한 순수 제트 함재기의 등장으로 미 해군이 더 이상 혼합 동력 항공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자 XF2R 프로그램은 중단되었다.
한편, XP-81의 도입을 검토하고 중이었던 미 공군도 XF2R에 잠깐 관심을 보이며 General Electric J31엔진 대신 Westinghouse J34엔진을 적용해 볼 것을 제안했지만 미 공군도 이내 순수 제트 전투기에 더 큰 관심을 보이며 XF2R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호위 항모에서 운용할 FR-1과 함께, 1944년 미 해군은 정규 항모에서 운용할 혼합 동력 항공기 개발을 Curtiss에 의뢰했다. 기체는 정규 항모에서 전투 폭격기로 운용될 예정이었으며 왕복 엔진과 제트 엔진을 모두 탑재했기 때문에 당시 함재기로서는 이례적으로 크고 무거워졌다. 제트 엔진은 FR-1에 탑재된 J31보다 강력한 de Havilland Goblin의 미국 면허 생산형인 Allis-Chalmers J36이 장착되었으며 미 해군이 운용하는 함재기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을거라 기대되었다.
이후 1945년 2월 27일, FR-1이 한창 항공모함에서 평가를 받고 있었을 때 첫 번째 시제기가 제트 엔진이 탑재되지 않은 채 첫 비행에 나섰다. 4월부터는 제트 엔진이 함께 탑재되어 혼합 동력 비행에 도전했지만 5월 8일, J36 엔진의 결함으로 첫 번째 시제기가 추락하게 된다. 그리고 첫 번째 시제기의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평 미익의 위치가 수직 미익 위로 올라가는 등의 개량이 이루어지면서 두 번째 시제기는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7월 9일에 첫 비행에 나설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XF15C의 성능은 왕복 엔진만으로 비행할 때는 695 km/h, 제트 엔진을 함께 사용하면 755 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항속거리는 제트 엔진만 탑재한 FH Phantom보다 2배 길어 나름 괜찮았다. 그러나 두 개의 서로 다른 엔진을 탑재한 XF15C는 정비 부담이 크다는 단점이 있었고 지연된 개발 기간 동안 빠르게 발전한 제트 엔진 기술 덕에 쓸만한 제트 함재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XF15C 개발은 1946년 10월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처럼 미 해군이 다양한 혼합 동력 항공기를 제작하고 있을 때 훗날 미 공군이 되는 미 육군 항공대(USAAF)에서도 일본과의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제트 엔진의 짧은 항속거리를 보완하고자 혼합 동력 항공기 개발에 착수했다.
물론, 미 육군 항공대는 1942년 Bell의 P-59이 실망적인 성능을 보여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44년 Lockheed의 P-80이 등장하면서 제대로 된 순수 제트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다만, 당시 미 육군 항공대가 운용 중이었던 주력 폭격기 Boeing B-29의 항속거리가 최대 9,000 km 였던 것에 반해 P-80의 최대 항속거리는 2,220 km로 짧은 편이었다. 덩치가 큰 폭격기가 더 많은 연료를 탑재할 수 있기 때문에 항속거리가 긴 것은 당연하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던 미 육군 항공대 입장에서는 폭격기와 버금가는 장거리 호위 전투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1944년 초, 미 육군 항공대는 장거리 호위기를 Consolidated Vultee에 의뢰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항공기가 XP-81이다. XP-81은 미국 최초의 터보 프롭 엔진인 General Electric의 T31(TG-100) 엔진이 기수에, General Electric의 J33 제트 엔진이 후미에 장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T31 엔진의 개발이 원래 계획보다 지연되면서 Merlin 엔진이 대신 장착되어 시험비행에 나섰다. 처녀비행은 1945년 2월 11일에 실시되었으며 이름도 YP-81로 바뀌어 선행양산형 13대를 주문 받는다. 하지만 1944년 여름, 미국이 괌(Guam)과 사이판(Saipan)을 탈환하는데 성공하면서 장거리 고속 전투기를 도입할 이유가 사라졌고 1945년 8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XP-81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혼합 동력 항공기에 미 해군 함재기를 다루게 되면서 이제부터 미 해군 함재기의 개발 과정도 함께 다룰 예정입니다. (조사할 항공기가 좀 늘었습니다.)
Cover image by Pinterest
Wikipedia, Ryan FR-1 Fireball
Wikipedia, Ryan XF2R Dark shark
Wikipedia, Curtiss XF15C
Wikipedia, Consolidated Vultee X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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