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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Oct 13. 2020

번외 2 : 최초의 음속 비행(1947)

1947년, Bell XS-1 소리의 장벽을 넘다.

해당 글은 일부 보완 및 수정을 거쳐 1940년대 항공역사 매거진 글로 대체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1940년대 공학자들은 속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데, 이 점은 이 글의 시작인 제트 엔진의 등장에서부터 익히 들었을 것이다. 물론 제트 엔진이라는 새로운 동력원이 등장했지만, 항공기의 형상이 음속을 돌파하는데 적합하지 않아 매번 '소리의 벽'에 부딪혔고 이 때문에 많은 조종사들이 사망했다.


Prandtl-Glauert's Sound Barrier @Aviation stack exchange

그럼에도 계속 비행기를 만들어 비행을 해야 했던 이유는 당시에는 전산유체역학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최초의 컴퓨터인 ENIAC(에니악)이 1946년에 등장했다는 점을 고려해보자. 게다가 지상에서의 풍동실험 결과 역시 음속에 가까워지면 신뢰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무모하더라도 직접 비행기를 날려볼 수밖에 없었다.


World first computer ENIAC @Hyperaxion

그러다 보니 2차 세계대전 이후 막대한 부를 쌓은 미국은 다양한 항공기들을 제작하고 시험 비행을 실시하면서 초음속 영역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였다. 여기에 독일이 연구해온 후퇴익, 전익기, 제트 엔진 등의 기술들이 넘어옴과 동시에 냉전이라는 새로운 이념 갈등이 생기면서 미국은 초음속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Bell XS-1 (X-1)



Bell X-1 @Wikipedia

앞서 이야기했듯이 당시에는 아음속 넘어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래서 제트 엔진이 등장했음에도 많은 항공기들이 음속에 가까워지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추락하거나 공중에서 분해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음속 영역에 대한 자료를 수집할 유일한 방법은 직접 비행기를 날려보는 방법뿐이었다.


결국 육군항공대(USAAF)와 해군항공대(USNAS) 그리고 미국 국가항공자문위원회(NACA)에서 초음속 영역에 대한 연구 목적으로 실험기 제작에 착수한다. 이후 육군 항공대가 항공기 개발 회사로 Bell을 선정하였고 3대의 X-1 제작을 의뢰한다.


Bell X-1 under construction @military.net

X-1의 동체는 당시 초음속 영역을 움직이는 몇 안 되는 물체인 총알에서 형상을 따왔다. 뿐만 아니라 음속 영역에서 어떤 힘을 받을지 모르기에 동체는 최대 18G까지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설계되었다. 조종석 역시 최대한 유선형으로 만들고자 동체 내부로 들어갔는데 이 때문에 시야 확보가 다소 어려웠다.

Bell X-1 @fiddlersgreen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XS-1의 날개는 동시대 항공기들에 비해 매우 얇았다. 연구 목적으로 시제 1호기(46-062)는 8%의 상대 두께를 가졌고 시제 2호기(46-063)는 10%의 상대 두께를 가졌다.


그리고 후퇴익이 아닌 테이퍼익을 사용했는데 이는 당시 후퇴익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행기가 음속에 가까워지면 공기가 압축되면서 날개에 상당한 무리를 준다. 그 힘을 견디면서 동시에 얇은 날개를 만들기 위해 후퇴익이 아닌 테이퍼익이 더 유리하기에 테이퍼익을 선택했다.


Bell X-1 Rocke nozzle @32543AC

엔진은 제트 엔진을 사용할 경우 원하는 추력을 내기 어려울 것 같으며 로켓 엔진과 제트 엔진 둘을 혼합하기에는 구조적으로 너무 복잡해질 것을 우려해 에탄올과 액체 산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XLR-11 로켓 엔진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때 육군 항공대가 선택한 로켓 추진 방식에 대해 제트 엔진을 사용하길 바랬던 해군 항공대와 NACA는 육군 항공대의 선택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꼬리날개에는 음속에서 조종성을 잃지 않기 위해 수평안정판(Horizontal stabilizer)과 승강타(Elevator)를 합친 'Stabilator'를 사용했다. 이는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는 F-86에도 적용되었다. 덕분에 X-1은 고속에서도 조종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고 안정적인 비행을 할 수 있었다. 다만, Stabilator를 활용하는 방안은 미국이 독자적으로 고안한 것이 아니라 영국 Miles의 M.52에서 착안한 것이라 한다.


Stabilator, Elevator and Stabilizer @Boldmethod

이렇게 만들어진 X-1의 시험비행은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1946년 1월에 실시한 활공 비행을 시작으로 50 차례의 시험 비행을 실시한 뒤에서야 1947년 10월 14일에 최초로 Chuck Yeager가 탑승한 XS-1가 처음으로 음속을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참고로 XS-1은 처음에는 활주로에서 비행하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전쟁 말에 B-29가 개발 및 완성됨에 따라 공중에서 투하하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었다.


B-29 with XS-1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_Smithsonian Institution

이를 계기로 음속에 가까워질수록 급증하는 항력을 이겨낼 추력만 갖춘다면 그 너머로는 항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소리의 장벽이 깨지게 된다. 한편, XS-1은 세계 최초로 음속 돌파에 성공한 항공기로도 유명하지만 순수하게 공기역학적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험기라는 점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이후에도 XS-1은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X-1B, X-1E와 같이 여러 형태로 개조가 되어 마하 1을 넘어 마하 2까지 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시야 확보가 어려웠던 XS-1 초기형에 비해 조종성이 많이 개선된 점 그리고 도색도 주황색이 아닌 은색이나 흰색 등이 사용되는 등 많은 개조가 이뤄졌다.


Bell X-1B and X-1E @NASA


Miles M.52


음속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제트 엔진을 선보이며 항공기술을 선도했던 영국에서도 소리의 장벽을 넘기 위한 노력이 당연히 이뤄졌다. 영국은 1942년부터 초음속 항공기를 구상하고 1943년 가을부터 극비리에 기존 항공기보다 2배 빠르게 날 수 있는 항공기 개발에 착수했다.

 

XS-1과 동일하게 영국에서도 음속에서 안정적인 비행을 보여주었던 총알과 비슷한 형태의 항공기를 설계했다. 공중에서 투하하는 방식도 XS-1과 동일하다. 다만, XS-1이 로켓 엔진을 사용한 것에 반해 Miles M.52는 제트 엔진을 사용하기로 했으며 부족한 추력은 로켓으로 보완하기로 했다.


Miles M.52 @Twitter

특히, Miles M.52는 초음속에서 항공기가 조종 불능에 빠지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XS-1보다 먼저 세계 최초로 전가동 수평미익 'Stabilator'을 적용했다. 그리고 1944년, 항공기가 90% 정도 완성되었을 때 초음속 영역에 대한 연구 자료를 공유하고자 영국은 미국에 Miles M.52 건네주었고 미국은 영국에게 XS-1에 대한 자료를 제공해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돌연히 XS-1에 대한 자료 주기를 거부하였고 이후 M.52에 적용되었던 전가동 수평미익은 XS-1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왜 돌연히 XS-1에 대한 자료 제공을 거부했는지는 정확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미국이 핵폭탄 기술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영국과의 약속을 어긴 채 핵폭탄 기술을 넘겨주지 않은 것과 비슷하진 않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한편, 영국에서는 돌연히 Miles M.52 프로그램이 중단되고 만다. 전쟁이 끝난 뒤 노동당 정권은 소리보다 빠르게 나는 항공기의 등장은 먼 미래의 일이라며 M.52 프로그램을 중단시켰다. 노동당은 먼 미래에 적용될 기술에 투자하는 것보다 전후 무너진 나라를 복구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M.52는 비밀리에 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당 고위층 관료들 역시 프로그램이 얼마나 진행되고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Miles는 무인기로라도 시험비행을 진행하려고 하지만 거절당하고 나중에서야 30% 축소된 무인기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1947년 10월 8일, 30% 축소된 무인기로 마하 1을 넘는데 성공하지만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XS-1이 사람을 태운 채 음속 돌파에 성공해버린다.


Miles M.52 @Wikimedia commons

성공적인 시험 비행에도 영국 정부는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연구를 중단했고 결국 영국은 1940년대 말부터 급격하게 성장 중이던 초음속 분야에서 뒤처지게 되었다. 이후 Miles M.52를 통해 얻은 실험 결과들은 1950년대 중후반에 와서 영국이 초음속 항공기를 만들 때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참고문헌 및 출처


배경 사진 출처 : Wikipedia

Wikipedia, Bell X-1

Wikipedia, Miles M.52

NASA, Armstrong Fact Sheet : First Generation X-1

FliteTest, Bell X-1 :The challenges of going supersonic

Fundamental of Aerodynamics

곰바우, 항공기 날개모양(테이퍼비)


*상대두께(Thickness/chord line ra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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